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월드컵 4강에 오르자 여러 나라에서 승부조작 의혹을 제기하고 일부 국가에서는 승부조작을 기정사실화 하며 한국축구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움직임이 일기도 했다. 당연히 우리 국민들은 분노했었고 지금도 잊을만하면 한번씩 터져나오는 쓸데없는 주장들에 한번씩 화를 내곤 한다.

당연하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승부조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인상은 매우 좋지 않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축구나 월드컵과 승부조작이라는 단어를 함께 연상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승부조작과 연계했던 나라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당시 기억을 잘 떠올려 보거나, 지금 열려있는 인터넷 브라우저 창을 닫기 전에 구글링을 통해 당시 어떤 나라들이 승부조작을 의심하고 의혹을 제기했는지 확인해보라. 그들 대부분은 자국의 축구가 승부조작으로 오염되어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축구'와 '승부조작'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으로 잘 엮여있는 나라들이었기 때문에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을 인정하기보다는 기대하지 않았던 팀들이 성과를 내는데 익숙한 방식인 승부조작을 떠올렸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승부조작 청정지역만은 아니다. K리그의 승부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많은 선수들이 징계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았고 타 스포츠 종목들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목에서는 심지어 감독까지 사법처리되기도 했다.  그 중 축구만 보더라도 월드컵 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축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동남아시아건 유럽이건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승부조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승부조작 사건의 기사들을 살펴보면 실체를 파헤친 심층취재는 찾아보기 힘들고 수사기관의 브리핑 복사-붙이기 혹은 추측만 난무하곤 한다. 그만큼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승부조작이고 개인보다는 조직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취재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일을 해낸 기자가 불편한 진실을 담을 책을 펴냈다.

승부조작의 진실 / 조작된 승부와 베팅의 세계 그리고 월드컵의 불편한 진실
카테고리 취미/실용/스포츠 > 스포츠
지은이 데클란 힐 (다람,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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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he Fix: Soccer and Organized Crime(승부조작: 축구와 조직범죄)',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승부조작'이 아닌 '승부조작의 진실'로 제목이 정해졌다. 저자인 데클란 힐은 탐사보도 전문 기자로 세계 각국의 승부 조작꾼, 도박 조직, 축구 선수를 포함한 관계자들을 만나 취재를 했다. 승부조작이 행해지는 이유는 단 하나, 돈이다. 불법 토토, 불법 도박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승부조작은 부도덕한 개인이 하기는 힘들다. 그 때문에 배후에는 항상 큰 조직이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이 분야의 취재는 매우 어렵고 위험하다는 것이다. 저자 또한 위험한 상황을 헤쳐왔고 최소한의 안위를 위한 조치를 취했고,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하자면, 독자들도 이 책의 조사 과정이 매우 위험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특정인의 이름과 날짜를 비롯한 일부 정보를 비공개로 처리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나는 모든 조사 자료를 두 나라에 있는 두 명의 변호사에게 따로 맡겼다. 변호사들에게는 혹시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경우 모든 자료를 공개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안전을 위해 이 같은 조처를 했다. 독자 여러분이 모든 조사 자료를 볼 일이 없기를 바라며, 이 책에서 밝힌 내용만으로도, 축구계를 거듭나게 하는데 충분하기를 바란다.

축구는 야구같은 타스포츠에 비해 기록으로 정리되는 것이 많지 않다. 스코어와 승리/패배팀, 득점자, 좀 더 범위를 늘려도 도움 정도가 대표적인 축구 기록이다. 하지만 아시아의 불법 도박 조직에서 취급하는 항목들은 훨씬 다양하다. 승리팀, 점수 차, 첫 골/마지막 골 득점자, 첫 골 득점 시간대, 경기 전체 골/헤딩 골 수, 오프사이드 개수 등등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가장 인기있는 상품은 '아시안 핸디캡'이라고 불리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강팀이 미리 지정된 점수 차 이상으로 이기면 돈을 딸 수 있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A팀 2골차 승리에 돈을 걸었다면 A팀이 2:0이나 3:0, 4:1로 이기면 돈을 딸 수 있지만 비기거나 1:0으로 이기면 돈을 잃는 것이다. 아시안 핸디캡이 인기라는 의미는 '승부조작'이라는 단어에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강팀이 어이없이 패배하면서 엄청난 배당률을 독식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저 강팀이 적당한 스코어로 '확실히' 이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팀에게 다음 경기를 지라고 돈을 줄 필요가 없이 어차피 질 것 같은 팀이 '확실히' 지도록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승부 조작꾼들이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승리팀과 점수차를 알려준 경험들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승부 조작꾼들은 아시안 핸디캡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 '점수 맞추기'와 '전체 골 개수 맞추기'도 이용한다. 배당률을 높여 한번에 큰 돈을 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가장 흥미로왔던 사례는 말레이시아 사라와주(州)와 싱가포르 올림픽팀(U-23)의 경기였다. 2006년 4월 12일, 두 팀의 FA컵 8강 경기전, 갑자기 베팅 업체에 전체 골 개수 맞추기 베팅에 많은 돈이 몰리기 시작했다. 그 돈들은 일반적으로 많이 나오는 스코어에 기초한 2, 3골에 몰리는 것이 아니라 '9골 이상'에 몰려들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률 덕에 '9골 이상' 항목은 처음 30배 이상에서 경기 시작 직전에는 2.5배까지 떨어졌다. 그 결과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 선수의 증언을 따르자면, 이 소식을 들은 구단 관계자들이 선수 대기실로 쳐들어가서 승부 조작을 단념할 것을 명령했다. 모든 선수는 승부 조작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최선을 다해서 뛰겠다고 구단 관계자에게 약속했다.
경기 결과는? 무너진 배당률이 예고한 대로였다. 싱가포르 올림픽 팀이 7-2로 이겨 총 9골이 나왔다. 싱가포르 풀스(주: 싱가포르 공식(국립) 베팅업체)는 수십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해당 경기는 승부 조작이 이뤄졌을 뿐만 아니라 승부 조작 계획이 누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누설된 정보는 수많은 노름꾼의 무차별적인 '묻지 마 베팅'을 촉발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시아 축구의 신뢰도는 다시 한 번 땅에 떨어졌다.

누군가는 동남아나 아시아에서처럼 수준이 낮은 일부 지역에서만 승부조작이 일어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 훨씬 이전부터 축구 리그가 존재했던 유럽도 유구한 승부조작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이에 더해 아시아에서 흘러들어온 검은 돈과 승부 조작꾼들에 의해(저자는 메뚜기떼라고 표현한다) 승부조작이 벌어져왔다. 최근에도 승부조작 사실이 밝혀진 유럽 경기들이 380경기가 있었고 그 중에는 자국 리그만이 아니라 챔피언스리그, A매치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그 이전에 밝혀진 이탈리아 세리아의 승부조작이나 독일 리그의 조작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수백 경기(한정된 기간 내에 밝혀진 경기만)를 조작하는 것도 대단하지만 승부 조작꾼들은 그 대회를 가리지 않는다. 축구에서 가장 큰 대회라면 누가 뭐래도 월드컵일 것이다. 메뚜기떼들은 월드컵까지 먹어치울 수 있을까? 전 세계가 몇 년에 걸친 예선을 통과해 4년에 한번씩 밖에 참가하지 못하는 가장 권위있는 축구 대회 본선에서 승부조작이 일어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아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단순히 승부조작이 있다고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본선 경기 전에 이미 승리팀과 점수차를 맞추는 승부 조작꾼을 만나기도 했고,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에 우승팀을 알고 있었다는 조작꾼을 만나기도 했다.

저자가 월드컵 본선에서 벌어진 승부조작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된 취재는, 그야말로 탐사 저널리즘의 승리다. 승부 조작꾼들이 월드컵 본선 경기를 조작하는 회의를 직접 목격했다. 장소는 무려 방콕의 KFC였다. 그리고 해당 국가 언론인과 승부 조작꾼들로부터 정보를 입수한 뒤 직접 월드컵 대표팀이 머무는 호텔에 찾아가 취재를 했고, 조작이 이루어지기로 한 본선 경기를 직관했다. 두 골 차 이상으로 패배한다는 계획을 세웠던 경기들의 결과는 모두 적중했다. 월드컵 이후 해당 국가까지 무작정 찾아간 저자에게 해당 국가대표팀 선수들은 월드컵을 포함해 다른 대회들에서도 조작꾼들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고 돈을 받은 일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승부조작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00% 조작이 확실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 팀이 어떤 팀인지, 어떤 경기인지는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참고로 그 팀은 이번 월드컵 본선에도 출전 중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2008년이었다. 이 후 6년이 흐르는 동안 또 한번의  월드컵, 유로, 올림픽, 챔피언스리그, 각 나라 리그와 컵대회들을 비롯한 수많은 축구 경기가 치뤄졌고, 지금도 월드컵이 치뤄지고 있다. 그 동안 축구계가 얼마나 더 깨끗해졌는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축구계를 좀먹는 승부조작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한 해결하려는 의지를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승부조작이라는 암은 축구라는 숙주를 죽이고 다른 숙주를 찾을 것이다. '승부조작의 진실'의 가치는 바로 이 점에 있다. 축구가 죽기 전에 승부조작이라는 암을 치료해야만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다. 또한 이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가치도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지금까지와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스포츠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덧. 아래는 원서 표지인데 번역본보다 훨씬 더 책 내용에 맞는듯한데 왜 바꾼건지..

by 청춘한삼 2014. 6. 21. 20:00

속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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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이책을 후원해주신 남친님 감사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작가 이언 매큐언의 속죄이다. 워낙에 유명한 책이기도 하고, '영화:어톤먼트'의 원작 소설이기도 하여 쉽게 흥미를 유발하는 내용이다.

