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소망 중에 하나는 내가 살 집을 지어서 사는 것이다. 집이 너무 클 필요도 없고 적절한 사이즈의 마당이 있는 주택을 지어서 사는 것이 꿈이다. 그러려면 우리나라에서는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과 배려, 시장이 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싶긴한데 몇년 전부터 땅콩집을 필두로 한 단독주택 바람과 아파트 시장의 침체를 생각하면 점차 주택(혹은 비아파트) 시장도 커질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주택을 지으려면 건축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수도 있지만, 사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게, 내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지어서 내가 살지 않고 세를 놓을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니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원하는 형태의 내외장을 가지는 집을 지으려면 아마도 복사한 듯 찍혀서 판매되는 설계도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집의 구조나 형태를 확실히 결정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집에 살아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형편은 못되기 때문에 간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가, 특히 주택 전문 건축가가 직접 거장들이 만든 집을 방문하고 펴낸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집을 순례하다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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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인 저자는 전세계(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유럽) 20세기의 거장들이 지은 집을 (제목 그대로) 7년간 순례하고 독자에게 그 집들을 소개한다. 내가 아는 건축가는 아무도 없긴 하지만 건축학도의 입장에서는 성지순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세계 문화유산 답사기 주택편'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건축 여행기라는 점에서 이전에 읽었던 '세계건축기행'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 책에 비해서는 좀 더 감성적이고 쉽게 다가온다. 문체의 영향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의 설레임과 기대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사진이 아닌 직접 건축물을 보고 느낄 때의 놀라움과 감동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두 책의 가장 큰 차이는 소재이다. 세계건축기행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문화유산들이 소재라면, 이 책은 20세기의 주택만이 소재이다.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저자의 감성을 드러내는 문체만이 아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주택들의 내외부 사진과 스케치한 설계도가 책에 생생함을 더해준다. 저자가 단순한 건축가가 아닌 주택 건축의 팬이기 때문에 집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 또한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들(표지의 일러스트를 포함해서) 또한 저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다. 

8명의 건축가의 9개의 주택이 소개되는데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임에도 화려하거나 전위적이기만 하고 비실용적인 면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약간 예외이긴 하지만 낙수장이 백만장자의 별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이나 루이스 칸의 에시에릭 하우스가 마음에 든다. 주변 경관과 잘 조화가 되고, 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단순한 구조, 눈치채지 못할 곳에서도 집에 살 사람들을 세심히 배려한 흔적들. 여러가지 요소가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사실 주변과 집의 조화와 그 집에 살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소개된 여러 주택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다. 작은 채광창 하나, 가구 배치 하나, 진입로 각도, 편안한 동선 배치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알게 되면 건축가의 세심함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점들이야말로 그들을 거장이 되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저자는 평범한 독자들이라면 놓치기 쉬운 하나하나를 발견하고 설명해준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들이 있지만 저자가 고르고 골라서 책에 소개된 집들에서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집들을 보여준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무굴의 타지마할,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은 아닌 건축물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하고 식사하고 잠드는, 생명이 살아가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저자의 주택에 대한 애정 또한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주택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강추.
자신이 살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강추. 
아파트만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
조금은 다른 여행기를 원한다면 추천.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지원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2. 10. 28. 2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