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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세번째 책이다. 1권에서는 1차 십자군, 2권에서는 2차 십자군에서 3차 십자군의 출현 이전까지를 다뤘는데 십자군 원정은 8차까지 시행됐다. 이 한권으로 여섯번의 십자군 원정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지막 권은 남다른 두께를 자랑한다. 350 페이지가 채 안되던 1, 2권의 1.5배 정도인 600 페이지나 된다.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기록을 남겨두려는 이 글도 길어지고...

 


십자군 이야기. 3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5-1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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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에 의해 예루살렘을 빼앗겼던 무슬림은 살라딘에 의한 지하드를 통해 다시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다. 예루살렘을 다시 이교도의 손에 넘겨주게 된 그리스도교도들은 또 한번의 십자군을 조직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왕, 제후들에 더해 독일(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까지 등장하는 초호화캐스팅이었다. 


살라딘은 이 소식을 듣고 정말 조급하고 긴장했을 것이다. 사상 최대의 십자군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살라딘이 가장 신경을 쓰던 황제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가 원정 도중 갑작스럽게 익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의 꽃이라 불리는 3차 십자군에는 '사자심왕' 리처드가 있었다. 십자군보다는 자국의 영토 확장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끝내 먼저 귀국해버린 프랑스왕 필리프와는 달리 영국왕 리처드는 3차 십자군을 거의 혼자 승리로 이끌었다. '사자심왕(The Lionheart)'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이전까지 지지부진하던 십자군과 살라딘군과의 전투를 리처드는 시원시원하게 승리로 이끌며 성도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했다. 하지만 본국에서 동생과 필리프에 의해 발생한 반란으로 인해 살라딘과 평화협정을 맺고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예루살렘 재탈환이라는 목적은 이루지 못한다.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4차 십자군에 대한 내용이다. 베네치아와 연합하여 이집트로 가려던 군대는 베네치아에 의해 조종되어 베네치아의 해상영향력을 높히기 위한 원정을 하게 된다. 자라 공략에 이어 마지막으로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공략까지. 한번도 함락된 적 없던 콘스탄티노플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십자군과 베네치아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십자군 이야기 3권'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약 30년 전에 시오노 나나미 본인이 썼던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권'을 참조하라는 말 밖에.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성공한 후의 내용도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4차 십자군의 마지막 행동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4차 십자군에 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았다면 '십자군 이야기 3'에서 굳이 다시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번역자가 다른데도 그렇다는건 시오노 나나미가 '십자군 이야기'를 쓰면서 이전 책에서 원고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대로이긴 하지만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에서 행했던 전투와 이후 이집트로 가지 않고 흐지부지된 십자군 원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권'을 읽어보는 것이 필수라고 본다. 


5차 십자군은 십자군도 그렇지만 소년 십자군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만다. 프랑스의 잔다르크는 전쟁에 참여하고 후에 성녀로까지 추앙받았지만 소년 십자군을 이끌었던 몇몇 소년들은 전 유럽의 소년들을 노예로 만드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1차 십자군의 군중 십자군과 마찬가지로 무지와 광기가 어떻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년 십자군이 노예로 팔려나갔는데 교황청이나 해당 국가의 즉각적인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군대를 이용하거나 상인에 대한 파문조치라도 취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실제 효과가 얼마나 되든간에)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소년 십자군이 제대로 공인받지 못한 존재였기에 그랬던 것인지 의문스럽다.  


6차 십자군은 오랜만에 황제가 출전한 십자군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성스럽거나 영광스럽지 못했다. 원정을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억지로 예루살렘 왕의 지위를 주고도 진행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자 파문까지 시켰다. 덕분에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한 황제가 이끄는 '십자군'이라는 특이한 조합이 생기긴 했다만. 원정을 떠나긴 했지만 끝끝내 한차례의 전투도 벌이지 않고 순전히 군사력과 외교력만으로 프리드리히 2세는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그리스도교에게 돌려주었다. 전투를 위한 준비는 철저했고 본인들의 강력한 군사력을 소모하는 대신 이를 외교전에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스마트함을 보인 점은 리처드와 같아보이지만 전투 없이 외교만으로 예루살렘을 양도받은 것은 리처드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된다. 당시 여론은 그렇지 않았지만. 현대의 시각으로는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렸지만 당시 종교적 시각으로는 최악이었던 6차 십자군. 프리드리히 2세의 파문은 예루살렘의 재탈환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았고, 예루살렘 주교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 로마 교황은 프리드리히 2세의 신성로마제국을 침략하기까지 했고. 당시 성직자들이 바랐듯이 이교도를 피로 성지를 씻어내는 일이 과연 그들의 신이 원하는 일이었을까.


