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좀비물이 인기다. 몇 시즌째 진행되고 있는 미드 '워킹데드'나 간간히 개봉하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28주 후'와 같은 영화들에 더해 이제는 사랑하는 좀비(웜바디스)까지 등장했다. 좀비와의 전쟁(?)을 다룬 소설 '세계대전 Z'를 원작으로 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도 곧 개봉 예정이다. (제목이 월드워Z로 나오는듯)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좀비물은 아마도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인 듯 하다. 이 영화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단순 좀비영화로 봤을 때는 그냥저냥 봤었는데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고, 원작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긴 했어서 한번 찾아보았다. 

 


나는 전설이다(밀리언셀러 클럽 18)

저자
리처드 매드슨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5-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 공포 소설과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흡혈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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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무려 60년 전, 1954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런데 배경은 1970년대로 20년 정도 뒤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유일한(것으로 추정되는) 생존자 네빌이 매일 밤 덤벼드는 흡혈귀들을 저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작품이라 추켜세웠던 것을 듣고 봐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감명받지는 못했다. 50년대에야 새로운 설정과 발상을 선보인 작품일 수 있겠지만, 좀비물들이 넘쳐나게 된 지금 다시 보았을 때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처럼. 특히 영화까지 미리 봤다면 스토리도 대강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이 공포로 나타나는 것이다. 네빌은 낮에는 주변의 좀비(흡혈귀)들을 죽이고 밤이 되면 집으로 공격해오는 좀비들을 막기 위한 대비에 힘쓴다. 그리고 밤마다 몰려드는 좀비를 처리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현재 생활의 유지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도 같고. 네빌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외로움을 느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니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반복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좀비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고민한다. 물론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명언처럼 슬럼프를 겪으면서도 살아가려 애쓴다. 


개인적으로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나는 전설이다'라는 책의 제목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의 '전설'을 '전설적 영웅(혹은 생존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전설'의 의미는 전설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전설'(혹은 신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적기는 어렵지만 현재는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흡혈귀란 존재는 그저 전설로 남아있다. 하지만 인간이 지배하던 세계가 막이 내리고 흡혈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유일한 인간인 네빌은 '전설'로 남게 되는 것이다. 눈이 하나만 있는 원숭이 나라에 간 눈을 두 개 가진 원숭이같은 입장이랄까.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오래된 고전 공포소설 중 하나라 굳이 블로그에 포스팅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이 작품이,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결말에 다가가면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포스팅까지.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봤었다면 영화에는 없던 남다른 의미를 찾아보시라. 

좀비, 흡혈귀가 나오는 공포물을 좋아한다면 추천. 


덧. 혹시 나처럼 낚이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나는 전설이다'는 앞의 절반 정도만 나오는 중단편(?)이다. 책의 나머지 절반 정도는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단편들이 실려있다. 


by 청춘한삼 2013. 4. 14. 17: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