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간첩조차 꼭 알아야 할 세계 1위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나꼼수)'에서 깔대기를 맡았던 17대 국회의원 정봉주가 폭풍집필을 통해서 낸 책이다. 원래는 별 내용이 없을 것 같아서 살 생각이 전혀 없는 책이었는데 지난 연말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면서 사식 넣는 대신, 그리고 그가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정치인 서적을 돈내고 사는건 처음이다. 

달려라정봉주나는꼼수다2라운드쌩토크더가벼운정치로공중부양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정봉주 (왕의서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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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내용은 별거없다. 개인적인 내용이든, 정치적인 견해이든, 대부분이 나꼼수에서 한번 정도는 말했던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나꼼수의 청취자라면 새로울 것은 전혀 없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산 대부분의 사람들은 'BBK 저격수'이자 '반인반깔' 정봉주의 '치명적인 매력과 아름다운 영혼'에 사로잡혔거나 '갇혀진 진실'에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자 했을테니 내용이 중요하진 않을거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내용은 역시나 BBK 사건. 김어준 총수의 '닥정'을 참고하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적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이다보니 내용을 더 줄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BBK 설명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BBK와 LKe뱅크가 같은 회사인지 아닌지이다. 둘이 같은 회사라면 BBK는 가카의 소유이고, 따라서 BBK(옵셔널벤처스)를 통한 주가조작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정봉주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의심이다. 그리고 이 스토리에 도곡동, 다스, 하나은행, 김경준, 에리카김 등이 주,조연으로 출현하면서 아침드라마처럼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BBK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주가조작이라는 것이다. BBK가 누구꺼든간에 주가조작이 없었으면 큰 문제가 안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BBK를 가카가 소유했다고 추정할만한 증거는 있지만, 가카가 주가조작에 혐의가 있다는 혹은 공모했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이 책에도 없고, 닥정은 안봐서 모르겠지만 나꼼수에서 말했던 내용들에도 거기에 대한 증거는 없었다. (적어도 내 기억엔) 

어차피 그런 내용은 증거를 잡는 것이 매우 어렵긴 한데..김경준의 진술이 아니면 힘들테지만 진술만 가지고 유죄판결을 내리기는 어려울테고, 그게 아니면 금전적인 이득이 있어야.. 분명히 본인도 이 사실을 알고는 있을텐데 이 점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은 이 부분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나꼼수에서 나오는) 예전 BBK 브리핑(?)에서도 '가카 책임하에, 혹은 주도하에 주가조작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궁금해지는건, 왜 가카는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부정적인 증거가 철철 넘쳐서 매일매일 말이 바뀌어야하는 'BBK는 내꺼아님' 전략을 썼을까하는 점이다. '나도 속았다'라는 말이 있기는 했지만 그 변명이 메인이 아니었다는 점이 사건을 훨씬 크고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전지적 가카시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지금은 교도소에 있을 정봉주 전의원이 언제 나올지, 그리고 구속의 영향이 어떻게 발휘될지가 궁금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에 정치적인 고려로 구속된거라면 (구속시켰을 때의 역풍) < (나꼼수를 1년간 더 했을 때의 충격)이기 때문에 결정을 내렸을텐데 과연 제대로 된 선택이었을지는 1년 동안 지켜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구속 이후 나꼼수가 급격히 심각해지고 절박한 분위기로 진행되는걸 보면 김총수를 비롯한 멤버들이 앞으로 훨씬 더 전투적으로 나올 것 같은데 마냥 후자가 전자보다는 크다는 생각을 하기는 힘들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혹시라도 정 전의원의 사면을 두고 딜이 들어오면 나꼼수 멤버들이나 민주당에서 어떻게 반응할지도 궁금하긴 하지만 어차피 이런건 위키릭스같은 곳에서 나오지 않으면 한동안은 알 수 없겠지. 

마지막으로, 책에서 아쉬운 점은 부산저축은행 이야기를 하면서 포스텍을 기업으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그것도 두번이나. 포스코와 헷갈렸던게 가장 가능성이 높아보이고, 포스코의 계열사로 착각했던 것이 다음 가능성인 것 같다. 삼성과 묶여서 권력 실세와 연관된 의문스러운 투자로 500억원씩을 날렸다는 말을 하면서도 정작 피해자(포스텍)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른다는 점은 아쉽다. 그리고 분명 출판하기 전에 검수를 여러번 거쳤을 것이고, 추천사를 쓴 공지영 작가도 읽어보았을 것인데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점도 역시나 아쉽다. 


덧. 추천, 비추천은 호불호에 따라 이미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을테니 굳이 할 필요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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