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백 : 2012/01/01 - [그여자의 독서와 사유] - 로마 모자 미스터리 - 추리소설의 거장 엘러리퀸

말로만 듣던, 그것도 얼핏, 엘러리 퀸의 작품을 드디어 보게 되었다. 
'X의 비극', 'Y의 비극'의 제목 정도만 알고 있던 내 앞에 나타난 것은 이름도 생소한 '로마 모자 미스터리'. '국가 + 명사 + 미스터리' 시리즈의 첫작품이자 엘러리 퀸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엘러리 퀸의 작품들이 새롭게 번역되어 시리즈로 하나하나 나오게 되는데 지금까지는 로마 모자, 프랑스 파우더,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이렇게 세 권이 나왔다.

책 자체는 양장본이지만 판형이 작아서(B6) 가지고 다니기에 편하고, 속지는 오래된 느낌을 주도록 디자인 되어 고풍스러운 느낌도 준다. 띠지에 작가들 얼굴이 부담스러운 것만 빼면 만족스럽다. 내용은 물론이고. 

소설의 대략적인 소개는 출판사의 서평이나 그여자 Gene의 포스팅을 통해 보는걸 추천.   

로마모자미스터리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엘러리 퀸 (검은숲, 2011년)
상세보기
 
추리소설의 원칙 중 하나는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탐정이 추리를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는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 각자가 스스로 탐정이 되어 사건의 실체, 즉 범인과 트릭을 알아내는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자와 탐정, 혹은 독자와 작가는 먼저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경쟁하게 된다. 작가는 독자에게는 사건의 실체를 최대한 들키지 않으면서 탐정에게만 알려주려고, 독자는 탐정이 모든 것을 밝혀내고 말하기 전까지 알아내기 위해.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비롯한 엘러리 퀸 시리즈는 작품에의 집중을 유도하기 위해 작가(탐정), 독자 간의 이런 경쟁을 최대한 이용한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앞에서 말한,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추리하지 않는다'는 당연히 지킨다. (사실 이걸 안지키면 추리소설이 아니다) 또한 엘러리 퀸과 아버지인 리처드 퀸의 대화를 통해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정리해주면서 독자와 탐정이 최대한 비슷하게 진도가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범인과 트릭을 밝히기 전에는 대놓고 독자에게 '난 이제 다 알겠는데 너도 그러니??'라며 도발하기도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등장인물들을 정리해놓은 페이지는 독자를 조금 더 도와주려는 작가의 작은 배려일 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엘러리 퀸은 사건 현장에서 어색한, 이번에는 사라진 모자, 어떤 것을 통해 수사와 추리를 진행해 나가는 것에 익숙해 보인다. 사건 현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사건 내용에 대한 편지만 보고도 모든 전황을 파악하고 뚝딱 해결해 보이고 잘난척까지 하는 뤼팽이나 미스 마플보다는 훨씬 더 인간적(덜 초인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하도 회색 뇌세포를 거들먹거려서 때론 재수없어 보이는 벨기에인에 비해서도 조금 더 그렇다. 

하지만 인간적(덜 초인적)이라는 표현이 어설프고 서투르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고전 추리소설답게 추리 과정은 정말 논리정연하다. 작은 단서에서 출발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우연적인 행운도 있기는 하지만 어찌됐건 추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다. 이런 점이 고전 추리소설의 최대 장점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하나.
셜록 홈즈나 포와로처럼 전업 탐정도 아니고, 김전일과 같이 숨만 쉬어도 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저주받은 운명이 아닌 엘러리 퀸이 수많은 사건들에 관여하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뉴욕에서 경찰로 근무중인 아버지 리처드 퀸 경감 덕분이다. 또한 아버지가 경감이기 때문에 경찰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엘러리 퀸이 추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런 사소한 점들도 최대한 인과관계를 맞추려는 고전 추리소설의, 혹은 엘러리 퀸의 치밀함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에게 추천. 
by 청춘한삼 2012. 1. 30.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