실질적 마지막 십자군인 7차 십자군은 프랑스왕 루이에 의해 실행된다. 하지만 그는 리처드도, 프리드리히2세도 되지 못했다. 피렌체와 연합하여 이집트로 쳐들어갔지만 루이는 전쟁에 대한 준비도, 전투시의 능력도 모두 뛰어나지 못했다. 아니, 결과로만 본다면 최악이었다. 일찌감치 후퇴한 피렌체군 외의 나머지 생존자가 모두 포로로 잡혔을 정도이니. 이후에 다시 한번 루이에 의한 8차 십자군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원정이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루이가 사망하면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7차 십자군을 실질적으로 마지막 십자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7차 십자군의 성과는 더이상 대규모의 십자군이 중동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무슬림들에게 심어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프랑스의 왕이 직접 지휘해 온 십자군이 사상 최대의 패배를 당햇기 때문이다. 또한 살라딘 이후부터 내려오던 아이유브 왕조가 노예 출신의 맘루크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어찌되었건 7차 십자군은 유럽과 중근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7차 십자군 이후 맘루크는 '그리스도교도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중근동에서 그리스도교도를 몰아냈다. 지중해 연안의 해안도시 아코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는 200여년 만에 중근동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그리스도교를 수호하던 두 기사단인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의 엇갈린 운명도 그러했고, 이코노믹 애니멀으로 불리던, 지금 표현으로는 장사의 신이려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이야기도 그랬다. 

 

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인간이 죽이고 죽이는,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루살렘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다. 시오노 나나미는 책의 중간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남겼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이라는 가정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0년의 평화를 얻는다는 명분으로 단 하루라도 전쟁을 해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수는 없지 않을까. 기나긴 전쟁 이야기를 읽어온 것에 비하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려나. 


살라딘과 리처드의 대결을 보고 싶다면 추천. 

엄격한 종교의 시대에 황제가 된 자유로운 영혼, 프리드리히 2세, 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by 청춘한삼 2013. 4. 13. 19:55

 

관련글 : 십자군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전편인 '십자군 이야기1'은 보에몬드, 고드프루아, 레몽에 의해 주도된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해방(침략) 이후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을 이루고 1차 십자군의 1세대 주요인물들이 모두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를 다루었다. 후속편인 '십자군 이야기2'는 당연하게도 이후의 십자군 원정과 중동의 프랑크인들, 사라센들을 다룬다.

 


십자군 이야기. 2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11-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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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을 이끄는 제후들과 이슬람측 영주들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서로 분열을 반복했지만, 십자군은 최종 목표 앞에서는 항상 단결했지만 이슬람측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되고, 1차 십자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어 가고 십자군 국가들은 이전처럼 단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공격자의 입장이었던 십자군 국가들은 이제 방어를, 방어에 급급했던 무슬림들은 공격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강력한 리더의 등장으로 통일되어 갔다. 장기, 누레딘, 살라딘으로 이어지는 술탄의 등장으로 1차 십자군 시절 뿔뿔히 흩어져 본인들끼리 싸우기 바쁘던 이슬람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가장 북쪽에서 무슬림을 막아주던 에데사 백작령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유럽인들은 복수를 위해 2차 십자군을 파견했다. 제후들로 이루어졌던 1차 십자군과는 달리 이번에는 왕들로 이루어진 십자군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한번 하지 않고 적과 싸우기 시작한지 4일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아마 소식을 들은 모두가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2차 십자군의 실패는 십자군 국가들에게는 더이상의 병력 충원 없이 무슬림들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역설적으로 십자군 국가들의 병력은 줄어들었다. 원정에 참여했던 기사들 중 상당수가 유럽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이후 십자군 국가들은 내내 병력의 부족을 느꼈고 방어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방어에 성공해냈다. 비결은 크게 세가지였다. 템플기사단과 성요한 병원기사단의 존재, 요소마다 건설한 성채, 이집트에 비해 뛰어난 해군력을 통한 제해권 장악이 그것이다.

