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여자와 책] - 바람을 뿌리는 자


2011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엄청난 인기를 보며 한번쯤 읽어봐야겠네..생각하고 있던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내용 상으로도, 출간 시기로도 '바람을 뿌리는 자'보다 앞선 이야기라서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그여자 Gene께서 '바람을 뿌리는 자'를 먼저 읽어보라고 해서 읽은 순서는 거꾸로다. (알고보니 내용이나 출간 시기와는 별개로 작가가 작품을 쓴 순서로는 '바람을 뿌리는 자'가 먼저라는 깊은 뜻이..) 


바람을 뿌리는 자 - 타우누스시리즈.5
카테고리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넬레 노이하우스 (북로드,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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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여형사 '피아'와 그녀의 고참이자 파트너인 수사반장 '보덴슈타인'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추리소설들은, 엘러리 퀸처럼 경찰과 탐정의 협업도 있긴 했었지만 홈즈나 뒤팽, 미스 마플 같은 탐정에 의한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에서 경찰들에 의한 추리를 접하긴 했었지만 경찰들만으로 이루어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편소설은 나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사실 경찰들은 추리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빛내주기 위한 우둔한 - 사실은 평범한 - 사람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니. 

책갈피의 작가 소개에서는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피아'가 등장한다고 되어 있는데 '바람을 뿌리는 자'에서는 보덴슈타인의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사람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주었고, 덕분에 피아가 본인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며 사건을 추적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 시리즈 중 이 책만 그런 것인지 나머지도 어느 정도 그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마 이전에는 안그랬으니 소개글을 그렇게 썼겠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던 홈즈와는 달리 최근의 탐정들은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도 그렇고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도 그렇고 '벚꽃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작품도 그렇다. 저기 어디 하늘 위에서 내려온 완벽한 탐정이 아닌 우리 옆집에 사는 아저씨나 아는 형, 누나와 같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감성의 소유자들이 범죄자를 쫓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이 작품의 보덴슈타인은 이혼한 아내가 자신 몰래 바람을 피웠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피아는 이혼한 전남편과 일 때문에 계속 만나며 스트레스를 받고 현재의 남자친구와도 일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렇게 감정에 영향을 받는 등장인물들은 독자에게 자기 자신들을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 특별하면서도 보통의 사람처럼 특별하지 않도록 느끼는 것을 도와주어 독자들이 쉽게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도와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무엇이든 겉으로 보는 것과 실체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평범하고 행복할만한 가정이나 연인들도 속으로는 곪아있는 갈등이 있으며,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민단체에서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가슴 속에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 - 그것이 슬픔이나 분노같은 감정이건 비밀이건 - 를 감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인 경찰들까지도. 

개인적으로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너무도 큰 사건에 연관된다는 것을 알고 왠지 모를 불편함이 들었었다. 왜 굳이 추리소설에서 한두명의 영웅이 지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을 만든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중에 작가의 후기를 보며 그것에 관련된 사건이 이 작품의 시작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러려니..하게 되었다. 어차피 소설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을만한 추리 소설이었다. 이 책을 친히 빌려주신 그여자 Gene에게 무한한 감사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추천. 

 


by 청춘한삼 2013. 3. 10. 2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