사실 첫장을 시작하며 여러장을 넘기기 까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뭔가 지루하게 설명만 늘어놓는 듯한 느낌이라 남친님께 불평아닌 불평을 했었는데, 왠걸 그 말을 하자마자부터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사악한 범죄라 하면 살인, 강도 등을 떠올리기 쉽다. 그런데 이런 범죄 말고도 잔혹한 일이라는 것이 인생을 통째로 뒤흔들게 된다면 어찌 되는 것일까.
한순간의 실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채 바꿔놓는다면. 특히나 사랑하는 연인을 갈라놓게 만드는 일을 자신도 모르게 했었다면. 그리고 그것을 어린이에서 성장한 어른이 속죄를 한다면.

마지막 장면에서는 반전아닌 반전이 나타나 허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랑하는 연인이 그렇게 남은 것이 오히려 잘 된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불행에 빠뜨리는 것은 사악함과 음모만이 아니었다. 혼동과 오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들 역시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똑같은 존재라는 단순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불행을 부른다. 그리고 오직 소설 속에서만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모든 마음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이 지녀야 할 유일한 교훈이었다.
지난 오십구년간 나를 괴롭혀왔던 물음은 이것이다.
소설가가 결과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는 과연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소설가가 의지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혹은 그 소설가를 용서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소설가 바깥에는 아무도 없다.
소설가 자신이 상상속에서 한계와 조건을 정한다.
신이나 소설가에게 속죄란 있을 수 없다.
비록 그가 무신론자라고 해도.
소설가에게 속죄란 불가능하도 필요없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속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p.521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2. 22:16

가우디공간의환상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안토니 가우디 (다빈치,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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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책읽은 것을 쓰는것에 대해 손을 놓아버렸었다. 분명 올해 봄이 다가오던 달까지는 열심히 리뷰를 썼었는데.
그러나 저러나 책을 전혀 읽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흠..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나의 게으름이라 해두자.

올 가을에 떠날 스페인에 대한 환상과 기대로 인하여 요즘 하루 하루 떠다니는 듯하다. 예전부터 점찍어두었던 유럽의 스페인이라니! 드디어 대면할 수 있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먹여살리는 건축가. (아니 이 사람은 예술가라 불러야 마땅하다) 안토니 가우디를 영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단 말이다!!

신행으로 스페인을 꼽을 때에도 '바르셀로나는 꼭 가야지. 마드리드보다 바르셀로나야'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점점 알면 알수록 그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고 있다.

가우디 건축들을 만나기 전에 그에대해 조금이라도 알아야지라는 생각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라기 보단.. 흠 이건 거의 삽화 수준이다. 

이 얇은 책이 가우디의 모든 것을 설명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작품세계라던가 철학은 이해하기 더욱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일반사람인 나 같은 사람은 더더욱.
물론 이런 불편함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사상이나 생각에 대한 깊이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고, 그가 생전에 남겼다던 말들을 통해 더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단숨에 읽어내기는 했지만 곱씹을 수록 이해해야 되는 말들이 많았고 바르셀로나가 내 품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바르셀로나에 대한 나의 마음은 아임 레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6. 11. 22:28
그리스 신화를 통해 고대 그리스인과 신들에 대해 알아 봤으니 이제는 현대 그리스를 돌아본 여행기를. 뜬금없다 싶어서 꼭 지금 사봐야 할까..하는 생각에 구입을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제대로 읽게 된 박경철의 첫번째 여행기, 문명의 배꼽 그리스. 완결이 되면 볼까도 했지만 한두권 나오고 마는 것이 아니라고 하고, 언제 완결이 될지도 까마득하다보니 결국은..

이전에 한번 저자에게 그리스 여행에 대해 직접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ppt까지 준비해와서 표지를 띄워놓았던 시골의사는 관객들 중에 학부모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며 즉석에서 주제를 바꾸어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부터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 어린 시절의 심리, 이를 통한 바람직한 교육에 대해 강연을 했었다. 어찌보면 그 때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 것이 다행으로 생각된다. 여행기는 책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알 수 있지만 당시 들었던 저자의 경험은 그 기회가 아니면 들을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명의 배꼽, 그리스 (박경철그리스기행1)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박경철 (리더스북,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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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과 같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인간적이면서도 맛깔나는 시골의사의 문체와 더불어 여타 여행기와의 차별성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다. 책의 서문에서부터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은 '이십대의 청년이 가슴에 새긴 꿈을 나이 오십을 앞두고 실현한 긴 여행의 기록'이다. 이십대의 청년의 가슴에 꿈을 새기게 만든 인물이 바로 니코스 카찬차키스였다.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몸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이란 무엇인지, 육신을 넘어 영혼에까지 생기를 불어넣는 '삶'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아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가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조화를 이루며 쌓아 올린 문명과 역사의 참모습에까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느새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해 스스로에게 던진 그 오래된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이 어떠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온갖 책들을 전전하며 가슴앓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단골 책방의 서가를 둘러보던 그 청년은 <예수 다시 십자가에 못박히다>라는 책에 시선이 꽂혔습니다. 이름도 낯선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 그리스 작가의 책을 산 청년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단숨에 읽어버립니다. 작은 불씨가 큰 산을 태우듯, 책을 읽어가면서 그의 가슴에는 점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불이 일었습니다. 마침내 그 뜨거운 불길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렸습니다.

혼자 떠나 혼자 떠도는 여행이었지만 저자는 항상 혼자가 아니었다. 항상 그의 옆에는 카잔차키스가 함께하며 때로는 조언을, 때로는 설명을. 카잔차키스는 옆에 있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친구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카잔차키스의 무덤에서 제를 올리던 저자에게 관심을 보이던 택시기사는 카잔차키스가 그의 영웅이라는 저자의 말에 자신의 친구인 카잔차키스의 또다른 친구과 아낌없이 우정을 쌓는다.

그리스인들에게 우정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같이 사랑하고, 내가 살아가는 곳에 같이 살아가고, 내가 아끼는 것을 같이 아끼는 사람. 그것이 친구이고, 친구에게는 모든 선의를 베풀어야 하는 것. 그것이 그리스인들의 명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정'이란 말의 의미다. 이 우정은 곧 명예고, 거기에 용맹을 더하면 탁월함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그 명예를 누구보다 드높인 사람들, 그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나라, 다른 사회를 접하게 되면 어느 것 하나 정도는 부럽다는 감정을 가지곤 하게 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저자의 경험을 통해 느낀 그리스에 대해 부러운 것은 바로 이런 점이다. 처음보는 타인과 공감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을 믿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얼마전 우리나라의 사적 신뢰지수가 OECD에서 최하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신은 타인을 신뢰하십니까' 이런 문항에 대한 답을 통해 신뢰도를 조사하는건데 신뢰한다는 응답이 10명 중 3명이 안됐던걸로 기억한다. (정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말할 것도 없다) 분명 그리스도 경제 문제도 있고 하니 최하위권일텐데. 입장을 바꿔서 우리도 그리스인 택시기사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동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 말조차 걸지 않거나 공공장소에서 이상한 행동을 한다며 신고를 하지 않아도 다행은 아닐까.

글 이 옆으로 조금 새기는 했지만 박경철이 경험한 그리스도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경제 상황 때문에 불법체류 중인 외국인에 대해서는 폭력적인 태도를 가진 극우파들도 흔히 볼 수 있는 듯 하고, 과거에 영광을 누렸던 도시들이 유적조차 제대로 관리되거나 남아있지 못한 것을 보면 한탄이 나오기도 한다.

크레타 섬에서 카잔차키스를 매개로 나누었던 우정을 제외하면 아직은 코린토스나 스파르타 같이 펠로폰네소스 반도에만 머물러 있기는 하지만 몇 개 도시와 유적들,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서 그리스에 대한 많은 것을 보여준다. 나도 저자처럼 가슴에 그리스와 카잔차키스, 시골의사를 품고 함께 다음 여행지로 떠나길 기다려본다. 신들이 잠들어 있는 그곳으로.
by 청춘한삼 2014. 6. 6. 20:30
그리스 신화!!하면 어린 시절 한번씩 읽어보다 길고 복잡한 이름에 지쳐 결국 책을 던지고 마는..혹은 덮어버리게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싶다. (나만 그런가) 물론 몇년전에는 이윤기 선생의 그리스 신화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제우스나 포세이돈, 헤라클레스, 오디세이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그리스 신화 속의 개별 이야기들은 이전에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즐기는 이야기이다. 최근에는 영화들도 나오고 있고.

하지만 그리스 신화를 다루는 많은 책들에 아쉬운 점은 책을 읽는 대상을 어린이, 청소년으로 한정지은 듯한 구성을 보이거나 그저 옛날 이야기 정도로만 다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래된 이야기, 고전, 은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와 미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유독 그리스 신화에서는 이를 과거에만 한정시켜서 오래된 판타지 소설로 치부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카테고리 인문 > 철학
지은이 구본형 (생각정원,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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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차고 넘치는 자기계발서의 1세대라 불리는 구본형 선생이 생전에 출판한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를 과거에만 묶어놓지 않기 위한 노력이 느껴진다. 그렇다고 해서 이야기를 변형시켜 현재에 억지로 끼워맞추지는 않는다. 대신 신과 더불어 살아가던 그리스인들을 통해 현재 우리 삶을 비춰보고 현재 우리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신들에 의해 먹을 것을 먹지 못하게 된 탄탈로스와 언제까지나 산 정상을 향해 돌을 굴리는 시지프스를 통해 현재의 우리 모습, 혹은 지금까지 반복되온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아래와 같이 말한다.

