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책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자체를 설명하거나, 정반대로 몇몇 소설에서 스포츠는 맥거핀으로만 이용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것은 스포츠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성공/실패담 혹은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일 것이고, 반대로  가장 흔하지 않은 것이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들, 이를테면 사회/경제/경영/역사 등,을 설명하는 것이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이하 축구는..)'라는 긴 제목의 책은 이 중 마지막 갈래에 속한다. 이 책은 축구를 무려 세계화와 연관시킨다. 책의 원제는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이다. 한글로 된 제목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 책을 읽고보니 원제가 더 적절하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나'와 같이 직역을 했다가는 너무 딱딱해 보여서 책이 안팔릴 것이라고 생각한 출판사에서 좀 더 도발적면서도 덜 어려워보이는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긴 하지만 2005년 출판된 책이 벌써 절판된걸 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축구는어떻게세계를지배했는가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 레포츠
지은이 플랭클린 포어 (말글빛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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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로 나아가자'는 구호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으로 여겨져 왔고, 세계의 구성원으로 편입되고자하는 욕구는 외국-특히 서구 선진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화'되어 왔다. 

앞에서 '세계화'라는 말을 써왔지만 '세계화'라는 말의 의미는 분야에 따라서나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확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확산, 문화적으로는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의 확산과 다양한 고유 문화들의 공존, 사회적으로는 국적, 민족, 인종,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화이다. 

축구는 전세계인의 스포츠이다. UN에 가입한 국가보다 FIFA에 가입한 국가의 수가 더 많고, 유럽선수권(유로), 월드컵과 같은 축구 대회에는 (거의) 전세계가 열광한다.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의 하나인 북한도 월드컵에 참여하며 TV로 방송까지 해줄 정도이다. 또한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와 같은 나라의 축구 클럽에는 수많은 국적의 선수들이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뛰고 있고, 우리는 TV,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경기를 보거나 결과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축구는 당연히 세계화의 수혜를 받아왔고, 동시에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런 점을 알리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다음과 같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소파에 누워 축구경기를 관전하며 깨달은 바로는, 축구야말로 그 어느 경제기구보다 앞서서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또한 나는 사람들이 축구의 세계화가 가져다줄 더 큰 이익을 깨닫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주제로 누군가 책을 써야 할 필요가 있으며, 책을 쓰기 위해서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축구경기를 관전하고, 훈련을 지켜보고, 축구 영웅들을 인터뷰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니던 <뉴 퍼블릭> 잡지사를 8개월 동안 휴직하고 그토록 간절히 가 보고 싶어하던 축구 경기장들을 찾아다녔다. 

2001년 스포츠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세계 평화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을 정도로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축구이지만 정반대로 아직 세계화와 평화 면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기장 내에서 보여지는 '인종차별'일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축구장에서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다른 점'을 '틀린 점'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FIFA에서는 몇 년 전부터 'Kick the racism'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경기장 내의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큰 문제거리로 나타나고 있다. 

인종만이 아니라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여전히 존재하며 줄어들기는 커녕 이를 이용한 마케팅이 존재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식의 움직임이 있기도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축구장에서 인종이나 종교, 민족에 의한 차별과 갈등은 축구장 밖에서보다 더 적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선수 중 백인을 흑인에 비해 선호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등의 행위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갈등은 주로 성남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그것도 지역사회에서의 문제였지 적어도 경기장 내에서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아왔다. 물론 고양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다면 성남에게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만.. 어쨌건 저자는 축구장 내에서의 이런 문제를 '포르노그라피'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구단들은 인종차별에 불을 지피거나, 아니면 어쩌다 한번 이를 막으려는 시도만 흉내 내는 정도다. 인종차별이 사업상으로는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서조차 그들은 인종적 정체성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응원단을 조직한다. 종족의 편에서 실재 싸움에 가담케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외에도 축구는 세계화에 정반대되는 민족주의에도 이용되어 세르비아에서는 서포터즈가 준군사부대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흔히 '훌리건'으로 알려진 폭력적인 인간들을 양산하기도 한다. 

이런 차별과 폭력 외에도 아직 제대로 자본주의화 되지 못하고 부패한 클럽과 축구협회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축구 클럽을 통해 장기 독재를 이루었던(그리고 다시 이에 도전하는) 붕가 베총리, 축구장을 통해 분출되는 사회 변화의 욕구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세계화를 축구를 통해 바라보는 관점 외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인터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르비아의 준군사조직이자 폭력집단이었던 서포터즈의 회장과 고문, 전 지도자의 미망인을 비롯해 수많은 축구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라는 것이 모든 진실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수단일지 모르지만 인터뷰만으로 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기에 책의 내용을 더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책이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한가지 단점을 꼽자면 번역 과정에서 축구 클럽이나 사람 이름이 지금 통용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2005년 번역되서 나왔고, 그 때는 아직 유럽, 남미 축구가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었기에 어쩔 수 없는건 아니지만 이해는 할만한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이 글의 앞부분만 보면 골치아프고 어려운 내용일거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총 열 개 챕터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인터뷰들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와서 쉽게 읽힌다. 각 챕터의 소재들 또한 축구 경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만한 내용들이다. 

책의 추천 유무는 아담 고프닉(Paris to the Moon의 저자라는데 난 누군지 모르겠다)의 평가로 대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의미심장하게 재미있는 책이며,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게 의미심장한 책이다. 
by 청춘한삼 2013. 2. 16.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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