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다' 라는 제목을 보고 누군가 오해할수도 있겠지만, 여긴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소개하는 곳이지 뭔가를 자랑하는 블로그는 아니라는걸 기억해주길. '집을 짓다'는 이전에 소개했던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의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건축가로서 자신이 지은, 짓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다. 



이전에 보았던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가 건축 마니아가 아닌 건축가로서 펴낸 책이 있다는 점에서 안읽어볼수가 없었다. 전에도 적었듯이 내가 살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기도 해서 '집을 짓다'라는 책의 제목뿐만이 아니라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이라는 설명을 보니 더더욱 그랬고. 

집을 짓다 -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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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에서처럼 요시후미씨는 여전히 인간적이고 듣기(읽기려나) 편한 문장으로 이것저것 이야기 해준다. 본인이 생각하는, 그리고 본인이 지어온 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집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자기 나름대로 답한다. 르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과 같이 '집을 순례하다'에서 나왔던 집들도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잠깐씩 등장하는데 완전히 같은 내용을 우려먹는다거나 하진 않으니 사골국을 먹을까 걱정하는 분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서는 건축가 요시후미씨가 지어온 집을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요시후미씨가 집을 지을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처럼 간단한 사진과 손으로 그린 평면도, 스케치, 건축주들과의 대화들이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자신이 지은 집을 순례한다'는 느낌이려나. 몇 개의 집을 통해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며 건축주에 잘 어울리는 집을 지으려는 건축가 요시후미씨를 볼 수 있다. 

건축가인 요시후미씨가 꼽은 자신의 집 짓기 원칙 6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집
 2. 소재나 형태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집
 3. 그 자리에 어울리는 집
 4. 가족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집
 5.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
 6. 공간에 힘을 주는 가구가 있는 집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되는데, 다섯번째인 건축주에게 어울리는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적은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 
생활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도 역시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확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가족의 경우에는 <상자 같은 주택>을 주고 그 안에서 마음껏 생활을 꾸려나가게 두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가족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세부사항을 조금 더 상세히 정해주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주택의 건축양식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정답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그때 그 가족에게 적합한 해결방법을 제안하면 어떨까요? 설계자에게 그런 여유와 깊이가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찰스 임스라는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의 집은 그의 직업과 생활을 생각한다면 두말 할 필요 없는 정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과연 동시대의 일반적인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정답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 집은 찰스 인스를 제외한 다른 평범한 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그 가족의 분수에 맞아야 합니다. 옷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답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복장이어야 하지요. 저는 그런 집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단조롭게 보이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솜씨 좋은 재봉사가 만든 옷 같은 집, 그런 집이 제가 꿈꾸는, 집입니다. (p.46)


단조롭게 보이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솜씨 좋은 재봉사가 만든 옷 같은 집을 짓고 싶은 건축가라면 나도 내 집을 맡기고 싶다. 나도 언젠가 이런 좋은 원칙을 가지고 실천하는 건축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주택을 짓는 건축가라면 읽어보길 추천.
(굳이 주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내가 어떤 집을 갖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고 고민되는 사람에게 추천.  

 
by 청춘한삼 2013. 5. 11. 20:14
관련글 : [그남자와 책] - 집을 순례하다

'집을 순례하다'를 재미있게 읽고 바로 질러버린 속편. 다시 집을 순례하다. 속편이기 때문에 여전히 저자도 같고 구성이나 책의 컨셉도 거의 같다. 얼마나 같은지 저자의 서문도 따로 없다. 원래 잡지에 싣던 원고를 모아서 책으로 낸거라 그런가..생각하고 있다. 

