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미디어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몇 번이나 제기되었다. 방송사로 투하되는 낙하산 인사라든가 한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시각(경우에 따라선 팩트까지)을 보여주며 대립하는 방송과 신문들, 팩트를 전달하는 기사인지 논조를 가지는 사설인지를 알 수 없는 기사들, 정치적 편향성 논란, 지나친 상업성까지. 이전에는 표면 밑에서 (비교적) 조용히 벌어지던 문제들이 이제는 밖으로 뛰쳐나와 나같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사실만을 전달하기를 바랬던 미디어가 이제는(혹은 원래부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 씹어먹기' 뒷표지의 '미디어는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크고 빨간 글씨는 흥미를 끌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디어 씹어먹기 - The influencing machine
카테고리 정치/사회 > 언론/신문/방송
지은이 브룩 글래드스톤 (돋을새김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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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씹어먹기' 뒷표지의 글을 조금 인용해보면, 

미디어가 의심받고 있다. 뉴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미디어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가 정치와 자본, 이념과 진영에 종속되었으며 이제 대중이 아닌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어떤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미디어는 왜 편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앞에서 언급했던 우리나라에서 불거지는 미디어에 대한 문제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 아닌가 싶다. 이 글만 보면 우리나라 저자에 의해 나온 책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룩 글래드스톤에 의해 쓰여졌다. 아니 만화로 된 책이기 때문에 글은 글래드스톤에 의해, 그림은 조시 뉴펠드에 의해 그려졌다고 해야겠다. 물론 저 글은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썼겠지. 

책의 원제는 'The influencing machine'이다. 직역하자면 '영향을 주는 기계' 정도로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미디어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디어에 대한 책의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디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은 망상일 뿐이고 실제로 미디어는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거울은 강렬하고 퇴폐적이며 지루하고 또 초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흐리멍텅하고 군데군데 금이가고 깨져있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보기 때문에 혼란이 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의 풍경 중 일부는 분명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고 일그러진 거울 속 풍경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쉽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모순되거나 혼란스러운 보도를 접했을 때 원본 문서를 읽어보거나 미심쩍인 정보원에 대해 알아보거나,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다른 견해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도 나와있지만 제퍼슨이 말한 것과 같이 '자유는 끊임없는 경계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미디어의 '객관성(입장)'일 것이다. 미디어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디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 논쟁을 해왔거나 할 예정일 것이다. 객관성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객관성에 대한 집착은 양비론이나 실제로는 전혀 균형잡히지 않은 균형보도로 이어지곤 한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예리한 보도들은 자기 주장이 센 기자들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예로 드는 것이 '스탠더드 오일 회사의 역사(아이다 타벨)', '노조간부제 기업의 새로운 도구(레이 스태너드 베이커)', '뉴욕(링컨 스테펀스)'인데 나로서는 모두 처음 듣는 기사들이다. 그리고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링크되어 있는 시대의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에서 저널리스트가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의 견해와 가치관, 일의 처리 과정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보원에 대해 명백히 밝히는 것밖에 없습니다. 
미디어 비평가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웹의 영향력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예측했습니다. 
'투명성이 새로운 객관성이 된 거죠. 투명성은 독자들이 기존의 편견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객관성이 그랬던 것처럼, 투명성은 신빙성을 제공합니다. 투명성이 없는 객관성은 점점 더 오만함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증거와 견해들 그리고 토론을 위해 웹을 활용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선의의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우리가 왜 신뢰해야만 하는 걸까요? 객관성은 매체끼리 링크될 수 없던 시절에 의존하던 신뢰구조입니다. 이제 우리의 매체는 서로 링크될 수 있죠.' (...)
<타임>지의 제임스 포니워직은, 정치부 기자는 지지하는 사람을 명백히 밝힌 후 탁월한 저널리즘의 실천을 통해 편향성에 대한 공격을 반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성의 시대에 허위는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치 공평무사한 대리석 신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근엄한 신전을 벗어나 책임감 있는 시민들처럼 우리도 선거에 관심이 있다고 인정해야 할 때이다. 그 후 책임감 있는 전문가들처럼 진실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미디어(혹은 개별 언론인)의 입장을 밝히고 그에 대한 기사를 쓰거나 보도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를 토대로 상대편을 헐뜯거나 비난하기만 하거나 우리편 뒤를 닦아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뒤를 잘 닦아주는 능력을 보여주어서 '대변인' 자리를 GRAP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면 포니워직이 말했듯 '탁월한 저널리즘의 실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마음대로 발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뉴스 소비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미디어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실을 파헤쳐서 양질의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다고 해도 아무도 읽거나 보거나 듣지 않고 대신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헐벗고 춤추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에만 관심이 있다면 미디어와 언론인이 어느 쪽에 더 집중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뉴스 소비자의 노력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아직 여러모로 현대 사회에 맞게 완전히 진화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이나 무의식을 비롯한 비이성적인 면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 모습은 우리가 개별적인 자신에게 느끼는 것에 비해 훨씬 원초적인 모습을 많이 보일 수 있다. 개별 자신과 대중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개개인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할 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 미디어를 만들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라이트는 '인류는 일종의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엔 인류는 언제나 시험을 치고 있었다. 결과는 바로바로 나오지만 그 결과를 주의깊게 다시 들여다보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제의 시험보다 오늘의 시험이 더 중요하지는 않고 마찬가지로 오늘보다 내일의 시험이 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고 역주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과 내 의견이 범벅이 되어버려서 슬슬 마무리 하자면, 
이 글에서는 미디어의 객관성과 뉴스 소비자에 대한 내용만 언급했지만 책에는 미디어의 역사를 비롯해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있다. 특히 국가와 미디어 간의 역사와 관계에 대한 내용은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외에도 다른 만화책을 소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형식이 만화이기 때문에 내용이 덜 딱딱하다고 생각된다. 그림 대신 글자로만 그 분량을 채웠다면 아마 훨씬 재미없었을지도 모른다. 