조심하라, 신은 영리한 인간을 좋아하지 않아.
경솔하구나, 신인 듯 부귀와 권세를 누리는 자들.
모든 것을 용서하는 신들도 불경은 기필코 응징하나니
물리 출렁거려도 마실 수 없고 과일이 주렁거려도 딸 수 없으리.
가장 많이 가진 것 때문에 괴로워하게 되리니, 신의 것을 훔치지 마라.

날마다 같은 일을 땀 흘려 반복하는 것은
아직도 직장인들이 매일 하는 바로 그 일.
수없이 기를 써 올리지만 수없이 다시 굴러떨어지는 저놈의 바위.
언제는 일이 그친 것을 보았느냐.
세월이 얼굴에 깊은 고랑을 파고, 무의미를 반복하다 쓰러지는 구나, 우리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가장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험 정신일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운명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만큼 고대 그리스인들이 운명에 대해 두려움과 함께 경이감을 가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들은 운명에 대항해 모험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영웅으로 칭송했다. 하지만 현대에 자신이 모험을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원조 영웅 페르세우스나 누구나 알고 있는 헤라클레스, 트로이 전쟁에 나선 수많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내 인생은 그런 영웅들의 삶만큼 화려하거나 스펙타클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괴물들을 잡고 전쟁터에 나가야만 모험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의 하루하루는 우리가 점령해야 할 세계이고 운명이다. 사회와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필요하다면 혁명을 통해 운명을 바꾸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운명에 대항한 모험에서 우리가 판판히 깨질 수도 있고 더 큰 실패를 할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운명을 바꿀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운명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들을 남겨두었다. 오이디푸스는 그 중에서도 불운 of 불운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녀까지 낳는 운명을 따랐던 오이디푸스는 불행이라는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불행의 가속페달을 밟았지만 끝끝내 운명은 그를 거두어 주었다. '운명에 굴복하라'가 아닌 '운명을 사랑하라'. 이것이 저자가 그리스인 이야기를 정리한 하나의 계기가 아니었을까.

오이디푸스는 미약한 존재로서 아무 이유도 모른 채 우주가 전하는 부름을 받고 가장 불운한 삶의 길을 견뎌갔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간다. 그는 이 불행에 협력하여, 스스로 두 눈을 찌르고 고국에서 추방함으로써 그 불행을 정점까지 끌어올렸던 것이다. 불행의 절대적 의미를 완성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를 불행하게 만들 수 없게 되자 그를 그렇게 몰아세웠던 운명의 수레바퀴는 멈춰 섰다. 그리고 그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그 너머로 들어선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느끼게 되면서 비로소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시체는 아테네와 그리스 전체를 수호하는 성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이제 한 인간이 기나긴 고난을 지나온 후 자신의 지독한 운명을 용서하고 화해하게 되었다.


참고로 앙드레 보나르가 쓴 '그리스인 이야기'도 있으니 제목만 보고 착각하지 않으시길.
by 청춘한삼 2014. 5. 17. 17:30
관련글: 
 [그남자와 책] - 실마릴리온 - J.R.R. 톨킨

톨킨의 또 하나의 중간계 이야기, 후린의 아이들.
실마릴리온에서 나왔던 후린과 그의 가족들의 기구한 운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아이들'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아들 투린에 대한 이야기이다. 투린이라는 이름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도 잠시 언급되었다고 하지만 나도 기억이 안나고 아마 대부분 그냥 대사겠거니..라고 지나갔을 듯 하다. 나중에 영화를 다시 보면 찾아봐야겠다. 

후린의 아이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J. R. R. 돌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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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인간이기는 하지만 고귀한 혈통이자 영웅 후린의 아들로 태어나 절대악 모르고스(멜코르)의 저주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투린의 출생부터 마지막까지를 다루고 있는 일대기이다. 아버지만큼이나 뛰어난 영웅이었지만 기구하고 슬픈 운명을 등에 업고 살아가야 했던 투린의 삶을 따라가다보면 유한한 생명과 능력의 인간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운명, 혹은 숙명이라는 존재를 의식할 수 밖에 없다. 누구나 자신도 모르게 흘러가는 인생의 방향이 운명이라는 네비에 의해 이끌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투린의 극적인 삶에 빠져들고 공감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된다. 

운명과 비극을 섞여놓은 영웅이라고 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그나마 후린의 아이들, 투린과 니에노르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만큼 막장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사실 막장스러운 비극적 운명은 우리나라 드라마 인물들 하나하나가 후린과 모르웬, 투린, 니에노르를 다 합친 것보다 더 심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연속 개봉 중인 영화 '호빗'의 마지막 편에서 드래곤 슬래이어가 탄생하겠지만 6000년도 더 전에 최초의 드래곤 슬래이어였던 투린의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삶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추천
호빗과 반지의 제왕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추천
성격 나쁜 영웅 이야기를 싫어한다면 비추
by 청춘한삼 2014. 3. 30. 21:46
내소파위의남자들젊은여성심리치료사의리얼체험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브랜디 엔글러 (명진출판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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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우리은행에서 배송비만 내고 득템한 책이다. 자극적인(?) 제목때문에 눈길을 끌기도 했었더랬다.

젊은 여성치료사가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위해 개업한 성 치료소에 남자들이 더 많이 찾아와 놀라고 당혹스럽기까지하다. 하지만 이 남자들에게서 섹스라는 이야기를 걷어내고 나니 드러나는 심리가  더 흥미롭다.

늘 한눈을 파는 남자, 권태기의 위험에 처한 남자, 윤락여성과 섹스를 즐기는 남자, 야동에 빠진 남자, 매맞는 여자를 볼 때 흥분되는 사디스트 남자, 하루에 열명의 여자와 관계를 하는 섹스 중독자 남자까지.
사실 이 남자들을 주변에서 알게 된다는 혐오스럽고 화나기까지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속마음은 진짜 사랑을 찾는 남자들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른 존재이면서 섹스에 대한 생각도 다르다. 하지만 각자의 성에 대한 인식만 다를뿐 인간의 본성, 즉 성에 대한 욕구는 본질적으로 같다고도 볼 수 있다. 서로의 성에 대한 인식이나 생각의 차이를 대화로 풀어낸다면 함께 공감하고 상대를 신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육체적인 쾌락과 정신적인 만족이 동반될 때 사랑은 완성될 것이고, 그 만큼 사랑의 깊이도 깊어지지 않을까.

실제 상담사례를 엮어놓은 이 책은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는 내남편, 내 남자친구의 이야기 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가려져 있던 생각들을 통해 남자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폭을 넓히지 않았나 싶다. 그래도 어려운 존재 인건 어쩔 수 없지만.

사실 중요한 점은 남자 환자들이 성 치료에서 가장 관심을 보이는 주제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을  잘 알아채지 못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만족할 수 있는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남자와 여자의 성적 본성이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 남자와 여자가 자기 안에 있는 '반대쪽'성을 알아볼 수 있다면 연인이나 부부가 함꼐 성을 탐색할 발판이 생긴다. 섹스는 상처받기 쉬운 행위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웩","이상하고 역겨워"같은 말을 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체면보다는 함꼐 나누는 행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사람 말고 진짜 자기가 원하는게 무엇인지"를 시도 때도 없이 묻고 또 자기 자신의 참모습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설사 상대가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더라도 다른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자기다움을 지켜야 한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23. 15:02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는 미디어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몇 번이나 제기되었다. 방송사로 투하되는 낙하산 인사라든가 한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시각(경우에 따라선 팩트까지)을 보여주며 대립하는 방송과 신문들, 팩트를 전달하는 기사인지 논조를 가지는 사설인지를 알 수 없는 기사들, 정치적 편향성 논란, 지나친 상업성까지. 이전에는 표면 밑에서 (비교적) 조용히 벌어지던 문제들이 이제는 밖으로 뛰쳐나와 나같은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알려지고 있다. 

미디어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언제나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각에서 사실만을 전달하기를 바랬던 미디어가 이제는(혹은 원래부터)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디어 씹어먹기' 뒷표지의 '미디어는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크고 빨간 글씨는 흥미를 끌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디어 씹어먹기 - The influencing machine
카테고리 정치/사회 > 언론/신문/방송
지은이 브룩 글래드스톤 (돋을새김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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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씹어먹기' 뒷표지의 글을 조금 인용해보면, 

미디어가 의심받고 있다. 뉴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미디어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미디어가 정치와 자본, 이념과 진영에 종속되었으며 이제 대중이 아닌 그 배후에서 조종하는 어떤 세력의 이익을 대변한다고 믿는다. 미디어는 왜 편파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앞으로는 어떻게 진화하게 될까?


앞에서 언급했던 우리나라에서 불거지는 미디어에 대한 문제인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글이 아닌가 싶다. 이 글만 보면 우리나라 저자에 의해 나온 책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 브룩 글래드스톤에 의해 쓰여졌다. 아니 만화로 된 책이기 때문에 글은 글래드스톤에 의해, 그림은 조시 뉴펠드에 의해 그려졌다고 해야겠다. 물론 저 글은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썼겠지. 