 

현대의 특수부대에 비견될만한 위력과 성격의 템플기사단과 병원기사단. 오직 이교도와의 전투만을 위해 창설되어 주로 하위 계층의 프랑스인들로 이루어진 템플기사단과 병원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 제후들의 자제로 구성된 성직자들의 모임인 병원기사단의 성향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함께 힘을 합쳐 싸우거나 행동을 같이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적은 병력만으로도 200년의 세월 동안 십자군 국가를 지킬 정도로.

 

소수의 병력으로 요소를 지키기 위한 성채는 두 기사단에 의해 주로 건설되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왜 무슬림은 성채를 짓거나 이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마스쿠스나 안티오키아와 같이 큰 도시를 가지고 있으니 성벽이나 건물 축조에 대한 경험은 많을텐데 왜 굳이 본인들도 활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당하기만 하면서. 아무튼 '크락 데 슈발리에'같이 주요한 성채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한번 가보고 싶다. 그전에 시리아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야할텐데..

 

마지막으로는 강한 해군력을 가진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국가에 의한 제해권 장악이다. 이들이 해군력을 제공한 것은 십자군 국가를 통해 중근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경제활동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해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해안가에 위치한 십자군들의 도시들은 바다와 육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지 않았고, 해양을 통해 무기나 식량, 병력들까지 항상 안정적으로 보급받을 수 있었다. 전쟁에서 안정적인 보급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져있던 무슬림 세계를 통합한 살라딘은 성전, 즉 지하드를 선언했다. 술탄에 의해 지하드가 선언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종교의 이름으로 뭉친 십자군과 개별 무슬림들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진정으로 양측이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나선 것이다. 싸움은 어찌보면 허무하게 예루살렘 조금 위에 위치한 하틴에서의 전투 한번으로 끝났다. 단 한번의 전투로 살라딘은 승리를 거머쥐었고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 대부분은 무슬림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2는 끝난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무슬림에게서 기독교인에게 넘어갔던 성지 예루살렘이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는 반대로 기독교인에게서 무슬림으로 넘어갔다. 그말은 성지를 빼앗긴 기독교인들이 다시 십자군을 파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십자군 원정은 두 번밖에 실행되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과 이슬람측의 비대칭적인 인재 출현 시기에 대한 언급으로 책을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인재는 어느 시기에 한쪽에서만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잦아들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인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그리스도교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그린 1권에 이어 이슬람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왜 양쪽 모두 같은 시기에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답해준 철학자도 역사가도 없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신들의 배려인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부조리인 것일까...

 

실제로 1차 십자군 이후부터 살라딘에 의한 예루살렘 재탈환까지의 시기 동안 이슬람 측에서는 장기, 누레딘, 살라딘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계속해서 배출되었지만, 기독교 측에서는 보두앵3세, 이벨린 정도가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한센병에 걸려있던 보두앵 3세의 활약은 짧았고, 이벨린은 왕이 아니었다. 그 외 멜리장드나 뤼지냥, 샤티용같은 인물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국가의 정치에 관여하던 여자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안티오키아를 장기에게 갖다바치려던 알리스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당연하겠지만 멜리장드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통치력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어보았다면 당연히 읽어보시라.

 

by 청춘한삼 2013. 4. 6. 23:23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 이은 또 하나의 '십자군 이야기'. 내가 읽은 순서 때문에 이렇게 적긴 했지만 실제로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먼저 출간되었었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상업적으로는 더 많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까지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었다. 하지만 난 이제야 봤을 뿐이고. 

