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봐도 책의 성격을 바로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밑줄 긋는 여자'란 제목의 이 책도 마찬가지다. '밑줄 긋는 여자'는 저자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본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에세이다. 책을 소재로 한 에세이로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나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 정혜윤의 여러 책들이 있고, 혹은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확신의 함정(세르닌, Gene)'와 같은 책도 있다. 다들 좋은 책이겠지만 내가 아직 '확신의 함정' 외에는 읽어보지 못해서 어느 책이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 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성수선 (엘도라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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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점은 저자가 책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회사에서 겪었던 일, 출장 중에 있었던 일, 연애 중에 느꼈던 일, 첫번째 책을 통해 라디오 방송의 한 코너를 맡게 된 일 등 생활 속에서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자신이 그간 읽어온 책과 연결하여 솔직하게 (혹은 솔직하게 느껴지도록) 말한다. 

일견 저자가 사교적인 편으로 보이고, 하고 싶은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도 있으며, 회사일도 해외영업이다보니 일반적인 직장인에 비해 다양하고 화려한 삶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 빡세고 합리적이지 못한 회사에서 시달리며 퇴근 후에는 일기 한줄 쓸 힘도 없는 회사원이라는 것을 통해 읽는이가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을 저자에게 투영할 수 있게 해주지 않나 생각된다. 

'꿈타장의 행복한 책읽기 팟캐스트'에서 이미 들었었지만 회사, 조직 생활에서의 애환을 다룬 '우리는 시간을 팔았지 영혼을 팔지 않았다' 챕터에서는 이제 곧 본격적으로 회사생활을 하게 될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알아본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자' 챕터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피해를 본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와인을 모르는 초보자를 위한 간단한 팁같이 일상에서 도움이 되는 소소한 내용도 실려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든가 감정적인 면도 때론 재미있게, 때론 감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프로 글쟁이들과는 뭔가 다른 에세이들이 실려있다. 

마지막으론 아쉬운 점..이라기보단 그냥 덧. 책의 부제인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 이야기'는 저자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인이고 책의 내용에서도 해외 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굳이 저렇게 부제를 정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 저자의 이전 책인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를 의식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또 하나는 이 책을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으로 샀는데 표지가 위의 책 정보에 있는 표지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위의 표지는 책 겉을 싸는 이중 표지인데 전자책의 표지로는 본 책의 표지가 나와있다. (정확한 용어를 모르니 무슨 말인지 내가 봐도 잘..-_- ) 

책과 생활이 연결된 진솔한 에세이를 보고 싶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5. 4. 17:14
나는 요리에 무지한 편이다. 할줄 아는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것 밖에 없고 집에 먹을 것이 없는데 혼자 식사를 해야 하면 라면을 끓이거나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나가서 사먹는다. 얼마전까진 밥솥에서 김이 나오면 밥이 다된건줄 알았었다. 한참 더 놔둬야 한다는걸 이제는 안다만.. 20년간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만 먹고, 이후 십년은 요리가 불가능한 기숙사에서만 살다보니 전혀 요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요리를 좀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졸업 후 혼자 살게 되면 매일 사먹기만 하기도 그렇고, 야매토끼의 웹툰을 볼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도 한번 배워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식보다는 제빵이나 파스타 요리를 배워보고 싶은건 100% 내 취향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우선 한식을 배워야겠지. 

나처럼 요리 스킬이 전혀 없던 한 PD가 직장을 휴직하고 멀리 영국까지 가서 500일간 요리를 배워왔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들어보았을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가 그 주인공이다. 음식 전문 PD였으니 음식에 관심이 많고 보고 들은 것이 많으니 나처럼 아무 개념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출발선이 앞서 있었을 것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하지 않나. 물론 그도 기술은 전혀 없었기에 한참 고생을 하기는 한다만. 

쿡쿡 / 누들로드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코르동 블뢰 생존기
카테고리 요리 > 요리에세이
지은이 이욱정 (문학동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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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유학을 떠난 브코르동 블뢰는 런던에 있는 프랑스 요리 전문학교이다. 나는 처음 들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이 곳에서 초급, 중급, 고급, 파티셰 과정까지를 소화하며 요리에 대한 경험을 쌓는다. 단순하게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습관부터 타인의 요리, 다른 문화의 음식에 감탄하는 법을 배우고 좋은 음식과 그것을 우리에게 준 자연에 감사하는 법까지 배운 저자의 경험들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통해 독자에게 잘 전달된다. 저자가 방송 PD이다보니 깔끔하고 재치있는 말솜씨뿐만 아니라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이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더욱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잘 보지 않는 편이고, 그나마 요리에 관련된 책은 아주아주 어릴 때 집에서 산 전자렌지에 딸려왔던 전자렌지로 가능한 요리 예시책을 제외하면 거의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의욕이 마구 생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러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통해 느낀 것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문화적 상대주의, 다른 하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가이다. 우선 첫번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누들로드>를 만들면서 내가 느낀 것은 국수가 특정한 민족의 독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수는 '우리만의 음식'도 아니지만 '그들만의 음식'도 아니다. 국수뿐 아니라 모든 음식은 크고 작은 문명의 자장 속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되어 왔다. 우리가 한식세계화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 것이 저들 것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있고 저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저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와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궁극적으로 '저들에게 무엇을 배울까?'를 고민해야 한다. 


개고기나 김치 등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보다는 쉽게 민족주의로 흘러 '우리 음식이 더 낫네', '저들이 틀렸네'의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와 저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승리 지상주의가 아니라 상대주의를 통해 객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음식에 국한해서가 아닌 모든 것에 대해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인생에 대한 자세로는 저자가 요리유학을 결심하게 된 '인생은 물이 막 끓기 시작한 2.5ℓ 냄비다.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진 내료를 있는 대로 집어넣고 죽이든 밥이든 리조토든 무언가를 만들어야 돼'라는 생각을 항상 떠올리면서, 동시에 '인생이라는 요리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정해진 레시피란 없으며, 오직 자기가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추천.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현재의 인생에 변화를 꿈꾸고 있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2. 11. 24.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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