책의 원제는 'The influencing machine'이다. 직역하자면 '영향을 주는 기계' 정도로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 미디어가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조종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미디어에 대한 책의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미디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것은 망상일 뿐이고 실제로 미디어는 우리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 거울은 강렬하고 퇴폐적이며 지루하고 또 초현실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흐리멍텅하고 군데군데 금이가고 깨져있는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과 주변의 사람들을 보기 때문에 혼란이 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안의 풍경 중 일부는 분명 우리의 모습이 들어있고 일그러진 거울 속 풍경을 제대로 인지하려면 어느 정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쉽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모순되거나 혼란스러운 보도를 접했을 때 원본 문서를 읽어보거나 미심쩍인 정보원에 대해 알아보거나,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다른 견해들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도 나와있지만 제퍼슨이 말한 것과 같이 '자유는 끊임없는 경계의 대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미디어에 대한 논란 중 하나는 미디어의 '객관성(입장)'일 것이다. 미디어는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미디어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이 논쟁을 해왔거나 할 예정일 것이다. 객관성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객관성에 대한 집착은 양비론이나 실제로는 전혀 균형잡히지 않은 균형보도로 이어지곤 한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예리한 보도들은 자기 주장이 센 기자들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예로 드는 것이 '스탠더드 오일 회사의 역사(아이다 타벨)', '노조간부제 기업의 새로운 도구(레이 스태너드 베이커)', '뉴욕(링컨 스테펀스)'인데 나로서는 모두 처음 듣는 기사들이다. 그리고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서로 링크되어 있는 시대의 새로운 형식의 미디어에서 저널리스트가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자신의 견해와 가치관, 일의 처리 과정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보원에 대해 명백히 밝히는 것밖에 없습니다. 
미디어 비평가 데이비드 와인버거는 웹의 영향력을 연대순으로 정리하고 예측했습니다. 
'투명성이 새로운 객관성이 된 거죠. 투명성은 독자들이 기존의 편견들로 인해 예상치 못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주는 정보를 제공합니다. 객관성이 그랬던 것처럼, 투명성은 신빙성을 제공합니다. 투명성이 없는 객관성은 점점 더 오만함으로 보이게 될 것입니다. 증거와 견해들 그리고 토론을 위해 웹을 활용할 수 있는데, 누군가가 선의의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우리가 왜 신뢰해야만 하는 걸까요? 객관성은 매체끼리 링크될 수 없던 시절에 의존하던 신뢰구조입니다. 이제 우리의 매체는 서로 링크될 수 있죠.' (...)
<타임>지의 제임스 포니워직은, 정치부 기자는 지지하는 사람을 명백히 밝힌 후 탁월한 저널리즘의 실천을 통해 편향성에 대한 공격을 반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정성의 시대에 허위는 훨씬 더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된다. 마치 공평무사한 대리석 신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제 근엄한 신전을 벗어나 책임감 있는 시민들처럼 우리도 선거에 관심이 있다고 인정해야 할 때이다. 그 후 책임감 있는 전문가들처럼 진실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미디어(혹은 개별 언론인)의 입장을 밝히고 그에 대한 기사를 쓰거나 보도하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견해를 토대로 상대편을 헐뜯거나 비난하기만 하거나 우리편 뒤를 닦아주라는 의미가 아니다. 물론 뒤를 잘 닦아주는 능력을 보여주어서 '대변인' 자리를 GRAP할 수도 있겠지만 진정 제대로 된 언론인이라면 포니워직이 말했듯 '탁월한 저널리즘의 실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현대 미디어 환경에서 자신의 견해를 밝혀야 하는 이유는 이를 통해 마음대로 발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용자(뉴스 소비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국가는 국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말이 미디어에도 그대로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진실을 파헤쳐서 양질의 기사를 쓰고 보도를 한다고 해도 아무도 읽거나 보거나 듣지 않고 대신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헐벗고 춤추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에만 관심이 있다면 미디어와 언론인이 어느 쪽에 더 집중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뉴스 소비자의 노력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은 아직 여러모로 현대 사회에 맞게 완전히 진화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편견이나 무의식을 비롯한 비이성적인 면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미디어는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 모습은 우리가 개별적인 자신에게 느끼는 것에 비해 훨씬 원초적인 모습을 많이 보일 수 있다. 개별 자신과 대중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결국 개개인 스스로가 의식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할 때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으로 미디어를 만들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저널리스트 로버트 라이트는 '인류는 일종의 시험을 앞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지만 내 생각엔 인류는 언제나 시험을 치고 있었다. 결과는 바로바로 나오지만 그 결과를 주의깊게 다시 들여다보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였을 뿐이다. 그리고 어제의 시험보다 오늘의 시험이 더 중요하지는 않고 마찬가지로 오늘보다 내일의 시험이 더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내도록 노력하고 역주행을 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과 내 의견이 범벅이 되어버려서 슬슬 마무리 하자면, 
이 글에서는 미디어의 객관성과 뉴스 소비자에 대한 내용만 언급했지만 책에는 미디어의 역사를 비롯해 흥미로운 내용들이 담겨있다. 특히 국가와 미디어 간의 역사와 관계에 대한 내용은 읽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 외에도 다른 만화책을 소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형식이 만화이기 때문에 내용이 덜 딱딱하다고 생각된다. 그림 대신 글자로만 그 분량을 채웠다면 아마 훨씬 재미없었을지도 모른다. 

평소 혹은 어떤 논란이 있을 때, 언론과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을 가져본 적 있다면 강추. 


덧. 뉴스 산업에 대한 비판에도 관심있다면 이 책을 추천.
  [그남자와 책] - 웰컴 투 뉴스 비즈니스 

덧2. 뉴스 소비를 비판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들을 추천.
  [그남자와 책] -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그남자와 책] -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by 청춘한삼 2014. 3. 16. 19:39
사의찬미손승휘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손승휘 (책이있는마을,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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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은행 책나눔에서 배송비만 내고 득템한 책. 사의 찬미는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 제목인듯한데 어찌 되었건 그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가이드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 살아가는 유학생 기훈은 어느날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 이탈리아인인 나타샤에게 '돈이 될만한' 음반을 사게 된다. 이것이 사死의 찬미 앨범. 우리나라에서 돈이 될 것을 안 기훈은 다른 상자도 있다는 나타샤에 함께 유품상자를 찾아 시칠리아의 오두막집으로 가게 되고, 상자안의 편지와 일기는 오랫동안 묻혀있던 슬픈 사랑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경성 최고의 여가수 윤심덕과 근대연극의 개척자 김우진.
모두가 알고 있는 현해탄에 몸을 던져 끝나버린 두사람의 사랑이야기에서 시작되고 아무도 모르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들까지.

비극에서 끝난 사랑이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처럼 현해탄에서 끝나버린 그들의 사랑이 거기에서 끝맺을을. 이 소설이 허구인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대로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되기를.

참, 3년만에 만난 기훈과 나타샤의 사랑 이야기도 궁금하다능.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13. 19:52
코난도일을읽는밤셜록홈즈로보는스토리텔링의모든기술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마이클 더다 (을유문화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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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1/11 - [그남자와 책] -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마이클 더다

"그남자"가 읽고 관심을 보이자 받은 책이다.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아니 책을 읽지 않는 사람도 코난도일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셜록 홈즈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

나역시 셜록홈즈로 추리소설에 입문했고, 셜록홈즈의 이야기라면 열심히 읽었다. 토요일 하교길 도서관에 들러서 어두컴컴한 서가에 서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소설들.(아 옛날이여-) 그 소설들의 스토리텔링이겠거니 하고 책을 펴서 읽었더랬다.

그런데 이 책에선 코난도일=셜록홈즈라는 공식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과 코난도일의 다른 책들까지 소개하는 센스를 발휘해주신다. 그저 셜록홈즈가 다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따끔한 충고를 해주시는 듯한.(반성하겠습니다.)
다른 시리즈들도 접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새록새록+ㅁ+

그리고 베이커 가 특공대라는 모임이(아니, 모임이 아닌가) 모임을 뛰어넘어 그들의 세상을 계속 이어가는 듯하다. 이들은 어릴때의 책을 뽑아들던 그 호기심이 어른이 되어서도 살아가게 하는 목적이자 욕망이 되는 듯해 아이이자 어른인 것 같은 이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아, 마지막으로 이책을 선사해주신 마이클 더다에게도 박수를.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3. 4. 22:16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후 '호빗'도 3부작 영화로 제작되어 차례로 개봉되고 있지만 '반지의 제왕'만큼의 호응은 얻지 못하는 듯 하다. '반지의 제왕'이 처음 개봉되었을 당시 처음 느껴졌던 방대한 스토리와 웅장하고 엄청난 시각적 효과는 소설을 읽을 때의 느낌 그 이상이었다. 영화 '호빗'이 완결되고 나면 이제 톨킨 작품의 영화화는 끝나는 것일까? 이제 남은 것은 '실마릴리온'과 '후린의 아이들' 정도인데 이들의 영화화가 더 쉬울지는 의문이다. 빌보와 절대반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호빗'과 달리 '반지의 제왕'과의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적기 때문이다. 없는 것이 아니라 적은 이유는 모든 작품의 스토리가 연관되어 있기는 하기 때문. 그 중 모든 작품의 뿌리와 줄기 역할을 하는 작품이 실마릴리온이다.

