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에 출판되는 경제학 관련 책에는 크게 두가지 분류가 있었다. 하나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의 분석,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후자는 대개 경제학(혹은 주류 경제학)의 '경제적 인간(Homo-economicus)' 가정을 비판하며 행동경제학을 소개하거나 행동경제학을 토대로 논의를 전개하는 편이다.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군터 뒤크 (비즈니스맵,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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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이란 긴 제목을 가진 책은 제목만 보고도 대강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 거기에 'Farewell to Homo-economicus'라는 원제를 보면 더 상세하게 내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사람들은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호황일 때와 불황일 때의 심리, 생각이 달라진다. 경제 상황에 따라 현실에서 구현되는 경제의 내용이 달라지고 이를 설명하는 학문인 경제학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내용을 본문에서는 여러번,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간단히 한 문장으로 말하면,

호황은 긍정을, 불황은 스트레스를 만든다.


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긴 설명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이처럼 경제는 시대의 원초적 본능과 함께 파드되를 춘다. 호황기에는 지킬 박사가 왈츠를 추고, 불황기에는 하이드가 분노의 춤을 춘다. 호황기에는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가 지배하고, 불황기에는 자본가와 프레카리아트 및 프롤레타리아가 생존을 두고 투쟁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변화를 경제학 이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시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항상 상반되는 이론에 빠져든다. 그들은 역사와 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 이론을 매번 새로운 것으로 인식한다. 


위 본문에서 말하는 시대에 따른 인간 본성을 책에서는 '국면적 본능'이라 부른다. 인간은 스트레스 상태(불황기)에서는 인간의 탈을 쓴 기게, 혹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는 동물이 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이 있다면(호황기) 신뢰와 의미가 가득한 환경에 있는 인간이 된다. 이처럼 경기에 따라 인간의 인간관 또한 경기 상황에 따라 변한다. 

더글러스 맥그리거는 '기업의 인간적 측면'이란 책에서 인간 본성에 대해 X이론과 Y이론을 제시한다. X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는 노동자를 선도하고 이끌어야 하며 무엇을 해야할지, 정확한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지정해 주어야 한다. Y이론에서 인간은 능동적이고 의미를 추구하는 행동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Y이론에 따르면 경영자는 직원들이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느끼도록 작업과 목표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면 일은 경영자가 닥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다. 이처럼 X이론과 Y이론은 동일한 인간을 상반된 두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책에서 말하는 국면적 본능과 두 이론은 조건에 따라 합치된다. 그 조건은 경제 상황이다. 호황기의 사람들은 Y이론, 불황기의 사람들은 X이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불황기에 사람들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는 동물이 된다. 저자는 이런 시기의 사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낙오하는 사람은 저성과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남들이 그렇게 낙인찍도록 하는 것도 자기 잘못이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도 자기 잘못이다! 모두 높은 압력을 받고 있기에 실패한 자는 어떤 배려도 없이 그냥 살벌한 길 위에 나앉도록 놓아둘 수 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동체가 죽어버린다. 교회는 비어간다. 자원봉사로 유지되는 사회단체들도 해체된다. 각자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국가의 구성원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아이를 낳고 기를 시간은 없다. 


굳이 책에서 불황기의 사회 묘사를 읽어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미 불황기의 혹독함과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다. 불황기의 어려움을 줄이고, 불황기를 최대한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서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합리적인 선상에서 유지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호황기 때의 현명함과 절제'이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고 책에서도 설명하듯이 호황기에는 본능과 탐욕, 흥분이, 불황기에는 생존투쟁이 지배한다. 시기를 막론하고 '국면적 본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국면적 본능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렵다. 표지에 나온 사자는 호황기에는 절제없는 사냥을 하고 초식 동물 수가 너무 줄어들면 급격한 불황을 맞는다. 후버 전 대통령이 말한, 자본주의가 낳은 너무나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 뿐만 아니라 이스터 섬에 살던 원주민들까지도 호황기의 탐욕은 억제하지 못해왔다. 당장 거울을 보고, 주변을 둘러봐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호황과 불황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명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표지에 사자 반대편에 있는 인디언이 그 주인공이다. 인디언은 "아주, 아주 많은 들소가 있다고 해도 평소에 먹던 만큼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디언 외에도 이누이트나 조에족 같이 여러 집단들이 탐욕 대신 인디언과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선지자들이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져보자.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회를 원한다면 이성적인 정당과 이성적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위해 좋은 시기에 저축하고 절제하자..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과연 선출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행동경제학에서 한발 더 나간 대안경제학을 원한다면 추천. 
(본문에서는 제외했지만) 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나는지 알기 쉬운 설명을 원한다면 강추. 
경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인간 심리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덧. 마지막 문단 때문에 정치적인 시선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는 그런 느낌 별로 없음.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2. 12. 9.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