십자군이야기.1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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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십자군 이야기'시리즈는 시작된다. 비단 중세 유럽만이 아니라 1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말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에 고무되어 홀연히 일어선 십자군의 종교적 신념과 용기,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는 대신 위의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 것에는 십자군 전쟁의 부당함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그리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병행해서 읽었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다룬 둘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오노 나나미와 김태권은 모두 십자군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김태권은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바와 같이 주로 패러디를 이용하지만 이에 더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시오노 나나미는 앞의 문단에서 언급한 책의 첫문장처럼 에둘러 비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는 김태권에 비해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이 둘의 성향 차이일수도 있고 만화와 글이라는 전달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다. 

김태권이 만화스러운 면을 최대한 이용하며 상세한 설명보다는 간결하게 팩트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면 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통해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생생한 묘사와 서술을 통해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선사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책에서 밝혔다시피,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제삼자에 의한 기록이 없고 당사자들 중에서도 정확성을 기하는 민족에 의해 기록된 것이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모두 객관적으로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한계를 딛고 두 저자 모두 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서술했겠지만 좀 더 신뢰할만한 자료, 혹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꼭 들어가야 할 - 그리고 빠져도 될만한 - 내용을 고르는데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 책에서는 팩트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나 어느 한쪽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거나 아예 빠져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어찌보면 전체 사건을 보는데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군중십자군(민중십자군)이 독일에서 행한 학살에 대한 내용은 무지에 의한 폭력에 대한 비판을 위해 책을 썼던 김태권에게는 꼭 들어가야 할 사건이지만 1차 십자군 전체를 1권에서 다루어야 하는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꼭 들어갈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안티오키아에서 발견된 '성스러운 창(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하고 이후에 이 창의 성스러움을 증명하기 위해 불의 심판을 받은 사람을 김태권은 은자 피에르로, 시오노 나나미는 바르톨로메오라는 순례자의 시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태권에 따르면 피에르의 전체 이름이 피에르 바르톨로메오이기는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 생각에 바르톨로메오가 은자 피에르와 동일 인물이었다면 당연히 은자 피에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료가 부정확하기 때문일 것인데 저자들의 선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록의 차이가 있다고. 

그 외에도 같은 인물, 인물이 한 행동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데 탄크레디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평이 조금씩은 엇갈리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다르기도 한데 이건 둘 다 이름이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를 언급해두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거라 본다. 다만 김태권과 다르게 시오노 나나미는 본인이 참고한 자료들을 책에서 정리하거나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그 점이 이 책에서 빠진 더 많은 내용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아쉬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1차 십자군의 시작에서부터 십자군의 1세대의 주요 인물들이 무대에서 모두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험난한 원정 끝에 4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지고 이들이 안정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자신들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인가. 무능한 지도자들 아래에서 고통받는 것은 결국 민초들일 수 밖에 없는가. 폭력을 통해 얻은 행복이 지속 가능한 것인가. 협력이 필요할 때 협력을 이끄는 실질적인 동기는 어떤 것이 있는가..이런 것들이 내가 1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느낀 것이다. 나머지는 '반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의 협력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부분을 옮기고 이만 마무리를. 

황제도 왕도 참전하지 않은 제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유럽 각지에 영지를 가진 제후들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이 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이슬람측 영주들과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혹은 이미 알고 있다면 강추. 