평소 혹은 어떤 논란이 있을 때,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 있다면 강추. 


덧. 뉴스 산업에 대한 비판에도 관심있다면 이 책을 추천.
  [그남자와 책] - 웰컴 투 뉴스 비즈니스 

덧2. 뉴스 소비를 비판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들을 추천.
  [그남자와 책] -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그남자와 책] -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by 청춘한삼 2014. 3. 16. 19:39
난 사실 아랍이 어떤 나라들을 말하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아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 아랍과 중동, 이슬람 국가를 거의 동일시해왔다. 뭔가 차이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뭐가 다른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 중동[각주:1]이나 아랍이란 단어는 석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라크, 테러, 축구 경기 정도에서나 접하는 단어였다. 관심을 가질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정도라고 할까. 이런 아랍에서 5년 동안 기자, 특파원으로 지냈던 한 유럽인이 중동과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냈다. 

웰컴 투 뉴스 비즈니스 / 저널리즘 쇼비즈니스를 뒤집는 아랍 특파원 표류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언론/신문/방송
지은이 요리스 루옌데이크 (어크로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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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몇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하나는 제목과 같은 비즈니스로서의 뉴스 비판, 다른 하나는 중동의 독재국가들에 대한 비판이다. 

뉴스에서 해외 소식을 전할 때는 해외 특파원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뉴스를 브리핑하곤 한다. 미국이라면 백악관 앞, 월스트리트 거리 뭐 이런 곳?? 해외특파원들이 언론의 취재가 용이한 국가라면 특파원을 직접 두는 것이 더 빠르고 자세한 현지 소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라면 해외 특파원의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힘들게 해외까지 가서 현지 소식을 본국의 회사나 CNN 등을 통해서 듣고 이를 토대로 기사를 써서 다시 본국으로 보내는..바보같은 짓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뉴스 시청자, 청취자를 위한 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중동의 독재국가들[각주:2]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언론의 자유와 취재의 어려움의 이야기 또한 3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내용이기도 했고. 독재국가에서는 말 그대로 보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각종 여론조사나 통계 수치, 인터넷을 통한 여론 동향 등을 생각도 할 수 없고, 그나마 가능한 것은 익명의 관계자들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북한의 언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우리나라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더 뛰어난건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뉴스를 이루는 현실은 복잡하고, 이 때문에 뉴스의 이면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쌩쌩 잘 돌아가는 컴퓨터의 본체 뒤에는 많은 선과 먼지가 뒤엉켜있듯이 어떤 뉴스 뒤에 감춰진 진실은 지저분하고 엉망일 수 있다. 흔히 이스라엘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되는 팔레스타인의 자치정부는 외부의 이스라엘과 함께 일반 팔레스타인인들을 구속하고 압박하는 독재정권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잘하고 있다는건 아니다) 서방세계가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것은 유대인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통해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언론이 뉴스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편의를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에서 수행하는 전쟁에서 공습이나 미사일 공격을 하면 뉴스에서는 출격하는 폭격기나 발사되는 미사일만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지켜보고 알아야 할 현실은 폭격, 공격당하는 도시, 마을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뛰어다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아이들, 가족들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 다양한 현실과 뉴스의 이면을 생각해서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객관적인 관점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미도 있고, 국제 사회, 언론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수작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비교해 볼 수 있고. 그런데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듯하다. 책을 빌리기 조금 전에 시사인에서 '아까운 걸작' 코너에 소개된걸 보면 말이다. 

언론과 언론인의 역할에 관심이 있거나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면 강추. 
방송되는 뉴스 이면에 어떤 것이 생략되어 있고 방송되지 못하는지 알고 싶다면 추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양측의 문제가 뭔지 알고 싶다면 추천. 

  1. 서구인의 시각에 의한 중동이란 단어보다는 서아시아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사실 중동은 서아시아에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일부 포함하는 개념이라 서아시아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서아시아보다는 중동이 더 맞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 우리나라에는 2011년에 책이 소개되었지만 원작이 나온 것은 2006년으로 쟈스민 혁명에 의해 독재자들이 쫓겨나기 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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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8.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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