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서적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읽히는 일은 흔치 않다. 그나마 인문학 책이라면 '총균쇠'처럼 서울대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된 책이라든가 하는 홍보에 좋은 이벤트가 있거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시대를 꿰뚫는 제목을 통해 많이 팔리는 책들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 분야라면 스티븐 호킹 정도 되는 저자가 신간을 내는 정도 되야 베스트셀러 순위에나 잠시 들어보지 않을까 싶다. 과학 서적에 대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도 1976년에 출간된 한 과학 서적이 아직도 멸종되지 않고 팔려나가고 있으니..바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물론 '이기적 유전자'만이 과학 분야 스테디셀러는 아니다)
이기적유전자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리처드 도킨스 (을유문화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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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출간된지 오래된만큼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은 널리 알려진 편이다. 제목만 봐도 궁금증을 유발시키고, 책의 내용을 설명하는 잘 설명하고 있을 것만 같은,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이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는 책의 내용은 보지 않고 '이기적'이라는 단어에 꽂힌 사람들의 비난이 한 몫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도 유명하고 오래된 책이라 아마도 많은 매체와 사람들이 리뷰를 해놨을 것이므로 내용을 꼬치꼬치 적을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책의 내용의 핵심은 모든 생물은 '유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아니, 진화만이 아니라 행동과 생존에 대한 모든 것이 '유전자'에 의해 지배된다고 말할 수 있다. 

진화는 유전자 풀 속에서 어떤 유전자는 그 수가 늘어나고 또 어떤 유전자는 수가 줄어드는 과정이다. p. 102

동물의 행동은,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그 행동을 하는 동물의 몸 내부에 있거나 없거나에 상관없이 그 행동을 담당하는 유전자의 생존을 극대화하는 경향을 가진다. p. 410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으로 알려진 다윈의 진화론은 창조론 신봉자들 외에는 널리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의 단위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 단위가 종일수도, 개별 개체일수도 있을텐데 도킨스가 말하는 단위는 '유전자'이다. 인간을 예로 들자면, (인간에게 있어 일반적인 행동인) 성공을 바라는 개개인 행동은 자신(개별 개체)을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을 하는 것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를 퍼트리는데 유리하기 떄문이다. 인간의 생존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론에 따르면,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은, 이승에 있어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승에 있어야만 유전자를 하나라도 더 남길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유전자는 '이기적'이지만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자가 말했듯이 측은지심, 즉 이타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대상이 가족 혹은 친지들과의 관계일 것이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도 이타적인 면을 보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가족이나 친지들과의 관계에서 서로가 좀 더 이타적이다.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는다면 이타적인 행동 역시 유전자가 시켜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책에서는 그들이 자신과 일정부분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희생해 발생한 손해보다 가족, 친지들에 의한 유전자 번식의 이로움이 더 크다면 이타적인 면이 발휘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때문에 나와 유전자를 나누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개체에 대해서는 배타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그런 배타성을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인종 차별이다. 책에서는 유전자에 의한 잘못된 배타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만일 동물들이 자기와 신체적으로 닮은 개체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한다면, 그 동물들은 간접적으로 자기의 친척에게 어느 정도 이익을 주는 셈이 된다. 해당 종이 갖는 여러 특성에 따라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라도 이러한 규칙은 다만 통계적 의미에서 '올바른' 결단을 이끌어 낼 뿐이다. 조건이 달라지면, 예를 들어 어떤 종이 훨씬 큰 집단에서 생활하게 되면 그 규칙은 그 종의 동물들에게 잘못된 결단을 내리게 만들 수 있다. 상상컨대, 인종 편견이란 신체적으로 자기와 닮은 개체를 인식하고 겉모양이 다른 개체에게 못되게 구는, 혈연 선택을 거쳐 진화해 온 경향이 비이성적으로 일반화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어느 정도는 의도했을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책은 인간의 본질적인 물음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유전자'라는 단일한 코드를 통해 대답을 줄 수 있다. 어려운 철학책을 읽는 대신 과학을 통해서도 철학적 물음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이 책이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이다. 

덧. 유전자의 진화에 대한 개념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저자가 책에서 제시한 '문화(밈, Meme)'의 진화 이야기가 이해를 도울거라고 생각한다. 

덧2. 책의 12장인 '마음씨 좋은 놈이 일등한다'의 내용에 흥미가 있다면 '협력의 진화'를 읽어보길 추천. 이전글 : 협력의 진화 -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자

이 책을 읽지 않은 모든 사람에게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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