다시 집을 순례하다 /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담?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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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인 컨셉은 같지만 속편으로 오면서 좀 더 건축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진 듯 하다. 유럽과 미국의 주택만을 소개하던 전편과 달리 일본과 멕시코의 건축까지 소개됐을 뿐만 아니라 주택 자체만이 아닌 전체 건축모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건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건축가가 기울인 노력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집은 제일 먼저 나오는 스미요시 연립주택이다. 
이름만 보고 연립주택이라고 하기에 우리나라의 빌라와 같은 집을 상상했었는데 일반적인 주택이라 놀랐다. 비단 나만 그렇게 착각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주변의 경찰 또한 이름만 듣고는 집 안에 연립주택이 있는건가..하고 생각을 했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알고 보니 가운데 중정을 통해 집이 양분되기 때문에 연립주택이라고 했다는..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외장을 콘크리트로 마감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지은 박물관이나 여러 건축물들에서 콘크리트 마감이 나타나곤 하지만 주택에까지 적용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시각적으로 뭔가 특이해 보이는 것 외에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문제라는, 거주민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여름의 콘크리트 도로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연립주택의 주인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힘들긴 하지만 집을 전혀 고치지 않고 25년간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지는 좀 더 되었으니 아직 그대로 살고 있다면 30년이 넘었겠다. 
사실 연립주택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나온 비판처럼 '건축가의 횡포'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택은 결국 사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비판만 할수는 없는 듯하다. 저자는 그렇게 오랫동안 만족하며 살고 있는 집주인들을 찬양하지만 내가 집주인이었다면 어땠을까..그냥 살았을까 아니면 팔거나 새로 지었을까..그건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외장 콘크리트는 피해야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집은 덴마크의 '키에르홀름의 집'이다. 
바닷가에 나즈막히 지어진 집이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 기억에 남게 하는 요소인듯하다. 집의 크기가 큰편이라 내가 그렇게 지어서 살기엔 힘들겠지만 주변 경관을 잘 즐길 수 있고, 월출을 볼 수 있도록 디테일하게 설계된 점, 내부의 깔끔한 인테리어까지, 잘 새겨놓아야겠다.

케이르홀름의 집 파트에서는 집 이야기만이 아니라 저자의 '순례'에 대한 속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순례 겸 취재를 하는 마음가짐이 나오는데 조금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제가 순례를 하는 주택들은 모두 대학시절부터 제가 연모해왔던 주택들입니다. 때문에 공간 구성이나 입면은 물론, 그 집의 특징이나 눈여겨볼 만한 부분 여기 제 뇌리에 각인되어 있지요. 게다가 사진가나 편집자가 동행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혼자 떠나는 여행이니 제 일의 스케줄만 잘 정리하면 언제든지 가볍게 떠날 수 있습니다. 
가끔 "취재 힘드시죠?"라며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말이 나온 김에 <무대 뒤>의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합니다. 제가 하는 취재란 사실 싱거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취재라기보다는 그저 <방문>이라고 쓰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보통의 방문보다는 주의 깊게 둘러보려 하고 관심 가는 부분은 스케치한다거나 재빨리 실측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것도 그리 힘들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콧노래와 함께하는 즐거운 일입니다.
사진 촬영도 마찬가지지요. 삼각대를 세워 본격적인 자세를 취해 찍기 시작하면 가구를 옮긴다거나 앵글 안에 소품을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카메라는 손에 든 채, 실내는 있는 그대로, 플래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며 스냅 사진을 찍는 요령으로 짧은 시간 안에 찍고 있습니다.
거주자가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사항을 미리 준비해서 인터뷰를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통역사를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제 쪽의 어학 실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잡담에 가까운 가벼운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또 그 이야기를 메모하지도 않습니다. 메모같은 것을 하면 서로 새삼스럽게 격식을 차리게 되므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즉 취재하는 쪽도, 반대편 쪽도 잘하려고 긴장할 필요 없는 <평상복>처럼 편안한 취재입니다.


생각보다 길게 썼는데 저자가 어떤 자세로 주택들을 방문했는지를 보면 책의 본문을 보지 않아도 저자가 얼마나 순례, 혹은 방문을 즐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본문을 보면 저자의 행복함이 절로 느껴져 나까지 절로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난다. 저자의 저서 중에 '집을 짓다'라는 책이 번역되었던데 읽어볼까말까 고민 중이다. 이제 남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위주로 이야기를 할테고, 실제 집을 짓는 건축가의 마음이 어떤지도 궁금하고 해서 보고 싶긴하다. 보고 싶은 책이나 봐야할 책들이 밀려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마 언젠가 구해서 읽어보긴 읽어볼 듯 하다. 

추천 여부는 전작과 같은데 + α 하나. 
주택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강추. 
자신이 살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강추. 
아파트만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 
조금은 다른 여행기를 원한다면 추천. 
전작, '집을 순례하다'를 읽어봤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2. 12. 21.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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