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를 통해서 로버트 라이시란 인물을 알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었고, 지금은 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인물이다. 노동부 장관이라는 직책을 맡았다는 점이 끌렸는데, 경제학자는 고용주(혹은 사용자), 기득권 입장에서 사고하기 쉬운 존재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노동부 장관 출신의 저자의 생각은 어떻게 다를까가 궁금했었다. 하지만 이 책 이전에 나온 자본주의에 대한 또 다른 책인 '슈퍼 자본주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순서대로 읽어보기로 했다. 

슈퍼 자본주의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이론
지은이 로버트 B. 라이시 (김영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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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굳이 '슈퍼'라는 접두어를 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는 책이 나온 2008년 당시의 자본주의를 '슈퍼 자본주의'라 명명했다. '슈퍼 자본주의'란 자본주의가 전세계를 뒤덮고 그로 인한 전지구적 경쟁에서 생존하고 승리한 (주로) 글로벌 대기업들에 의해 사회가 좌우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흔히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시장의로의 권력 이동(혹은 쏠림)의 정점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될 듯 하다.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책 소개와 목차만 살펴봐도 알 수 있을테니 굳이 다시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저자의 현실인식 중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핵심적인 내용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소개하자면, 우리 안의 두 자아에 대한 내용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는 시민이다. 동시에 우리는 시장에서 소비자와 투자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시끄러운 주제인 대형 마트와 전통시장(혹은 소상공인) 간의 갈등을 생각해보자. 공동체적인 삶을 원해서이건, 대기업의 전횡을 더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서이든, 인간의 생존권의 측면에서이건, 어쨌건 최근 많은 사람들(찬반이 갈리긴 하지만)이 대형 마트보다는 전통시장, 혹은 소상공인들로 구성된 상권이 지켜지는 것을 원하고 있다. 그래서 대형 마트에 대해 규제를 하려고 한다. 강제 휴무일을 정하거나 영업 시간을 제한하는 등의 규제가 시행되고 있거나 시행되려고 하는 중이다. 이런 조치를 통해 대형 마트와 주변 상권 간의 힘을 조절해서 원하는 사회를 만들려하는 것은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통해서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것은 분명 소비자로서는 장점이 있다. 주차장이라든가 배송,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쇼핑이 가능하다는 점이나 다양한 품목 등의 장점 뿐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경쟁력을 보이는 품목들이 있다. 만일 내가 대형 마트의 주식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대형 마트가 잘 되기를 바랄 것이다. 직접 주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내가 가입한 펀드가 대형 마트의 주식을 편입하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입한 펀드가 아니라도 내가 불입중인 국민 연금 기금이 대형마트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한 사람은 민주주의에서의 시민과 자본주의에서의 소비자, 투자자로서 상반되는 속성을 가진다. 

많은 사람들이 시민으로서는 평등, 공정한 경쟁, 생존권의 보장 등을 원하지만 소비자로서는 기업 간의 경쟁, 투자자로서는 자신이 투자한 기업의 성공만을 원한다. 다들 알고 있듯이 지금까지는 대다수의 시민들의 선택에 의해서 시민보다는 소비자, 투자자의 입장이 우세했었다. 저자는 이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러분과 나는 공범이다.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우리는 세상이 날뛰도록 만든다. 시장은 우리의 욕구에 아주 잘 부응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더 잘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두 마음을 갖고 있다. 그 가운데서 더 약해진 것은 우리 안의 시민이다. 슈퍼자본주의는 승리했지만 민주주의적인 자본주의는 그러지 못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조금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본주의는 민주주의를 억누르고 있다. 그 결과로 나타난, 빈부격차, 비정규직의 증가, 노동자의 권리 약화, 환경문제 등의 문제는 자본주의만으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시 민주주의가 자본주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래야 자본주의를 통해 키운 파이를 적절하게 배분할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이 필요하다. 더이상 모든 것을 시장(자본주의, 기업)에 맡겨서는 안된다. 대신 시장이 사회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통해 시장의 룰을 만들거나 바꿔야 한다. 깨끗한 환경을 원한다면 기업들이 알아서 폐수를 정화하고 산업폐기물을 마음대로 버리지 않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적게 내보내기 위해 노력할 것을 기대하지 말고 환경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소득을 얻지 못하고 있다면 최저임금을 충분히 늘려야 한다.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이 열악하다면 작업 환경 개선에 대한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해야 한다. 시장이 알아서 사회를 배려할거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할 때만 유리한만큼만 시혜를 베풀 것이다.   

똑같은 말을 또하고 또하느라 말이 길어졌는데 이야기의 주제를 조금 바꿔보자.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해석하고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이다. 책에서 미국의 저축대부은행에 대한 내용이 나왔는데 한번쯤 새겨볼만하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이후로 금융규제가 약화되면서 1982년 저축대부은행들이 예금을 이전보다 좀 더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우리나라의 저축은행처럼 무너졌다. 책에서 설명은 다음과 같이 나온다.

저축대부 은행 ... 은 탈규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가 예금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에, 새롭게 얻은 자유로 높은 수익률이 나올 수 있는 정크본드 등의 고위험 상품에 투자를 했다. 그 결과 이들은 나중에 미국의 납세자들에게 무려 6천억 달러에 이르는 부담을 안겼다. 고수익의 혜택은 모두 민간 투자자들에게 주고 큰 위험이 따르는 실패는 모두 공공 부문에 넘기는 정책은 기업가들이 마음대로 위험한 투자를 하도록 자극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저축은행 문제와 비슷하기도 하고,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부른 대형 투자은행들의 행태와 비슷하기도 하다. 특히 이익의 사유화, 책임의 공공화를 말하는 마지막 문장은 항상 새겨듣고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글재주가 없다보니 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이 너무 길어졌다. 슈퍼 자본주의는 너무 강력해진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부터 책이 나온 2008년까지의 현실을 잘 분석해 놓은 책이다. 저자는 슈퍼자본주의 출현의 불가피했던 현실은 인정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시민의 각성을 말한다. 더이상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말고, 소비자와 투자자로만 살아가지 말고, 시민으로 행동하자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나온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를 통해 저자의 생각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혹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봐야 하겠다.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강추. 
미국 자본주의 역사, 현재 상황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세상은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지 알고 싶다면 추천. 
그래도 아직은 신자유주의, 탈규제가 최고지..라고 생각한다면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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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6. 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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