실마릴리온.1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J. R. R. 돌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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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마릴리온.2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J. R. R. 돌킨 (씨앗을뿌리는사람,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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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장르를 집대성한 톨킨의 노력 중 일부이지만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반지의 제왕'은 중간계에서 절대반지로 인해 발생하는 하나의 사건을 따라가며 보여준다. '반지의 제왕'에서도 절대반지의 탄생이라든가 이후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언급되기는 하지만 비어있는 내용이 너무나 많다. 이야기의 배경인 중간계는 어떤 곳인지, 사우론은 누구인지, 간달프는 어떻게 빌보가 젊을 때부터 늙어서 은퇴하고 반지를 프로도에게 넘길 떄까지 정정하게 돌아다니는지, 인간들의 두 나라(곤도르, 로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엘프와 드워프는 왜 사이가 나쁜지, '반지의 제왕' 마지막에 프로도가 배를 타고 떠나는 곳은 어디인지 등등 판타지 세계라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던 점들을 따져들면 끝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이미 톨킨에 의해 만들어져있다. 아니, 질문이 먼저 나오고 대답을 한 것이 아니라 톨킨이 창조된 중간계의 거의 모든 역사가 톨킨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중간계의 탄생, 신화, 기후, 지형, 종족들의 탄생, 역사적 사건들, 심지어 언어까지, 모든 것은 톨킨에 의해 창조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톨킨이 만들어 낸 세계가 이후 판타지 소설의 원류가 되는 것이다. 톨킨은 판타지의 아버지라는 호칭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실마릴리온은 '실마릴'이라는 보석에 대한 이야기이자 중간계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태초에 유일자 '일루바타르'는 '거룩한 자', 즉 '아이누'(발라)를 창조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중간계)를 창조한 뒤 일부 아이누들을 중간계로 내려보냈다. 중간계로 내려온 아이누들은 일루바타르의 첫째와 둘째 자손인 엘프와 인간이 중간계에 태어나기 전에 하늘과 땅, 바다 등 모든 것을 창조하고 관리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아이누 중 가장 힘이 강한 멜코브(모르고스)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동료들과 결별하고 악을 중간계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엘프 종족의 탄생 이후 페아노르라는 한 엘프가 실마릴이라는 보석을 만들어 내었다. 물론 멜코브는 태초의 빛을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보석을 탐내었고 음모를 통해 결국 실마릴을 차지한다. 페아노르는 모르고스로부터 실마릴을 다시 찾기 위해 광기어린 맹세를 하고 페아노르의 자식들도 이에 동참하고 오랜 세월 동안 실마릴을 찾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실마릴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책을 보면 알 수 있으니 관심 있으면 직접 읽어보시라.
 
실마릴리온에서는 실마릴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톨킨이 만들어 낸 중간계의 역사를 담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호빗'과 '반지의 제왕'은 나름 큰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실마릴리온은 그보다 훨씬 전, 중간계의 태초를 다루고 있다. 이 때문에 '반지의 제왕'에서 암흑의 군주로 나왔던 사우론은 세상의 검은 적, 모르고스, 의 부장에 불과하고 발라들의 시종이자 조력자인 마이아도 등장하기는 하지만 간달프와 사루만 같은 마이아들의 비중은 거의 없다.

역사이자 신화적 성격을 띄기 때문에 유머러스하거나 읽기에 편하지만은 않은 딱딱한 문체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오랜 기간의 이야기를 담다보니 등장인물도 많아 누가 누구인지, 누가 어느 종족의 어느 혈족인지 등을 기억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나는 전자책으로 읽다보니 아무 것도 모르고 등장인물이 나올 때마다 누구인지 적어가며 읽었지만 2권까지 다 읽고 나니 마지막에 가계도와 지도 같은 것들이 다 정리되어 있더라. 그게 헷갈려서 읽는 것을 세 번이나 포기했었건만. 종이책이었으면 어떻게든 넘겨보거나 훑어보면서 발견했을텐데..

어쨌거나 전호번호부를 읽는 듯한 등장인물들의 압박과 무미건조한 문체를 참아낼 수 있다면 판타지 소설의 뿌리를 읽어보는 경험도 나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반지의 제왕을 재미있게 읽었고 중간계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원한다면 추천한다. 하지만 정통(톨킨계) 판타지 소설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데 그런 분류의 소설을 읽고 싶다면 개인적으로는 호빗에서 출발하기를 추천한다. 반지의 제왕을 먼저 읽고 싶다면 영화를 먼저 독파하는 것을 추천하고. 아마 그런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지만 이 책으로 판타지 소설에 입문하려는 시도는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by 청춘한삼 2014. 3. 2. 16:41
케네디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랐던 이미지는 우선 암살, 다음은 69년 쏘아올린 아폴로 11호의 달착륙, 그 다음에야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이 이미지들로부터 케네디는 젊고, 과학기술에 투자했으며 평화를 달성한 대통령으로서 공항에 이름을 남길 정도로(JFK) 유능하고 존경받는, 하지만 비운의 대통령이라는 느낌을 주는 역사 속 인물이었다. 당시 냉전 상황에 대해 전혀 이해가 안되있었기 때문에 이미지들 중 뒤의 두가지가 연결되있다는(물론 암살의 배후는 아직 알 수 없다) 것을 눈치채지는 못했다.

이렇게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던 케네디의 기록물을 토대로 한 책이 나왔다. 기록물에도 여러 종류가 있겠지만 이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기록물에 기초하여 쿠바의 미사일 기지가 발견되고 어느 정도 위기가 해소될 때까지 13일 간에 발생한 사건과 관련 회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존 F. 케네디의 13일 - 쿠바 미사일 위기, 거짓말, 그리고 녹음테이프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셀던 M. 스턴 (모던타임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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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나 세계사에 관심있는 사람이 아니면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나만 해도 쿠바에 미사일이 발견됐고 케네디가 해상 봉쇄를 비롯해 소련에 경고를 했고 소련이 그 것을 받아들여 무기를 실어나르던 배들의 목적지를 바꿈으로써 전쟁을 막았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이 정도이긴 하지만 이 두 줄 남짓의 서사 내부에서 벌어지던 긴박한 상황의 디테일을 파악하고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케네디가 직접 회의를 녹음한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당시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방대한 양의 녹음 테이프 내용을 정리하고 해설을 달아준 저자에 의해 이 책도 나올 수 있었다.

쿠바 미사일 사태는 1962년 10월 14일, U2 정찰기에 의해 쿠바에서 소련의 미사일 기지가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련이 아닌 쿠바의 미사일 기지에서 핵미사일이 발사된다면 미국 본토는 시애틀 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핵공격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게 되는, 미국에게는 그야 말로 목에 칼을 대고 살아가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월 16일부터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엑스콤) 회의가 대통령 주재로 계속해서 열리게 된다. 이 때의 엑스콤 회의들을 녹취한 내용을 바탕으로 핵무기를 이용한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한, 혹은 하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쿠바의 미사일 위기는 어느 정도 미국이 자초한 결과이다. 미국은 쿠바의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하기 위해 직접적인 군사작전을 포함한 시도들을 해왔다. 쿠바나 소련 입장에서는 쿠바 침공 억지를 위해 미사일 배치를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상황이었다. 미사일 기지가 발견되기 직전만 해도 쿠바 전복을 위한 몽구스 작전에 대한 회의가 케네디 대통령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기도 하다. 미사일 위기가 해소된 이후에도 쿠바 정권 전복 작전은 계속 되었다. 케네디 대통령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처럼 평화의 전도사는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 내의 평가도 마찬가지다. 대중에게 케네디는 매파였고 냉전 이데올로기를 통해 대통령이 되었고 대통령 임기 동안 '완고하고 타협할 줄 모르는 냉전의 전사였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 미사일 위기가 당시 최강대국 간의 핵전쟁을 통해 지구적 종말을 불러오지 않은 이유는, 케네디 대통령의 타협적이고 비군사적인 외교적 노력 때문이었다. 군사적 행동을 주장하는 엑스콤 회의 참가자, 특히 군인들에게 굴복하지 않고 공멸이 아닌 공존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어느 한 순간 머리 속에서 떠오른 발상이 아니다. 젊은 시절 해군 장교로 복무하면서 느꼈던 전쟁의 참혹함에서 비롯된 전쟁에 대한 혐오증이 세월을 지나서 자신에 선택에 의해 전쟁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막기 위한 노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비록 불완전한 인간이라 갈등하기도 하고 망설이기도 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목적을 위해 주변을 설득하고 헤쳐나가는 모습을 통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과 자질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국가 최고 정책은 대통령의 가슴과 머리에서 나오거나, 적어도 대통령의 인격에 의해 담금질된다. 대통령의 확신과 열정은 가족과 학교와 젊은 시절의 경험에서 우러난 생각과 거의 항상 관련이 있다. p. 58

이 책의 단점이라면 곳곳에 지뢰처럼 숨어있는 오타다. 비단 역사를 다루는 책이 아니라 하더라도 오타가 있으면 책의 완성도에 대한 믿음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역사책이라면 그점이 좀 더 아프게 다가온다. 이런 괜찮은 내용의 책을 내놓고 사소한 오타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게 하다니..교정은 어차피 돈주고 외부에 맡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돈을 아껴보려고 너무 싼 곳에 맡겼거나 출판사 직원들이 직접 했다가 이렇게 됐나보다. 아래는 오타들의 몇 개 예시이다. 찾고도 귀찮아서 표시안해둔 것도 있다.

새로운 핵 시대의 새벽에 새로운 미국 국제주의의가 내세운 이상주의적 말들은 정치경제적 지배를 향한 미국의 욕구를 확실하게 숨겼다. p.38
케네가가 "어쩄든 저도 그렇다고 봅니다"라고 답한다. p.113
흐루쇼프로가 서반구에서 미사일 군비를 크게 확대할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p.125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상황을 대입해 볼 수 밖에 없다. 전쟁의 가능성이 크지는 않더라도 여전히 남아는 있고(가능성을 크게 보는 양극단의 돌+아이들도 있지만) 평화를 깨기 위한 방아쇠를 당길 기회는 최근 몇 년 간 꾸준히 있어왔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결정적 상황이 벌어졌을 떄 우리나라의 소위 지도층에서도 평화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내막도 모른 채 전쟁의 포화 속으로 이끌려 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할까? 개인적으로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었다.

