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한번도 읽어보지는 않을 수 있어도 한번도 들어보지 못하기는 어려운 소설 중 하나가 삼국지이다. '고우영 삼국지'와 같은 만화도 있고 스테디셀러 중 하나인 '이문열 삼국지'를 비롯해 수많은 저자들에 의해 편찬된 삼국지 판본들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비, 관우, 장비 이외에 조조, 원소, 원술, 손견, 손책, 손권, 공융, 유표 등등 수많은 등장인물들에 지쳐 끝내 사마염의 천하통일을 보지 못하고 책을 덮어버리곤 하지만. 
 

삼국지 강의 / 역사와 문학을 넘나들며 삼국지의 진실을 만난다!
카테고리 역사/문화 > 동양사
지은이 이중톈 (김영사,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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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삼국지 판본들'이 있다고 적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이하 연의)' 이후로 나온 소설들은 모두 '연의'의 새로운 판본들이라 할 수 있다. 나관중은 정사 삼국지를 토대로 소설을 썼고, 아직까지도 사람들에게 읽힐 정도로 소설 '연의'는 성공했다. 

'연의'가 재미도 있고, 배울 점도 많은 소설이기는 하지만 독자들은 '연의'가 소설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망각하고 소설의 내용을 모두 진실로 믿어버리곤 한다. 실제 역사의 기록이라고 해도 내용을 기록한 필자에 따라 기술되는 내용이나 관점, 평가 등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 주변의 신문, 방송 등을 통해 누구나 충분히 알고 있을 것이다. '정사'도 그러한데 '소설'은 오죽하랴. 

'연의'에서는 유비와 그의 세력을 주인공으로 하기 때문에 그와 대비되는 인물들은 흔히 '악' 혹은 '바보'로 묘사된다. 이를 위해 여러 인물들과 사건들이 실제와는 다르게 묘사되고 평가받아왔다. 이중톈의 강의를 묶은 '삼국지강의'에서는 이런 점들을 지적하고 '연의'와 실제 역사가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연의'에서 가장 손해를 보는 인물은 아마도 조조일 것이다. '연의'에 나오는 조조의 이미지는 한나라를 계승하려 하는 유비에 대항해 황제를 끼고 한나라를 유린하고 자신의 욕망을 채운 '간웅'이다. 하지만 이중톈은 이런 이미지가 잘못된 것이며 조조는 영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 때문에 총 24강의 강의 중 절반인 12강이 조조에 대한 내용이다. 

조조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쉽지 않다. 나관중이 '연의'에서 조조를 부정적으로 그렸을 뿐 아니라 정사의 일종인 '자치통감'에서도 조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가지고 일부러 조조에 유리한 사료를 삭제하며 조조를 나쁘게 그렸다. 이 외에도 조조를 긍정적으로 그린 사료, 부정적으로 그린 사료가 난립하며 조조의 진짜 모습을 알기 어렵다. 

하지만 조조가 부정적 평가를 받는데 주요한 사건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연의'에서 자신을 환영해준 여백사 가족을 죽이고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신할망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라는 말을 남긴 사건이다. 이중톈은 다른 기록들을 통해 조조가 살인을 행한 배경을 살펴보고, 조조가 실제로 했던 말은 '차라리 내가 남을 배신할망정, 남이 나를 배신하게 하지는 않겠다'라는 것을 지적했다. 두 말의 차이는 적용되는 범위는 물론이고 평소 소신인지 비단 그 사건에 대한 의견인지도 다르다. 

이 외에도 인재를 대하고 활용하는 용인술, 백성들에 대한 배려, 군주로서의 태도, 인성과 인심의 통찰능력 등을 포함해 조조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장점들을 통해 훌륭한 군주로 조조를 재평가한다. 이에 더해 조조에게 패했던 원소나 원술, 여포 등이 성공할 수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들도 보여준다. 

책의 뒤쪽 절반은 유비와 손권에 대한 내용이다. 유비와 손권이 꿈꿨던 삼분지계(융중대책), 삼고초려, 신화와 같은 적벽대전에 대한 진실과 허구와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이 중 '연의'에서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적벽대전에 대한 내용을 조금 옮기면 아래와 같다. 

규모가 비교적 큰 전쟁이었던 적벽대전은 계획, 준비, 교전, 완성의 4단계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과정은 '삼국연의'에 매우 훌륭하게 씌어 있어, 중국 고대 문학에 소중한 유산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럽게도 문학은 역사가 아닙니다. '삼국연의'에서 8회나 되는 분량을 들여 매우 다채롭게 묘사하고 있는 전쟁의 과정, 특히 인구에 회자되는 고사들은 대부분 지어낸 이야기일 뿐입니다. 
여기에도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역사상 전혀 근거가 없는 경우입니다. '여러 유생들과 설전을 벌이다', '지혜로 주유를 격분시키다', '감택이 거짓 항복 문서를 바치다', '방통이 계책을 바치다', '동풍을 빌리다'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다른 하나는 약간의 근거는 있지만, 교묘하게 내용을 바꿨거나 심하게 과장한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장간이 계책에 빠지다'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장간이라는 사람은 있었고, 그는 주유의 진영에 왔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가 온 것은 적벽대전이 끝난 후입니다. '자치통감'에 건안 14년(209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당연히 계책에 속아서 조작된 편지를 훔쳐 읽었다거나 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후에 다시 말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약간의 가능성 있는 이야기는 '풀배로 화살을 빌린 것'인데 이 사건의 발생은 더욱 늦어 건안 18년(213년)입니다. 더구나 사건도 손권에게 벌어졌고, 또 화살을 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습니다. 사실상 '풀배로 화살을 빌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합니다. 누군가가 이미 이에 대한 득실을 계산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삼국연의' 속에 소개된 수많은 멋진 전투는 모두 역사적으로 벌어지지 않았던 듯합니다. 
이 전쟁에 대한 정사의 기록은 매우 간략합니다. 그리고 진수 자신의 주장도 매우 모순적입니다. 예를 들어, 적벽에서 일어난 큰불은 도대체 누가 놓았을까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선주전'과 '주유전'에서는 배에 불을 놓은 것이 손권과 유비의 연합군이라고 말하고, '곽가전'과 '오주전'에서는 조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독자들의 읽는 데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위해, 저는 이 두 가지 주장을 모두 아래에 나열하겠습니다. 


위에 적은 것처럼 적벽대전 외에도 '연의'에서 유비와 손권에 대한 여러 거짓들을 알려준다. 물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식의 폭로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삼국지 내용이나 사건들에 대해 일반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의미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중톈의 '삼국지강의'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연의'가 아니라 진수의 (정사) '삼국지', 배송지의 주 등 정사 사료들을 토대로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여러 사료들을 검토하기 때문에 실제 역사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연의'와는 또 다른, 하지만 '연의'만큼 재미있게 진짜 역사를 알 수 있다. 또한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강의를 엮은 책이기 때문에 위의 발췌부분에서 보듯이 쉬운 언어로 읽기 좋게 나와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볼 수 있겠다. 

 

'삼국지연의'를 좋아한다면 추천. 
숨겨진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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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3. 9. 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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