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글 : 십자군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전편인 '십자군 이야기1'은 보에몬드, 고드프루아, 레몽에 의해 주도된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해방(침략) 이후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을 이루고 1차 십자군의 1세대 주요인물들이 모두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를 다루었다. 후속편인 '십자군 이야기2'는 당연하게도 이후의 십자군 원정과 중동의 프랑크인들, 사라센들을 다룬다.

 


십자군 이야기. 2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11-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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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을 이끄는 제후들과 이슬람측 영주들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서로 분열을 반복했지만, 십자군은 최종 목표 앞에서는 항상 단결했지만 이슬람측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되고, 1차 십자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어 가고 십자군 국가들은 이전처럼 단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공격자의 입장이었던 십자군 국가들은 이제 방어를, 방어에 급급했던 무슬림들은 공격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강력한 리더의 등장으로 통일되어 갔다. 장기, 누레딘, 살라딘으로 이어지는 술탄의 등장으로 1차 십자군 시절 뿔뿔히 흩어져 본인들끼리 싸우기 바쁘던 이슬람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가장 북쪽에서 무슬림을 막아주던 에데사 백작령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유럽인들은 복수를 위해 2차 십자군을 파견했다. 제후들로 이루어졌던 1차 십자군과는 달리 이번에는 왕들로 이루어진 십자군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한번 하지 않고 적과 싸우기 시작한지 4일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아마 소식을 들은 모두가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2차 십자군의 실패는 십자군 국가들에게는 더이상의 병력 충원 없이 무슬림들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역설적으로 십자군 국가들의 병력은 줄어들었다. 원정에 참여했던 기사들 중 상당수가 유럽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이후 십자군 국가들은 내내 병력의 부족을 느꼈고 방어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방어에 성공해냈다. 비결은 크게 세가지였다. 템플기사단과 성요한 병원기사단의 존재, 요소마다 건설한 성채, 이집트에 비해 뛰어난 해군력을 통한 제해권 장악이 그것이다.

 

현대의 특수부대에 비견될만한 위력과 성격의 템플기사단과 병원기사단. 오직 이교도와의 전투만을 위해 창설되어 주로 하위 계층의 프랑스인들로 이루어진 템플기사단과 병원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 제후들의 자제로 구성된 성직자들의 모임인 병원기사단의 성향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함께 힘을 합쳐 싸우거나 행동을 같이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적은 병력만으로도 200년의 세월 동안 십자군 국가를 지킬 정도로.

 

소수의 병력으로 요소를 지키기 위한 성채는 두 기사단에 의해 주로 건설되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왜 무슬림은 성채를 짓거나 이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마스쿠스나 안티오키아와 같이 큰 도시를 가지고 있으니 성벽이나 건물 축조에 대한 경험은 많을텐데 왜 굳이 본인들도 활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당하기만 하면서. 아무튼 '크락 데 슈발리에'같이 주요한 성채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한번 가보고 싶다. 그전에 시리아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야할텐데..

 

마지막으로는 강한 해군력을 가진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국가에 의한 제해권 장악이다. 이들이 해군력을 제공한 것은 십자군 국가를 통해 중근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경제활동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해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해안가에 위치한 십자군들의 도시들은 바다와 육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지 않았고, 해양을 통해 무기나 식량, 병력들까지 항상 안정적으로 보급받을 수 있었다. 전쟁에서 안정적인 보급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져있던 무슬림 세계를 통합한 살라딘은 성전, 즉 지하드를 선언했다. 술탄에 의해 지하드가 선언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종교의 이름으로 뭉친 십자군과 개별 무슬림들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진정으로 양측이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나선 것이다. 싸움은 어찌보면 허무하게 예루살렘 조금 위에 위치한 하틴에서의 전투 한번으로 끝났다. 단 한번의 전투로 살라딘은 승리를 거머쥐었고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 대부분은 무슬림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2는 끝난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무슬림에게서 기독교인에게 넘어갔던 성지 예루살렘이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는 반대로 기독교인에게서 무슬림으로 넘어갔다. 그말은 성지를 빼앗긴 기독교인들이 다시 십자군을 파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십자군 원정은 두 번밖에 실행되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과 이슬람측의 비대칭적인 인재 출현 시기에 대한 언급으로 책을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인재는 어느 시기에 한쪽에서만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잦아들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인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그리스도교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그린 1권에 이어 이슬람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왜 양쪽 모두 같은 시기에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답해준 철학자도 역사가도 없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신들의 배려인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부조리인 것일까...

 

실제로 1차 십자군 이후부터 살라딘에 의한 예루살렘 재탈환까지의 시기 동안 이슬람 측에서는 장기, 누레딘, 살라딘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계속해서 배출되었지만, 기독교 측에서는 보두앵3세, 이벨린 정도가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한센병에 걸려있던 보두앵 3세의 활약은 짧았고, 이벨린은 왕이 아니었다. 그 외 멜리장드나 뤼지냥, 샤티용같은 인물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국가의 정치에 관여하던 여자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안티오키아를 장기에게 갖다바치려던 알리스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당연하겠지만 멜리장드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통치력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어보았다면 당연히 읽어보시라.

 

by 청춘한삼 2013. 4. 6.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