슈퍼 히어로 대신 현재의 지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과 사건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어떤 사람이나 사건의 뒷 이야기들에 흥미가 있다면 추천.
불완전한 인간이 주변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쟁취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면 추천.

덧. 책을 소개하는 기사나 인터넷 서점들의 소개글을 보면 녹취 테이프가 만들어지게 된 이유로 케네디가 1961년 피그스만 침공 실패 이후 말을 바꾼 자문위원들에게 화가 나서 이후부터 녹취를 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정작 책을 보면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고 나와있다. 앞에 말한 이유일 수도 있지만 좀 더 가능성 있는 것은 퇴임 후 회고록 작성을 위함일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녹음 장치를 설치한 사람들도 그 이유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든 기사나 소개글들이 하나같이 피그스만 침공 실패를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아무도 책의 내용을 읽어보지는 않은 듯 하다. 아마 출판사에서 좀 더 극적으로 보이는 첫번째 이유를 대면서 책 소개글을 기자와 서점들에 배포하고 이를 토대로 기사가 작성된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하지만 녹음 장치가 설치된 이유와 마찬가지로 진실은 알 수 없다.
by 청춘한삼 2014. 2. 26. 20:00
작년 가을 동안 드래곤 라자를 오랜만에 정주행했다. 처음 읽었던 때가 중2였으니 나이가 두 배가 되어서 읽은 건데 나이가 더 들어서인지, 어렴풋한 기억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던 기억의 틈새를 메워서인지, 아니면 처음 읽을 때 워낙 급하게 읽어서 제대로 뭔가를 느낄 시간 조차 없어서 그랬던 것인지, 어떤 것이 주요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판타지 소설은 아예 장르문학이라고 지칭되면서 주류(?) 혹은 일반 문학과 따로 분류되는데 드래곤 라자는 이야기의 배경이 판타지 세계라는 것 외에는 주제 의식이라든가 내용의 구성, 전개 능력처럼 더 중요한 것은 다를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자 자국은 드래곤 라자가 나온지 10년이 되는 것을 기념해 나온 작품이다. 이 점만 가지고도 진작에 읽어보았어야 하는 작품인데 출간된지 5년이 넘어서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혹시 출간된지 5년이 넘은 작품의 내용을 언급하는 것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래를 보지 말고 당장 창을 닫으시오. 

그림자 자국(양장)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이영도 (황금가지,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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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자국'에서는 '드래곤 라자'의 이야기에서 천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이다. 10주년 기념으로 나온 소설이라 '드래곤 라자'의 팬들을 배려해서인지, 바이서스 제2의 건국의 시기에 활약했던 '드래곤 라자' 주인공들이 영웅으로 남을 수 밖에 없어서인지(아마 둘 다 겠지) 곳곳에서 '드래곤 라자' 출연진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엘프인 이루릴은 이번 작품에서도 거의 주인공 급으로 출연하며 대부분의 드래곤보다도 나이가 많은, 최고령 엘프녀 배역을 소화한다. 또한 마법사 아프나이델은 이번 작품에서 핵심이 되는 소재를 제공함으로써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번 작품의 특징을 들자면, 이영도의 다른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면을 조금씩 '그림자 자국'에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선 이야기의 핵심적인 인물인 예언자의 등장. '드래곤 라자'에서도 자이펀식 카드점을 보는 예언자(?)가 등장했을 때도 그랬지만 퓨처워커에서 나왔던 '미'와 주변 인물을 통해 드러냈던 예언의 위험성을 다시 한 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사람들은 예언자가 예언을 하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예언이 아니라면 받아들이지 못하고 미래를 바꾸려 한다는 점을 통해 작품 내내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주면서 작품을 이끌어 간다. 주인공들 외에 제대로 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왕밖에 없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정말로 이런 예언가가 있어서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떠벌리고 다닐 때 사람들이 자신의 삶과 미래에 대해 가질 태도는 아마 다음 내용과 같을 것이다. 

왕비는 느긋하게 도착할 생각이었지만 그녀가 소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예언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왕비는 여유 있게 보이려면 책이라도 한 권 붙잡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곤 가까운 곳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의자에 앉았습니다.그것은 고전 추리 소설이었습니다.
(...) 따라서 왕비는 탐정에 대한 살해 시도가 묘사되기 시작했을 때 완전히 수긍하며 몰입했습니다. 소년이 어떻게 당하게 될지 궁금해하던 왕비는 헛기침 소리를 들었어요.
(...) 예언자는 왕비를 올려다보다가 시선을 옮겼습니다. 그의 시선은 책상 위에 놓은 책을 향했죠. 왕비가 의아하여 쳐다보았을 때 예언자가 책을 보며 말했습니다.
"범인은 영주의 아들입니다."
 (...) 왕비는 침소로 돌아가 책이나 마저 읽다가 자기로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책으로 손을 뻗던 왕비는 그 손을 멈췄습니다. 그녀는 당혹감을 느끼며 책표지를 노려보았지요. 그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많이 식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범인은 영주의 아들입니다.'
문득 왕비는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메스꺼움을 느꼈습니다.

또 하나를 들자면, 이루릴의 역할이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균형을 잡는 신들의 역할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드래곤을 보살피는 듯 하지만 이전에는 세상을 구하기 위해 드래곤들을 죽이기도 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드래곤들을 구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선 오랜 친구인 드래곤 레이디와 맞서 싸울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드래곤 라자'의 이그누스 드래곤이 그러했듯(그러하다고 언급되었던 듯) 완전히 균형을 잡는 것은 어느 하나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황희 정승처럼 니말도 옳다, 니말도 옳다 식의 좋은게 좋은거라는 자세가 아니라 전체를 냉철하게 인식하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단수의 존재가 아닌 인간보다는 엘프나 드래곤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비인간적인 캐릭터를 이용하더라도 캐릭터가 너무 작위적이거나 어설픈 구성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판타지 소설의 장점이 아닌가 싶다. '드래곤 라자'에서 이루릴과 인간들을 통해 인간에 대한 얼마나 많은 통찰을 선보였던가

마지막으로는 시간에 대한 관심 또한 '퓨처 워커'에서 드러냈던 핵심 주제 중 하나였다. 물론 그림자 지우개를 통해 발생한 수없이 많은 시간의 변화와 그로 인한 혼돈은 '퓨처 워커'에서 다른 사람들의 미래를 자신의 현재로 대신하려던 악역 때문에 발생했던 혼돈과 다르기는 하지만.

내가 '눈물을 마시는 새'나 '피를 마시는 새'는 읽어보지 않아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그 작품들에 관련된 요인도 있을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이 '드래곤 라자'의 후속편이기 때문에 '드래곤 라자', '퓨처 워커'의 내용과 그 안에 들어있던 생각을 더 많이 따왔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이영도도 평생을 두고 추구할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과 가격이 큰 차이가 안나서 고민하다가 전자책으로 사서 읽었는데 멋진 표지(다 읽고 나서 표지를 다시 보니 왜 표지의 주인공이 '그' 드래곤인지 알겠더라)에 한 권 밖에 안된다는 걸 생각하면 종이책으로 살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고 다시 볼 것 같은데 아쉽네.

드래곤 라자를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직 못 읽어본 모든 사람에게 강추.
재미있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
판타지 소설은 유치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추천.


덧. 뱀파이어도 천년은 살지 못하는 것인지 결국 타이번은 결국 출연하지 않았다. 드래곤 로드도 펫시를 가진 뒤에는 늙어 죽어버린건가.  

by 청춘한삼 2014. 2. 10. 21:39
벽으로드나드는남자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마르셀에메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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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라고 하면 알려나. 무슨 이런 제목이 있나 싶어 줄거리를 찾아봤었는데, 이번에 원작을 만났다. 물론 남친님께서 선사하신 덕에.

이 책은 프랑스에서 잘 볼수 없는 단편 작가 "마르셀 에메"의 단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생존시간카드>, <속담>, <칠십리 장화>, <천국에 간 집달리>로 다섯편이 담겨있다. 다섯 편 모두 간단하고 짧은 내용이긴 하지만 생각에 있어서는 아닌 듯 하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고나 할까.

작가는 책 속에 담긴 환상적인 요소들로 인하여 생각지 못한 반전으로 이루어진 결말을 선사한다. 그리고 프랑스 작가 같지 않은 즐겁고도 경쾌한 요소들이 잘 버무려져 하나의 단편 소설을 완성한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에서는 갑상선 협부 상피의 나선형 경화가 생겨 벽으로 드나드는 능력을 가지게 된 뒤티유욀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처음엔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를 혼내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가루가루라는 이름의 도둑으로 명성을 떨치고, 또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에서 낭만적인 사랑에 까지 빠진다. 결말이 슬프긴 하지만 유쾌하고 또 유쾌하다.

이 외에 <생존시간카드>에서도 말 그대로 생존의 시간이 정해져 있는 카드로 인하여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다루는데, 이 속에서 빈부격차나 지하세계등 사회적인 문제들까지도 살짝은 다루고 있어 흥미진진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두껍게 써내는 것보다 이런 짤막한 단편들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것이 재미지다고 할까?

남친님께서 이번 책의 평은 어떨지 초조해 하고 있을텐데, "우왕 굿!" 너무 재밌었다.
유럽문학의 재미난 단편을 느끼고 싶다고 요런 짧은 책은 어떨런지.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2. 10. 19:26
28정유정장편소설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지은이 정유정 (은행나무,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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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정유정 작가님의 소설을 읽었더랬다. 7년의 밤이후로 얼마만에..
표지를 보는 순간 숫자만 덩그러니 적혀 있어 뭐지 했었다. 요즘 열혈 모드로 책 후원해주시고 계신 남친님의 선택이라는.

