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물론 이전 시대의 유명한 경제학자들 중 노벨상을 받았지만 내가 수상 사실을 모르는 학자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는 현 시대(2008년)에 노벨상을 받았고, 노벨상을 받은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활동에도 여전히 활발히 나서고 있다. 메시나 호날두가 경기장 안에서만 공을 차는게 아니라 조기 축구회에도 나가고 동네 축구팀에서도 뛰는 느낌이랄까(좀 다르긴 하지만)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라는 긴 제목의 책은 크루그먼이 노벨상을 받기 한참 전, 1990년대 중반(1995년~1997년)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책 속의 글들이 적힌 것은 15년 정도, 우리나라에 나온지는 10년이 된 책인데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님의 추천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총 세권의 추천 책 중 굳이 이 책만 읽어본 이유는 저자가 유명해서..라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에 이 책밖에 없어서..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폴 크루그먼 (부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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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적었듯이 책의 내용이 1990년대 중반 정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파악하거나 기억해내는데 부가적인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으니 사실 거의 대부분을 파악해야 했고(내가 밥 돌이 누군지 어찌알았겠나), 나중에 어렴풋이 들었던 사건들(예를 들면 소로스의 영국 경제 거덜내기같은)도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봐야 했다. 

책에서 크루그먼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못된(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설픈)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격하게 비판한다. 잘 모르면 같은 좌파(미국에선)로 묶일 수도 있을 로버트 라이시도 기업의 다운사이징에 대한 견해에서 통계와 분석보다는 뒷이야기와 구호에 의존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시절을 생각하면 좀 갸우뚱하게 된다) 하지만 우파인 공급중시론자들에 대해서는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선사한다. 소득세와 법인세의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조세수입은 오히려 증가하는 선순환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은 공급중시론(감세론)을 지지하고 있다만. 

좌우의 어설픈 이론가들을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화와 성장에 대한 그의 생각도 책에 실려있다. 간혹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어쩔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가난한 3세계의 사람들이 나쁜 환경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착취당하고 있긴 하지만 아예 그런 일자리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그의 견해를 들 수 있다. 처음 이 의견을 보았을 때는 예전에 경제학원론에서 봤던 최저임금제 논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일을 아예 못하는 것보다는 수당과 노동환경이 충분치 않더라도 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정말일까.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할 정도의 보상만 받고 노동을 하도록 지켜보아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크루그먼의 생각은 '그렇다'이다. (물론 최저임금제에 대한 내용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값싼 노동력만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진 경쟁력이기 때문에 이 경쟁력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안이 없는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전에 개인적으로 그런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과연 그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니오'이기는 했다. 하지만 예전(크루그먼이 이 책을 쓰던 시기)과 달리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값싼 노동력만을 가진 3세계 노동자들에게 조금 더 많은 보상을 주려는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고, 팍스콘과 같은 곳의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보여진다. 스타벅스나 애플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서는 아직 소극적이지만 점점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더 많은 3세계 노동자들이 조금 더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크루그먼은 여전히 아래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 같고 그게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어 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 대해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근로 조건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들 나라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들, 일용 노동자들, 폐품 수집자들 등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일본의 경제나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다룬 글도 있고, 좀 더 가벼운 글들도 등장한다. 어떤 에세이에서나 크루그먼의 견해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 크루그먼답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내용만 있고 본인의 견해는 빠져있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는 반대 느낌이다. 어떤게 더 좋다,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주장 및 입장이 뚜렷한 글이 좋지 않나 생각한다.

크루그먼이 90년대 중반 현실 경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경제학자는 어떤 논리를 따라 자신의 입장을 결정, 정리하는가 궁금하다면 추천. 
기업의 다운사이징과 공급중시론(감세론)에 대한 크루그먼의 견해가 궁금하다면 추천. 
경제학에 대한 지식 및 관심이 전혀 없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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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7. 20.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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