덧.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나머지 '십자군 이야기' 1~3권의 내용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오른쪽 페이지에는 귀스타프 도레의 판화 그림이 있고, 왼쪽 페이지 상단에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지도로 표시되어 있으며, 왼쪽 페이지 하단에는 책에서 발췌한 간단한 설명이 나와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라서 답답하고 이해도 잘 안될 때가 많은데 지도를 통해 훨씬 더 쉽게 이해하며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십자군 이야기' 각권에도 지도와 삽화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겨가며 보기 귀찮을 때가 많으니.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만 보는 것보다는 '십자군 이야기' 1~3권을 보면서 참고하거나 1~3권을 통해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한 후에 정리하는 겸 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십자군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7-0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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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3. 3. 9. 08:30
유럽이나 역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전쟁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십자군 전쟁은 기사도를 지닌 기사들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에서 구해내고,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200년간 수행된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숭고한 종교적 이유 외에도 경제적, 사회적 이유가 있었다는 내용도 역사책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어릴 때 세계역사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던 십자군 전쟁에 대한 내용의 대부분이다. 거기에 소년 십자군의 비극이나 사자왕, 살라딘의 존재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내 지식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만으로 200년이나 전쟁을 - 탄압이나 싸움 수준이 아니라 무려 전쟁을 - 치루는 것이 비종교인인 나로서는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고, 십자군이 항상 이교도만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은 아니었던 기억이라 종교적 이유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와 십자군 전쟁 자체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전쟁이라는건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광기를 가지지 않으면 수행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200년의 세월 동안 전쟁을 지속시킨, 십자군과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광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생각이 제일 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1 : 군중십자군과 은자피에르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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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한 책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책 중 하나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만화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의해 흔히 생각되는 - 웃고 즐기기 위한 - 만화보다는 학습만화에 더 가깝다. 이전에 큰 인기를 얻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를 떠올리면 되려나.

이 책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비롯해 현재 사회를 패러디하고 가끔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말장난을 하기도 한다. 그런 패러디나 말장난들로 자칫 책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책의 메시지이다. 작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통해 작품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반전'과 '평화'의 정신을 책을 통해 알리려 한다. 또한 다른 것에 대한 '포용'과 '공존'도 포함한다.
다음으로는 작가의 철저한 고증이다. 뭔가 대충 그린 듯한 그림들 속에는 철저한 고증을 통한 중세 유럽과 십자군의 모습이 살아있다. 그림만이 아니라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패러디로 인해 사건의 내용이 바뀌거나 할수도 있지만 최대한 팩트에 가까운 내용을 밝히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물론 번역본으로) 물론 수많은 대비되는 기록들 중에 작가에 의해 선택된 자료들이긴 하지만 최종 판단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고, 작가가 참고한 자료들이 책 뒤에 나와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직접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십자군 전쟁이 대부분 유럽의 기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편이거나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던 이슬람과 비잔틴 제국의 기록에 의한 자료들을 통해 십자군 전쟁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는 십자군 전쟁을 다루는 책이긴 하지만 시리즈의 1권은 로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왜 로마가 전쟁을 계속하며 호전적인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쌓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로마의 뒤를 이어 십자군이 등장한 중세도 등장한다. 어떤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회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기 어려운 것처럼 십자군이 등장한 중세의 유럽 사회상이 잘 설명된다. 책에 나타난 중세 유럽의 사회상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모든 것을 현재의 기준과 상식으로 생각하고 동일시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의 방식이라든가 전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은 오늘날의 - 혹은 현재 나의 - 기준으로는 비이성적, 비상식적이었다. 

1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십자군은 1차 십자군에 포함되는 '군중 십자군'이다. 제대로 훈련된 기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라 빈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대와 이를 이끄는 은자 피에르의 험난한 원정이 펼쳐진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를 지배한 광기는 '무지'와 '편견',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에 의해 탄생하고 증폭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보면서 현재의 교육이 -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포함해서 - 사람들을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구출해주는데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또한 수만명의 빈자들을 원정에 참여하게 만든 당시의 희망없는 사회가 다시 출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실 끝난지 50년이 조금 넘은 히틀러의 독일에 의한 전쟁은 - 본인들도 십자군을 칭하긴 했지만 - 희망없는 사회와 무지, 편견을 통해 진행된 전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 광기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과연 작가가 말하는 반전과 평화, 포용과 공존의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그런 사회에 비교적 가까워보이던 북유럽도 최근에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 불안하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고전 읽기'도 놓치기는 아깝다. 1권에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포함해 '루시퍼 이펙트'에서 나왔던 스탠포드의 감옥 실험,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실험 등을 통해 '폭력의 일상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들어본 적 없다면, 더더욱 필독이 요구된다. 

십자군 전쟁의 본모습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전쟁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중세 유럽과 이슬람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3. 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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