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기술자에 대한 소설이나 에세이, 회고록을 연상케하는 제목의 '오래된 연장통'은 그것들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항상 인기 있는 분야인 심리학 중에서도 최근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진화심리학을 소개하는 책이다. 진화심리학이 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줄이자면 '그건 니가 원시인이라 그래'가 아닐까. 혹은 '니가 진화가 덜되서 그래' 일거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기위해선 역시 책을 읽어봐야 한다.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카테고리 인문 > 심리학
지은이 전중환 (사이언스북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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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에서 '심리학' 앞에 굳이 '진화'라는 단어가 붙은 것은 현재의 우리는 원시인들이 진화한 결과이므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분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출현한지는 300만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한지는 20만년 정도가 지났다. 그리고 인류가 농경생활을 시작한 것은 대략 기원전 6000년 정도니 농경생활을 통해 정착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직 만년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의 산업화된 사회는 2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농사를 짓기 이전의 수렵/채집 생활에 맞게 진화해온 인류가 농경사회나 산업사회에 적합하게 다시 진화할 시간적 여유는 거의 없었다. 즉, 현재의 우리는 수렵/채집 생활에 적합하도록 진화된 존재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 오래된 연장으로 이루어진 현재의 인류를 '오래된 연장통'이라고 저자는 표현했다. 이점은 우리의 신체적, 정신적 모든 것을 지배할텐데 그 중 심리적인 면을 다루는 것이 '진화심리학'이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진화'라는 도구를 통해 해석하는데 인간의 마음에 대한 거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의 마음은 경제적 이득을 최대화하게끔 설계되지도, 이성이 자신의 궁극적인 목표를 역사 속에서 실현하게끔 설계되지도 않았다. 인간의 마음은 인류의 진화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수많은 심리 기제들의 집합이다. 마음이 설계된 목적을 연구하는 진화심리학은 심리학 전체를 하나로 통합하는 이론 틀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미처 몰랐던 사실들에 대한 예측들을 풍부히 생산하여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이끌어 준다. 심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예술, 종교, 미학, 경영, 법학, 경제, 의학 등등 인간의 모든 지식 체계들이 인간 본성에 대한 저마다의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감안하면, 마음에 대한 진화적 탐구는 인간이 이룩한 학문 전체를 통합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오래된 연장통'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기본입문서이다. 그러면서도 딱딱한 내용과 문체로 독자를 괴롭히는 책과 정반대인 대중서이다. 원래 다른 곳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서 책으로 펴내서인지 문체나 내용 모두 비전문가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도록 쉽고 깔끔하게 쓰여있다. 각 챕터의 분량이 거의 같은 것도 연재본을 모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이 진화가 덜되서 그렇다는 견해로 인간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방식은 신기할 정도로 여러가지 현상을 잘 설명한다. 뭔가 심오하고 이상한 인간의 행동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우리가 무심코 범하는 행동이나 취향들도 포함된다. 그 중 한 예로 사람들이 왜 2층 카페의 창가자리에 앉는 것을 선호하는지를 진화심리학이 설명한 것을 보자. 

조경 연구자 제이 애플턴의 '조망과 피신'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바깥을 내다 볼 수 있는 곳을 선호하게끔 진화했다. 장애물을 가리지 않는 열린 시야는 물이나 음식물 같은 자원을 찾거나 포식자나 악당이 다가오는 것을 재빨리 알아차리는 데 유리하다. 눈이 달려 있지 않은 머리 위나 등 뒤를 가려주는 피난처는 나를 포식자나 악당으로부터 보호해 준다. 산등성이에 난 동굴, 저 푸른 초원 위의 그림 같은 집, 동화 속 공주가 사는 성채, 한쪽 벽면이 통유리로 된 2층 카페 등은 모두 조망과 피신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풍수지리설에서 배산임수, 즉 뒤로 산이나 언덕을 등지고 앞에 강이나 개울을 바라보는 집을 높게 쳐 주는 것에도 심오한 진화적 근거가 깔려 있는 셈이다! 


머나먼 옛날, 사바나에 살던 인류가 선호했던, 넓은 시야를 확보하면서도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공간을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도 무심결에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도 우리가 겪는 많은 흥미로운, 하지만 사소한, 행동과 심리에 대해 진화심리학적 설명이 실려있다. 새로운 학문을 소개하는 대중서로서 말 그대로 일반 '대중'들에게 잘 다가갈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추천. 
심리학에 관심이 있지만 진화심리학에 대해서는 모른다면 강
추.
진화심리학에 대해 이미 잘 안다면 굳이 또 읽을 필요는.. 


 
by 청춘한삼 2013. 6. 8. 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