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 이은 또 하나의 '십자군 이야기'. 내가 읽은 순서 때문에 이렇게 적긴 했지만 실제로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먼저 출간되었었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상업적으로는 더 많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까지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었다. 하지만 난 이제야 봤을 뿐이고. 

십자군이야기.1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1년)
상세보기

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십자군 이야기'시리즈는 시작된다. 비단 중세 유럽만이 아니라 1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말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에 고무되어 홀연히 일어선 십자군의 종교적 신념과 용기,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는 대신 위의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 것에는 십자군 전쟁의 부당함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그리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병행해서 읽었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다룬 둘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오노 나나미와 김태권은 모두 십자군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김태권은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바와 같이 주로 패러디를 이용하지만 이에 더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시오노 나나미는 앞의 문단에서 언급한 책의 첫문장처럼 에둘러 비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는 김태권에 비해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이 둘의 성향 차이일수도 있고 만화와 글이라는 전달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다. 

김태권이 만화스러운 면을 최대한 이용하며 상세한 설명보다는 간결하게 팩트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면 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통해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생생한 묘사와 서술을 통해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선사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책에서 밝혔다시피,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제삼자에 의한 기록이 없고 당사자들 중에서도 정확성을 기하는 민족에 의해 기록된 것이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모두 객관적으로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한계를 딛고 두 저자 모두 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서술했겠지만 좀 더 신뢰할만한 자료, 혹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꼭 들어가야 할 - 그리고 빠져도 될만한 - 내용을 고르는데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 책에서는 팩트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나 어느 한쪽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거나 아예 빠져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어찌보면 전체 사건을 보는데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군중십자군(민중십자군)이 독일에서 행한 학살에 대한 내용은 무지에 의한 폭력에 대한 비판을 위해 책을 썼던 김태권에게는 꼭 들어가야 할 사건이지만 1차 십자군 전체를 1권에서 다루어야 하는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꼭 들어갈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안티오키아에서 발견된 '성스러운 창(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하고 이후에 이 창의 성스러움을 증명하기 위해 불의 심판을 받은 사람을 김태권은 은자 피에르로, 시오노 나나미는 바르톨로메오라는 순례자의 시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태권에 따르면 피에르의 전체 이름이 피에르 바르톨로메오이기는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 생각에 바르톨로메오가 은자 피에르와 동일 인물이었다면 당연히 은자 피에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료가 부정확하기 때문일 것인데 저자들의 선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록의 차이가 있다고. 

그 외에도 같은 인물, 인물이 한 행동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데 탄크레디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평이 조금씩은 엇갈리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다르기도 한데 이건 둘 다 이름이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를 언급해두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거라 본다. 다만 김태권과 다르게 시오노 나나미는 본인이 참고한 자료들을 책에서 정리하거나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그 점이 이 책에서 빠진 더 많은 내용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아쉬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1차 십자군의 시작에서부터 십자군의 1세대의 주요 인물들이 무대에서 모두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험난한 원정 끝에 4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지고 이들이 안정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자신들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인가. 무능한 지도자들 아래에서 고통받는 것은 결국 민초들일 수 밖에 없는가. 폭력을 통해 얻은 행복이 지속 가능한 것인가. 협력이 필요할 때 협력을 이끄는 실질적인 동기는 어떤 것이 있는가..이런 것들이 내가 1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느낀 것이다. 나머지는 '반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의 협력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부분을 옮기고 이만 마무리를. 

황제도 왕도 참전하지 않은 제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유럽 각지에 영지를 가진 제후들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이 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이슬람측 영주들과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혹은 이미 알고 있다면 강추. 

덧.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나머지 '십자군 이야기' 1~3권의 내용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오른쪽 페이지에는 귀스타프 도레의 판화 그림이 있고, 왼쪽 페이지 상단에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지도로 표시되어 있으며, 왼쪽 페이지 하단에는 책에서 발췌한 간단한 설명이 나와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라서 답답하고 이해도 잘 안될 때가 많은데 지도를 통해 훨씬 더 쉽게 이해하며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십자군 이야기' 각권에도 지도와 삽화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겨가며 보기 귀찮을 때가 많으니.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만 보는 것보다는 '십자군 이야기' 1~3권을 보면서 참고하거나 1~3권을 통해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한 후에 정리하는 겸 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십자군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7-0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가격비교

 



by 청춘한삼 2013. 3. 9. 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