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10년 뒤와 같이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당장 한달 뒤의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조차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다. 내일 아침 포털 메인화면을 뒤덮을 기사가 어떤 것이 될지도 아직은 알 수 (혹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람은 주변에 넘쳐난다. 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치평론가들, 내일 어떤 주식이 오를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주식 전문가들, 아파트 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부동산 업자들, 버스 좌석 뒤에 붙은 광고의 역술인들, 인생역전을 바라며 로또를 사는 사람들, 월드컵마다 저주를 거는 펠레.. 확신의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본인이 미래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내용을 주변에 알리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일기예보와 같이 일상적인 예측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포스팅 - 거의 모든 것의 미래 - 를 통해서도 언급한바 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에서는 미래 예측을 위한 모델에서 결과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 예측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모두 고려할 수 없는 이유는 요인들의 정확한 값을 측정,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모든 요인을 고려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와 같은) 도구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요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데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요인, 검은 백조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랙스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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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동녘사이언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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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란 미처 예상치 못한, 하지만 매우 중대한 요인이 되는 현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팻테일(Fat Tail)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흰색 백조만을 봐오며 '모든 백조는 희다'는 생각을 가졌던 서구인에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검은 백조 몇 마리가 준 충격은 경험적 인식, 신념을 깨버리는 현상 자체를 '검은 백조(Black Swan)' 현상이라 부를 정도로 컸다. 이런 충격은 비단 서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이름도 '백조'라고 짓지 않았나. 

검은 백조 현상은 예견 불가능성, 막대한 파급력, 사후 합리화의 속성을 지닌다. 
최근 대표적인 검은 백조 현상이자 저자를 현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만든 사건이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골디락스 시대가 그렇게 급격히 막을 내리리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렇듯 제대로 된 예측이 불가능했고, '글로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듯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고 이로 인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재정위기라는 연쇄적인 고통를 겪고 있다. 또한 당시에는 침묵했던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에는 너도나도 문제의 조짐이 있었다거나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으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사후 합리화를 시도하곤 한다. 
비단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검은 백조 현상이라 불릴만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런 속성들이 드러나곤 한다. 작년 가을 갑자기 떠올랐던 안철수 현상이라든가, 각자 생활 속에서건 역사 속에서건 검은 백조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상을 평범의 왕국과 극단의 왕국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의 왕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검은 백조가 출현하지 않는 영역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무작위성이 작으며, 과거의 사회 환경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극단의 왕국은 평범의 왕국과는 반대로 검은 백조가 출현하는 영역이다. 현재나 과거의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극단적인 몇 개의 사건, 사례가 전체를 결정해 버릴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을 예를 들자면, 사람들의 키는 평범의 왕국, 사람들의 부는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평균을 구했을 때, 100명의 표본 중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 한명이표본에 끼여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전체 평균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표본이 1000명으로 커진다면 그 영향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번에는 역시 100명의 표본의 부를 생각해보자. 만일 표본 100명 안에 빌게이츠가 끼여있다면 부의 평균은 그 한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마 99명의 부를 모두 합쳐도 빌게이츠 한 사람의 부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표본이 1000명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평균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지더라도 여전히 평균을 외곡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평균에 대한 내용은 지난 포스팅 - 새빨간 거짓말 통계 - 에서도 언급한바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몇가지 사례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영역을 극단의 왕국, 그렇지 않은 것을 평범의 왕국이라 부른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많은 영역이 극단의 왕국에 속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검은 백조가 출현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특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검은 백조가 출현하게 되고, 출현했을 때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미래 예측 또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검은 백조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검은 백조 출현이 예측 가능하다면 이에 대한 대비와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면 검은 백조가 더이상 검은 백조가 아닐 것이지만, 실제로 예측 불가능한 검은 백조가 출현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못한 미래 예측은 맞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백조가 언제 어떻게 출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가장 비판하는 것 중 하나는 정규분포곡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면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잠깐 듣고 잊어버렸음직한 이 곡선이 비판받는 것은 어떤 극단에서 나타나는 검은 백조 현상의 가능성이 너무 무시되고 평범의 왕국만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Normal Distribution NIST
위와 같은 정규분포곡선은 중앙의 평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의미하는 분산, 표준편차가 커질수록 확률은 점점 내려가고 검은 백조라 할만한 정도의 거리가 되면 거의 의미없는 확률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규분포곡선은 검은 백조의 가능성을 (거의) 무시하는데 많은 분야에서 정규분포곡선을 이용해 여러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 때문에 검은 백조의 출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검은 백조의 출현 가능성을 언제나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검은 백조 이야기는 실패를 면하는 정도를 넘어서 행동의 준칙을 마련해 준다. 검은 백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행동으로 만들고 어떻게 가치 있는 지식을 판별하는가를 알려 준다. 


이 글을 읽는 모두, 언제나 검은 백조를 잊지 말자. 

세상은 왜 예측한대로, 기대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추천. 
두꺼운 책을 싫어한다면 비추. 
깔대기를 휘두르며 잘난척하는 저자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없다면 비추. 


덧. 290페이지에 '칼 마르크스는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 The Misery of Philosophy>을 꼬집어 <철학의 빈곤 The Philosophy of Misery>이라는 비판서를 쓴 바 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 책의 영어제목이 바뀐게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원제들이 영어가 아니긴 한데 영어로 옮기면서 역자가 실수한게 아닐까. 물론 확실한건 블랙스완 책의 원문을 보는 것이겠지만..
by 청춘한삼 2012. 11. 8.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