알래스카에서 열리는 썰매대회에서 늑대에게 공격 당해 생사를 헤매는 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28일 동안의 감염에 걸린 도시 '화양'의 재난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걷잡을 수 없이 퍼지는 전염병. 그 도시에 갇혀진 사람들.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개. 모조리 학살 시켜버리는 정부. 재난영화나 재난 이야기들의 똑같은 룰을 따르고 있지만, 그 속에 감춰진 사람의 잔혹함, 인간성의 끝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개들을 위해 살아가는 남자 서재형, 그 뒤를 쫓던 기자 김윤주, 충성심 가득한 스타와 쿠키, 늑대개 링고, 남동생과 아버지 걱정뿐인 응급실 간호사 노수진, 가족을 잃어버린 구급대원 한기준, 가족에게 배제되 살아온 박동해까지. 각각의 시선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들이 이어져 어우러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흡입력있게 쏙쏙 빨려들어가는데, 끝 마무리가 영 쓸쓸하다. 혼자 하는 한탄이긴 하지만, 전염병에 대한 원인이 모호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왜 살아남은 것인지 궁금하고. 영 개운치 않은 결말이었다.

덧,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은 '희망'이었던 것 같은데, 스토리에 치중해서 인지 서둘러 끝내버린 것은 아닐까.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12. 22:55
셜록 홈즈.
홈즈가 등장한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구나 그 이름은 한 번 정도 들어보지 않았을까. 대다수의 어린이들이 꿈꾸는 모험과 긴장감에 더불어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홈즈 시리즈에 나 또한 빠졌었다. 아니, 빠졌다고 하기에는 많은 작품을 읽어보지는 않았었긴 하다. 단편 몇 편 정도.

코난 도일을 읽는 밤 - 셜록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마이클 더다 (을유문화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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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홈즈를 어떻게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학교 도서관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고, 친구 집에 놀러갔다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책은 기억하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한 권이 홈즈 단편 몇 가지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난 당한 잠수함 설계도를 찾는 이야기(아마 브루스 파팅턴 설계도)를 비롯해 '너도밤나무 집', '도둑맞은 시험문제' 정도가 기억난다. '얼룩 끈의 비밀'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재작년 정도까지도 본가에 책이 있어서 한번씩 읽어보곤 했지만 책을 기부해버리고나니 더이상 볼 수가 없다. 

학교에 있는 동안, 정확히는 2011년 12월부터 2012년 1월 정도까지 학교 전자도서관에서 홈즈 단편선을 모조리 읽었었더랬다. 전자책을 사면 한권에 500원 정도 하는 것 같던데 어차피 도서관에 있으니 다 빌려봤었다. 재밌게 읽기는 했는데 장편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번역을 좀 대충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홈즈가 등장하는 장편은 '네 개의 서명'과 '춤추는 사람 암호'를 읽어봤었다. 다른 작품도 읽어봤었는지 기억이 잘 안나지만 아마 어릴 때 더 읽어보긴 했었을 듯. 하지만 '네 개의 서명'과 '춤추는 사람 암호' 역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나마 부산 추리문학관에 갔을 때 읽었던 '주홍색 연구'는 조금 기억이 나는 장편이기는 하다.

사실 코난 도일은 홈즈 시리즈만 썼던 것은 아니다. 내가 읽어 본 작품은 '잃어버린 세계' 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 작품의 챌린저 교수 역시 홈즈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였다. 이전에 '잃어버린 세계'에 대한 리뷰를 썼던 기억인데 어찌된건지 이 블로그에 없다. 아마 이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에 있었던 듯 한데 백업 데이터가 티스토리에서 제대로 복원이 안되서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글이 되버렸다는게 아쉽다.

책의 저자인 마이클 더다는 이런 나와는 비교도 안되는 셜록 홈즈 매니아다. 셜록 오타쿠라고 할까나, 서양이나 셜록 너드라고 해야하려나. 아니, 이렇게 말하는거보단 '베이커 가 특공대' 회원이라고 하는게 제일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인듯하다. 그런 저자가 자신과 셜록 홈즈와의 인연, 베이커 가 특공대 모임, 코난 도일의 작품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어찌보면 코난 도일에게 바치는 헌정으로 볼 수도 있고, 셜록 홈즈와 코난 도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책이기도 하다. (책에는 '베이커 가 특공대'에게 바친다고 되어있다) 본문에서는 아래와 같이 셜록 홈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홈즈의 공적을 기록한 왓슨의 글을 읽게 된다. 어릴 땐 능란하게 유지하는 속도감과 스릴 넘치는 줄거리 때문에 읽는다. 더 나이가 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정의로워 보이던, 혹은 최소한 이 세상의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처럼 보이던 시절, 가스등 불빛이 은은하게 빛나는 아득한 1895년으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에 읽는다. 성인이 된 다름엔 베이커 가의 하숙생활을 묘사한 삽화들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탐정과 의사 간에 오가는 대화에 미소 짓거나, 너무나도 매혹적인 홈즈 특유의 관용구가 등장하길 애타게 기다리면서 읽는다.


책의 원제는 'On Conan Doyle'이고 부제는 'The whole art of storytelling'이다.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은 정말로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내용과도 연관이 되어 있으면서도 낭만적인 느낌을 주고, 책의 표지와도 잘 어울린다. 다만 부제를 '셜록 홈즈로 보는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이라고 붙였는데 '셜록 홈즈'를 추가해서 홍보와 판매량을 늘려보겠다는 의도가 보인다는 점이 아쉽다. 책의 내용은 '셜록 홈즈'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코난 도일'의 작품들을 폭넓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셜록 홈즈의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특히 나도 읽어보았던, 챌린저 교수가 등장하는, '잃어버린 세계'를 비롯한 시리즈나 코난 도일이 홈즈 시리즈보다 더 선호했던 역사소설 이야기도 다루면서 코난 도일의 작품 세계에 대해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안내한다.  

후세의 독자들은 너무나도 자주, 어떤 작가의 천재성이 다방면에 걸쳐 있다는 사실에 관계없이 대표작 한두 편 정도로만 그를 기억하곤 한다. 빅토리아 시대 소설 연구자들을 제외한다면, '허영의 시장'말고 윌리엄 새커리의 또 다른 소설을 읽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고독을 훌륭하게 묘파했던 샬럿 브론테의 '빌레트'는 '제인 에어'에 가려졌다. 셜록 홈즈가 누렸던 전 세계적인 인기는 처음부터 그 창조자의 심사를 건드렸다.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탐정의 모험담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지만, 코난 도일이 썼던 다른 모든 작품에서 광휘를 빼앗아 버렸다. '잃어버린 세계' 정도가 부분적인 예외였다. 하지만 '얼룩 띠의 비밀', '바스커빌 가문의 개', '기어 다니는 남자' 등 홈즈의 주요 작품에 걸쳐 되풀이 등장하는 고딕적인 요소는 적어도 아서 코난 도일이 무서운 소설 세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이 책은 애정이 가득한 비평서 혹은 안내서라고 볼 수 있을 것인데 셜록 홈즈 시리즈를 재미있게 읽었던 경험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이 두껍거나 내용이 어렵지도 않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다. 흔히 '양덕'이라고 하는 서양 덕후들 중 셜록 홈즈 덕후들은 어떻게 노는지를 알고 싶은 사람 역시 읽어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면 추천.
코난 도일의 다른 작품에 대한 소개를 원한다면 추천.
셜록 홈즈 덕후들이 어떻게 노는지 알고 싶다면 강추.


덧. 오타 지적.
  180페이지 주석에 '여섯 점의 나폴레옹 상 The advanture of the Six Napoleons Six Napoleons'에서 나온 이름이다.' 라고 되어 있는데 보면 알겠지만 Six Napoleons가 두 번 적혀있다.

관련글
 2013/02/11 - [그남자와 책] - 셜록 홈즈 : 실크하우스의 비밀 - 그가 돌아왔다
by 청춘한삼 2014. 1. 11. 22:03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로알드 달 (강,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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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맛'이라닝! 로알드 달은 어디선가 들어봤다 했는데 알고 보니 유명작가였더라...팀버튼 감독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라는 영화의 원작을 쓴 작가라고 한다면 알려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나의 얕은 지식.

언제나 상상력 풍부하고 허를 찌르는 소설을 쓰신다는데 이 한권에서는 10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다.

목사의 기쁨, 손님, 맛, 항해거리, 빅스비 부인과 대령의 외투, 남쪽남자, 정복왕 에드워드,
하늘로 가는 길, 피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작가에서 최고의 이야기꾼이라고 붙은 홍보문구가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다. 한소절을 읽고나면 더 읽고 싶고, 또 뒤가 궁금하고. 이러다보니 순식간에 속독을.

작가는 각 단편마다의 주인공들과 내기를 벌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 모든 이야기가 재미와 위트가 있고 문장자체도 깔끔해 쉽게 읽을 수 밖에 없다.

참, 그런데 마지막이 항상 좀 으스스한 반전으로 끝난다는 사실. 읽으면서도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끝날까 궁금하기도 하고. 웃음을 짓고 싶다면 이런 이야기꾼의 소설을 추천드립니다.

덧, 요즘 계속 남친님께서 책을 사주고 계시는데 늘 감사의 말씀을, 고마워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4. 1. 5. 23:18
어느새 2013년도 마지막이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큰 변화를 겪은 해이다보니 시간이 좀 더 빨리 흐른 것 같기도 하다. 안그런 해가 없기는 했지만 특히 어떻게 시간이 갔나 싶은 한 해다. 

