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이미 너무도 크고 전세계적인 영향력도 큰 나라다. 중국은 극심한 빈부격차나 일부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같은 이미지 때문에 중국이 얕보이기도 하지만 10억이 넘는 인구를 한 국가가 통제함으로써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 경제를 넘어서 작년(2012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중국 작가인 모옌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중국 현시대의 작가는 위화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작가 위화의 존재를 알기는 했지만 위화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위화를 알게 된 것도 앞서 몇번 언급했던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허삼관 매혈기의 도입 부분을 들었고, 서점에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본 것이 내가 읽은 위화 소설의 전부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통해 소설가 위화의 비소설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
위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3-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세계가 사랑하는 소설가 위화가 그려낸 현대 중국의 열 가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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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 나와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에 대한, 그리고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위화는 마오쩌둥에 의해 행해진 너무도 정치적이었던 문화대혁명 동안 청소년기를, 이후 그야말로 엄청난 경제발전 시기를 살아온 세대이다. 그런 위화가 선정한 열 개의 단어는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위화의 개인적인 경험에 좀 더 무게를 둔다면 그 외 단어는 중국 역사, 사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열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모두 언급하기보다는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인민은 북한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일반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중국에서는 마오에 의해 인민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 톈안문 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그 힘을 잃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정치적 열정을 톈안문 사태에 모조리 쏟아부은 후 열정의 방향을 개인의 부로 돌리면서 '인민'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는 개별적인 인간들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위화는 톈안문 사태 시기에 비로소 '인민'이라는 단어와 진정으로 만났다고 한다.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한 입체교차로를 지키던 사람들, 무기가 아닌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의 에너지를 통해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책의 제목처럼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산채는 우리가 흔히 짝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짜 혹은 모조품, 권리 침해, 규범 위반과 같은 많은 의미가 모방이라는 의미에 흡수되어 '산채'로 대변된다고 한다. 우리에게 쉽게 떠올리는 것은 Nokir, Samsing, 혹은 명품이나 해적판 물건들과 같은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전 분야에 걸쳐 산채 현상이 확산되어 산채 음료, 약품 등을 비롯해 산채 텔레비전 프로그램, 산채 광고, 산채 유행가, 산채 스타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터넷을 통한 산채 텔레비전 프로그램, 산채 뉴스들은 관제 방송들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혹은 못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뉴스타파와 같은 정치, 사회 팟캐스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채 현상은 아무리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해도 '모방'이라는 본질 상 해악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표절과 모방, 악의적 조롱, 비방과 같은 문제적 행동을 긍정적인 면을 가진 행동으로 인식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그런 행동들이 당당하게 행해지며 양성화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이다. 산채와 관련된 위화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4년 전에 나는 내가 사는 건물 아래 있는 육교에서 해적판 '형제'를 발견했다. 나의 책이 다른 해적판 서적과 함께 노점에서 팔리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책을 파는 노점상은 내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형제' 한 권을 건네주면서 친절하게 추천해주었다. 그 책을 받아 들고 몇 장 뒤적거려보니 금세 해적판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노점상에게 말했다.

 "이건 해적판이네요."

 "해적판 아니예요," 노점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산채판이지요."

 

마지막 단어인 '홀유'는 '어지럽게 잘못 인도한다'는 의미의 '호유'라는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는데 허풍과 선동, 종용과 같은 의미에 허튼소리, 뜬소문, 사기와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을 속이거나 뭔가를 덮어씌우는 것을 말하는데 사기보다는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 듯 하다. 홀유는 산채와 마찬가지로 현대 중국인들의 도덕적이지 못한, 혹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대변하는 것 같다. 남을 속이는 행동에 이름을 붙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결국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것이 이익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산채 현상은 현재의 중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홀유 현상은 그런 면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꼽은 열가지 이외에 열 한번째 단어를 꼽는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위화는 '자유'라고 말한다. 경제개방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던 중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Don't be evil'이라는 모토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는 구글은(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에서 톈안문 사태에 대한 검색을 하면 최적의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처리했다. 톈안문 사건은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났다. 하지만 6월 4일을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는 표현을 대신 이용한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 밖에도 정치적 이견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이 여전히 검열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언론의 자유가 후퇴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중국도 언론 선진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참고로 5월 35일식이 아닌 6월 4일식 비판을 한 이 책은 중국 본토에서는 출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있냐는 독일 독자의 질문에 대한 위화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는데 재미있어서 소개해 본다.

 

어느 국가든 간에 언론의 자유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국민들이 총리를 욕할 수 있지만 이웃 사람을 욕해선 안 될 겁니다. 중국에서는 총리를 욕해선 안 되지만 이웃은 욕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개인적 경험, 진실된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아, 그 책' 이렇게 떠오르는 책은 없다. 내가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덜 가져서 그런 것일까. 좋은 책, 혹은 저자가 있다면 누구든 댓글로 추천해 줬으면 좋겠다.

소설은 아니지만 진솔한 고백과 중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보며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우리 나라에도 이런 책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의 글을 소설보다 에세이를 통해 접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위화의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왜 위화가 대단한 평가를 받는 작가인지도 알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해, 위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기를. 이 말은 절대 당신을 홀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 개인적으로 느낀 책의 단점을 하나만 말하자면 마오쩌둥이 어떤 인물인지, 문화대혁명이 어떤 사건이었는지에 대한 인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왜, 어떻게 이 인물이 역사에 등장하고, 문화대혁명은 어떤 경위를 통해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와 같은 전체적인 모습을 이 책만으로 알기는 어렵다. 당시 중국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보며 다른 자료를 찾아거나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는 후자였는데 책을 읽으며 주석으로 간단하게라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이런 불만의 원인은 나의 중국 역사에 대한 무지. 

 

위화의 팬이라면 이미 읽었겠지만 강추.

위화가 말하는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중국 정부에서 말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덧. 왜 굳이 표지를 이중으로 했는지가 의문이다. 책이 하드커버인 것도 아닌데. 띠지까지 있다보니 거의 삼중이다. 그냥 책 값을 500원이라도 싸게 내지..라는 생각이..

by 청춘한삼 2013. 3. 31.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