내가 중학생 2학년이었을 때 (내 나이 절반이던 시절) 나는 '반지의 제왕'을 처음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판타지소설이란 것을 처음 접했다. 신문에 난 광고를 통해 '드래곤라자'라는 것이 PC통신에서 큰 인기를 끌고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쩌다보니 친구들과 '드래곤라자'를 열심히 빌려보게 되었다. 12권으로 된 시리즈가 한번에 출간된 것은 아니고 며칠 간격으로 나왔었는데 다음권을 기다리는 며칠이 정말 길게 느껴졌었다. 

'드래곤라자'를 다 읽은 후 관심은 자연스레 다른 판타지 소설로 이어졌다.당시에 우리나라에 출간되어 있던 판타지 소설 중 가장 명작이라는 작품이 '반지전쟁'. '반지의 제왕'도 아니고 무려 '반지전쟁'이었다. 현재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에서 6권으로 번역되었지만 당시 내가 처음 접했던 판본은 3권으로 되어 있었고 글씨 크기도 보통 책보다 작았다. 그런데다 각권의 두께도 일정하지 않고 1권 > 2권 > 3권 이렇게 얇아졌었다. 기껏해야 엘프, 드래곤, 인간, 오크 정도만 나오던 다른 판타지 소설에 비해 종족이나 등장하는 나라도 좀 더 다양하고. 다시 말하면 1권의 진입장벽이 높다는 것. 처음에는 딱딱한 문체와 헷갈리는 이름들 덕에 힘겹게 3권까지 읽어나갔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5권으로 된 '반지전쟁'을 또 발견했다. 번역이 바뀐건지는 모르겠지만 글자 크기가 커지고 책이 상대적으로 얇아져서 가독성이 좋아졌다는 것만 해도 다시 읽어보기에는 충분한 동기가 되었었다. 

나중에 영화로 반지의 제왕이 나올 때 '반지전쟁'과 '반지의 제왕'이 동일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던건 당연한거지만 원제가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반지전쟁을 접했을 때 제목이 '반지전쟁'이니 원제는 The war of the ring이나 The ring war겠지..? 라던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어서 '제목을 왜 이렇게 지은거야..'라는 생각과 함께 'The load of the rings'라는 원제가 기억에 강하게 남았었다. 

반지의 제왕 스케치북 - 스케치북에 그린 가운데땅 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엘런 리 (씨앗을뿌리는사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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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반지의 제왕' 책을 두 번 읽고, 3부작으로 나온 영화도 극장에서 다보았다. 원작이 책인 영화들이 흔히 듣는 '책이 더 낫네'라는 말을 반지의 제왕 영화도 들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책보다 영화가 더 마음에 든다. 책에서 설명이 많이 되어있기는 하지만 제대로 이미지로 잡히지 않던 호빗이나 엔트, 리벤델, 나즈굴, 모리아, 골룸, 사우론 등등 많은 등장인물, 장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내 눈앞에서 살아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건 영화를 볼 때도 느꼈지만 작년 반지의 제왕 전자책을 사서 읽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겐 책보다 영화가 더 맞다고. 

그런 '반지의 제왕' 영화를 제작할 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영화의 거의 모든 등장인물과 배경을 창조해낸 엘런 리의 스케치가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책을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은 '반지의 제왕' 스토리 순서에 따라 스케치가 실려있다. 완벽하게 채색까지 끝난 일러스트는 아니고 위의 표지에 나오는 것과 같은 단일색으로 그려진 펜화이다. 스케치와 함께 엘런 리가 해당 작업을 할 때의 에피소드나 당시 그리고 현재의 자신의 감정을 적어놓은 부분도 판타지 영화의 제작 과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영화에서는 빠진 봄바딜과 금딸기가 등장하는 부분도 원래는 제작에 포함되었었는지 해당 부분의 스케치도 책에 실려있다. 중세 유럽 풍의 배경이 많기는 하지만 소설 자체가 서양에서 나온 것이고, 엘런 리도 그쪽 사람이다보니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위에 적었듯이 책의 순서가 책과 영화의 순서와 같기 때문에 페이지를 넘기며 자연스럽게 소설과 영화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블루레이도 없이 미리 사둔 블루레이를 조만간 볼 수 있길 바라면서, 그 때까진 이 책으로 중간계를 맛봐야겠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정말 좋아한다면 강추. 
판타지 영화, 게임, 만화 제작이나 일러스트 등에 관심있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6. 1.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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