책읽기만으로 한정해서 보면 2013년은 상고하저다. 1월에서 4월까지는 열심히 읽어나가다가 바빠지면서 점점 완독한 책이 줄어들고 여름 이후에는 진도가 잘 안나가는 한해였다. 그러면서 블로그에 포스팅도 작년에 비해 훨씬 덜 한 것 같은데 지금 세어보니 큰 차이는 없다. (연말 정산 외 책 감상 포스팅만 2012년 30개, 2013년 29개) 하반기에 지지부진하다보니 그렇게 느꼈나보다. 

작년에 이어 2013년 한 해 동안 읽은 책 중 기억에 남는, 남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 몇 권을 골라본다. 순서는 무작위이니 책들 앞의 숫자를 순위로 생각하지는 마시길. 

 2013년 그남자가 읽은 책 중..

1.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김태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군중십자군과 은자피에르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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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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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3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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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4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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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김태권'이 쓴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다. 4권까지 봤는데 책 정보를 첨부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여름에 5권이 출간되어 있었다. 내용은 인터넷 서점에서 연재되고 있으니 원한다면 찾아가서 한번 보는 것도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인류가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짓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십자군 원정을 현재의 시대와 더불어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썰렁한 유머를 참아낸다면 기대보다 많은 것을 얻고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13/03/01 - [그남자와 책] -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 십자군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세트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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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도 역시 십자군 이야기다. 하나에 꽂히니 다른 것을 찾아보게 되었는데 최근에 출간되었고 네임밸류도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이 금방 보이더라.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처음 읽었는데 왜 유명 작가인줄 알겠더라. 술술 읽히는 것이..물론 저자가 아닌 역자의 능력일수도 있기는 하지만. 십자군 원정에 대해 궁금하다면 강추한다. 
2013/03/09 - [그남자와 책] - 십자군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2013/04/06 - [그남자와 책] - 십자군 이야기 2 - 시오노 나나미
2013/04/13 - [그남자와 책] - 십자군 이야기 3 - 시오노 나나미


3.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빌 브라이슨)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카테고리 여행/기행 > 해외여행
지은이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북이십일,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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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읽어 본 여행기 중 가장 재미있는 작품. 빌 브라이슨과 유머 코드가 맞다면 최고의 책이 아닐까. 
2013/04/28 - [그남자와 책] -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빌 브라이슨
2013/04/24 - [그여자와 책] - 발칙하다 못해 유쾌하다! 발칙한 유럽산책


4. 욕망해도 괜찮아 (김두식)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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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교수 아저씨의 자기고백. 이런 책을 하나 내놓으면 이후로 세상 살기 편해지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평소 욕망과 규범 중 어떤 것을 선택할지에 대한 갈등을 겪지 않는 사람은 없기에 사람들이 이 책을 한번씩은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창비 팟캐스트를 통해서 목소리와 유머감각을 접하고 조금 실망하기는 했지만 글은 믿을만하다. 
2013/05/26 - [그남자와 책] - 욕망해도 괜찮아 - 김두식
2013/05/21 - [그여자와 책] - 욕망해도 괜찮은 거겠죠?


5.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마이클 굿윈)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 자본주의 탄생에서 세계금융위기까지 경제는 어떻게 작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마이클 굿윈 (다른,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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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더불어 만화로 된 교양서. 경제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쉽게 알려주는 책은 흔치 않다. 
2013/12/03 - [그남자와 책] -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6.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위화)
사람의목소리는빛보다멀리간다위화열개의단어로중국을말하다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지은이 위화 (문학동네, 2012년)
상세보기
현재의 중국이 어떤 과거를 딛고 현재의 중국이 되었는지를 위화가 보고 겪은 과거와 현재를 통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올해 '허삼관 매혈기'도 읽었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좀 더 기억에 남고 의미있다.
2013/03/31 - [그남자와 책] - 사람의 말은 빛보다 멀리간다 - 위화


베스트 1, 3, 5, 10 정도를 뽑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나까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니 6개만 뽑았다. 이 외에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더 있기는 하지만 이미 포스팅 한 것들도 있고 아닌 것들도 있고하니. 재미도 없는 포스팅의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느라 수고한 당신에게 2014년에는 2013년보다 더 나은 한해가 되길 빌며 이만 끝. 
by 청춘한삼 2013. 12. 31. 21:09
모든 사람이 경제 때문에 울고 웃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면서도 경제가 돌아가는 원리를 설명해주는 틸인 경제학에 대해서는 어렵다는 이유로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만화로 보는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의 저자인 마이클 굿윈은 사람들이 가진 경제에 대한 의문들, '나는 왜 우리 부모만큼 잘살 수 없는 걸까?', '내년에도 직장을 다닐 수 있을까?', '우리 애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와 같은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들려주는 책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직접 책을 쓰게 되었다. '답답하면 니들이 책을 쓰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지식을 뽐내기 위해 어렵기만 하게 책을 써온 학자와 지식인들에 대한 대답의 의미도 있겠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경제에 대한 의문은 있지만 해답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최대한 쉽게 경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경제학의 거의 모든 것 - 자본주의 탄생에서 세계금융위기까지 경제는 어떻게 작동해 왔는가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마이클 굿윈 (다른,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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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에 '만화로 보는'이라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말랑말랑하고 쉽기만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책의 주목적이 재미가 아닌 정보전달이기 때문에 만화치고는 글도 많은 편이다. '먼나라 이웃나라'를 떠올리면 비슷하려나. 하지만 글만 있는 것보다는 그림이 있는 편이 더 쉽게 집중할 수 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은 틀림없다. 

만화이기 때문에 그림도 중요한데 일본이나 우리나라 만화책에서 주로 보이는 그림체보다는 서양 만화의 그림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미국 사람이 그린거니 당연한거기도 하지만..) 표지의 그림이 전형적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책의 구성은 기본적으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다. 아담 스미스 이전부터 오늘날까지를 시대에 따라, 중요한 경제적 사조에 따라 챕터가 나뉘는데 중간중간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거나 뛰어넘기도 한다. 이 책은 경제학을 시대에 따라 가르치는 것보다는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빈번하게 직접 등장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나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비교적 알기 쉽게 썼다는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비단 내용을 정리하고 설명하는 방식만이 아니라 용어들에 대한 주석이 잘 달려있기도 하고 인덱스와 참고 문헌도 잘 정리되어 있어 익숙하지 않은 용어가 나오거나 다시 찾아볼 내용이 있거나 하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편이다. 단점도 없지는 않은데 그 중 하나는 미국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점일 것이다. 이 부분은 저자도 본인이 미국인이고 미국의 경제제도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어차피 미국이 전 세계의 경제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 중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의 경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미국 경제에 집중한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둘 다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해 파헤치고 (다른 책들에 비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라면 경제적 현실이 어려운 시기에 쓰여졌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알기'는 1930년대 대공황 시기를 거치면서 쓰여져 대공황 이후 세계가 어떻게 될지 의문을 던지며 책이 마무리 되었다. 이 책은 금융위기와 이후 현재 나타나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해결책들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말하며 끝난다. 

저자가 언급한 해결책에 대한 내용 중 한 부분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핵심은 민주주의입니다. 모두가 계획에 동의하기 때문이 아니라, 동의하지 않는 소수도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경제는 잘 작동되고 있을 때에도 심각한 결함들이 나타났다. (...) 이 결함들을 고치려면 경제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 스스로 물어봐야 합니다.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다. (...)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법을 통한 해결만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을 통해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저자가 말한 해결책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저자는 현재의 경제상황 -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대기업이라든지 선진국과 WTO 등에 의해 행해지는 폭력적인 형태의 세계화, 환경오염과 같은 - 과,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더 상황을 악화시키는 정책을 원하는 정치인들에게 비판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종북 취급을 받겠지만 사실 그는 미국의 민주당 입장에서 조금 더 진보적인 수준으로 보이는 정도다. 사실 둘 모두에 대해 비판적인 것일지도. 그러니 정치적인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보거나 안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경제학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거나 쉽게 정리하고 싶다면 강추.  


참고 
자본주의역사바로알기 상세보기

 
by 청춘한삼 2013. 12. 3. 18:34

너무예쁜소녀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얀 제거스 (마시멜로,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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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싼가격에 득템했다고 남친님께서 챙겨주신 소설. 제목만큼이나 표지도 자극(?)적이고 여튼 보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더랬다.

책표지부터 책에 대한 찬사가 많이 나오길래 진짜 혹했었는데, 이건 뭐지... 스릴러인가 추리인가. 알 수 없는 장르로 전락하고 말았다.

프랑스의 어느 깊은 산골 같은 마을에 예쁘다는 말로 부족한 미모를 가진 소녀가 나타나고 이 소녀는 마을의 과부와 함께 살게된다. 어느날 과부가 죽고 소녀는 사라져버린다.

장소를 옮겨 프랑크 프루트의 한 여름. 도심 속 공원 숲에서 잔인하고 잔인하게 살해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되고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진다. 도둑이 든 집에서 우연치않게 발견된 발자국으로 어느 소녀가 용의자로 떠오르는데...

다 읽고 나니 아무런 내용이 없다. 사건을 따라 쫓아갈때는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정말 아무 것도 없다. 책표지의 찬사에 속고, 소녀에 속고.
사실 소녀에 대한 배경이라던가 자세한 내막이 나왔다면 아하!하고 읽을 수 있었을 텐데, 뒷맛이 영...
마지막 줄거리를 보니, 속편아닌 속편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흥미진진하게 빠지고 있었는데 마지막은 재미가 확 반감 되는 생각보다 별로 였던 소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12. 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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