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사재기 파문이 있기도 했지만 때때로 도서 베스트셀러 순위에는 왜 올라오는지 모를 책들이 올라오고 이해할 수 없는 인기를 보이기도 한다. 주로 항상 인기를 구가하는 분야인 자기계발서나 최근 몇년간 대흥행에 성공한 속칭 힐링도서, 유명인이 추천하거나 펴낸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무르는 책이다. 거기에 더해 영화의 원작(주로 소설)이 뒤늦게 뜨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 영화 개봉 즈음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이 기억이 나는 것만 화차, 은교, 파이 이야기, 레미제라블, 그리고 가장 인기를 끈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영화로 인해 다시금 떠오른 책들 중 위대한 개츠비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많이 팔리는데는 수많은 출판사들이 영화에 편승해 엄청나게 마케팅을 한 것도 있겠지만 아마도 할인행사가 가장 큰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한글판, 영문판 책은 기본이고 포켓판을 끼워주기도 하면서도 가격은 반값으로 팔고 있던데 그런걸 보면 도서정가제에서 제외되는 기준을 처음 책을 출판한 시기가 아니라 해당 쇄마다 따로 매겨야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혹여라도 이 소설을 실용도서로 분류해서 도서정가제를 피해가는거라면 실용도서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가제를 적용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고..그렇다. 오랜만에 잘 팔리는, 그것도 여러 출판사에서 동시에, 책이 나와서 열심히 찍어내서 파는건 이해를 하지만 상황이 정상적이진 않아보인다. 물론 나도 한글판+영문판을 절반 가격에 사긴했다만. 
 

위대한개츠비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F. 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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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김영하가 직접 번역을 하고 책에 적은 역자 후기를 접하고 관심이 생겼고 소설의 분량이 생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두껍지 않아서 읽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전에 '레미제라블'을 읽으면서 분량이 많은 고전이 나에겐 버겁다고 느꼈었다. 당시 '레미제라블' 완역본이 나왔다는 것을 접하고 '몬테크리스토백작'과 '레미제라블' 중에 하나를 읽어보려고 했었다. 당시 레미제라블은 총 6권이었고 몬테크리스토백작도 비슷했던 것 같다. 먼저 레미제라블을 읽고 몬테크리스토백작을 읽어봐야지..라고 생각하고 레미제라블을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주인공인 장발장은 1권 절반이 지나서야 등장하는데..등장인물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그 인물의 가족 내력부터 시작해서 인물에 관련된 온갖 이야기를 다 하는데..그러다보니 스토리 진행은 기대보다 항상 느린데.. 도저히 즐기면서 읽을 수가 없었다. 꾸역꾸역 끝까지 읽긴 했지만 다시 손이 가진 않고, 이후부터 분량이 많은 고전은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다행히도(?) '위대한 개츠비'는 분량이 적은 편이라 읽어보게 되었는데 이미 팟캐스트를 들었기 때문에 역자 후기에 언급되었던 몇 가지를 의식하면서 책을 읽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책을 읽고 보니, '내가 사전 정보 없이 이 소설을 읽었다면 지금 이만큼의 이해가 가능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소설의 분량이 적다보니 독자에게는 덜 친절한 이야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예를 들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가 1차 대전이 끝나고 자신만만하게 세계무대로 진출하며 들떠있던 미국과 전통은 있지만 전쟁 이후 황폐해진 유럽의 시기라는 사전 이해가 부족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책만 읽어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자 후기에 나온 입이 거친 고등학생이 그런 반응을 보인게 아닐까. 번역을 맡은 김영하 작가는 시대를 반영하지 않는 번역이 그 원인이라고 생각했지만. 부족한 사전 정보로 작가가 의도한 바를 눈치채지 못한 독자는 아침드라마꺼리도 안되는 불륜 이야기 외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왜 이 소설이 '영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라 평가받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사전 정보의 부재가 소설의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비단 이 소설만 그런건 아니다. 21세기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내가 불과 몇 십년 전 대한민국에서, 6.25라든가 4.19, 5.18같은 사건들을 정면으로 맞부딪히며 살아온 사람들이 가졌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더 멀리 떨어진 소설들에 나오는 인물들을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거의 아는 것 없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삼은 소설을 접한다면 중세의 너무나 종교적이면서도 마녀사냥과 같이 너무나 비기독교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이 공존하는 사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 대항해 시대, 공업화 시대, 공산주의 사회 등등 어떤 시대적(혹은 공간적) 배경이 나오더라도 내가 아는 것이 없다면 나는 현재의 기준으로 가치를 재단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이해가 힘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나는 팟캐스트를 통해 소설을 읽는 도중에 어느 정도는 의미파악이 가능하기는 했었고, 미리 팟캐스트를 듣지 않았다 해도 소설을 다 읽은 후에 역자 후기를 통해 앞에 나왔던 내용들을 복기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 언급된 내용이 소설에 담긴 의미의 전부는 아닐 것이고 내가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간 내용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읽어보면 더 많이 알 수 있을까. 영화는 보지 못해서 원작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지, 원작을 이해하는데 얼마나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다. 

고전을 읽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면 추천. 
굳이 고전에 흥미가 없다면 필독할 필요까지는..


덧. 영화 개봉도 안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그리스인 조르바'는 왜 언젠가부터 갑자기 읽는 사람들이 늘어난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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