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걸 좋아하기는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지는 않는다. 자기계발이나 실용서처럼 관심이 없어서 읽지 않는 분야도 있고 관심이 있어서 읽고는 싶은데 다른 분야에 자꾸 밀려서 많지 읽지 못해온 건축이나 역사같은 분야도 있다. 하지만 읽어도 뭐가 뭔지 도통 이해가 안되는 분야라 손을 대지 못하는 분야도 있는데 바로 철학이다. 

고등학생 시절 윤리 시간에 배운 것이 철학에 대한 지식의 모든 것인데 그나마도 차츰 잊어버리고 있다. 학부 시절 용감하게 도서관에 (아마도) 니체에 대한 책을 한 권 신청해서 본적이 있기는 하지만 채 몇장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해버렸다. 분명 글은 한글이건만 한줄 한줄이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 정도로 알 수 없는 책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철학은 '정말 어렵다'는 이미지로 남아서 도전조차 하기 힘든 분야로 남았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시작이 잘못되었었다. 메시나 호날두를 상대로 수비를 해서 골을 먹고는 난 축구에 소질이 없구나..생각하고 포기한 초등학생 같다고나 할까. 기초부터 쌓아나갈 생각은 안하고 의욕만으로 무작정 덤비다보니 너무 일찍 포기하고 질려버린거였다. 

언젠간 다시 도전해봐야지..라고 마음 먹은지 얼마 안되서 친구에게 강신주의 책을 추천받았다. 원래 추천받은 책은 '상처받지 않을 권리'였지만 다른 책을 읽으며 미루고 있다 대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
카테고리 인문 > 인문학일반
지은이 강신주 (사계절,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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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시간은 부제와 같이 인문학을 통한 카운슬링 책이다. 크게 나에 대해 가지는 의문과 고민, 사람간의  관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와 환경,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눠져서 각각에 속하는 내용을 본인의 경험과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니체나 스피노자와 같이 유명한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이리가라이, 바디우와 같이 난생 처음 듣는 철학자들의 생각도 소개된다. (나만 몰랐나) 

저자는 고민과 아픔들에 대해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같이 어쩔수 없으니 그저 참고 인내하라고 위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프더라도 가지고 있는 고민과 아픔을 똑바로 쳐다보고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점(저자의 표현으로는 참다운 인문정신)이 이 책이 다른 카운슬링 책들과는 가장 크게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중요할거라고 생각했던 철학은 아픔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는 도구로서 이용된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철학에 대한 입문서를 한번 읽어본다는, 처음 가졌던 생각만큼은 쉽지 않았다. 하나는 나의 빈약한 인문학적 두뇌가 철학자들의 말을 저자의 해설을 통해서도 완벽히 제대로 해독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해설을 해주기도 전에 무슨 의미일까 혼자 고민해서 그렇기도 했다. 둘째는 저자가 해석해서 제시해 주는 내용을 받아들이기 힘든 점도 있었다. 챕터 하나하나마다 무슨 말인지는 대략 알겠지만 이것들을 내 삶에서 모두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셋째는 내가 이런 생각조차 못하고 지금까지 살아왔구나..하는 것을 깨닫게 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지만 그것을 낱낱이 확인시켜주는 것이 아프긴 했다. 바보에게 '너 바보지? 바보잖아.' 라고 직설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할까. 바보도 자신이 바보라는걸 알고는 있지만 남이 그러면 상처를 받는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분명 얻을 수 있는 것들은 있었다. 각 챕터마다 하나씩 총 48개의 메시지가 있지만 나에게 다가온 것은, 다시 한 번 지금의 삶을 살더라도 후회없이 똑같이 살수있도록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야 하고, 알고 믿는바는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이전부터 최대한 실천하려 노력하는, 역지사지의 태도로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고. 이 외에도 많은 메시지들이 나를 한번 더 돌아보고 남을 생각해보고 나를 둘러싼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만들어준다.

최근 읽은 책 중 머리맡에다 한 권의 책을 놓고 자기 전에 볼 수 있다면 이 책을 택할 것이다. 한번 읽고 넘어가기에는 정말 좋은 내용, (나의 지적 수준으로는) 한번 더 생각해볼 내용이 많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의문이 들거나 고민이 있다면 강추. 
철학(혹은 인문학)이 어떤 것인지,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백화점식 지식 판매 도서를 좋아한다면 읽어보는 것도. 
살면서 고민이 없고 마냥 즐거운 사람은 굳이 읽지 않아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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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6. 3. 01:22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제목으로도 '아, 철학책이구나.' 하지만, 첫장을 넘기면서 '왠걸, 생각보다 너무 잘읽히는걸?'하고 반문하게 됐더랬다.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11-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파도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철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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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강신주는 어디선간 한번은 들어본 이름인 것같아 이리저리 찾아보니 대학강단이 아닌 대중 아카데미에서 주로 강의를 해오고 있다고 한다. 저자의 다른 책들 또한 여러권 나와 있어서 친근하다 했었다. 저자는 아카데미에서 강의를 해온 터라 강의 방식 또한 나누고 공감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48명의 철학자를 저자만의 언어로 풀어내는데 많은 철학자들의 많은 이야기를 모아둔 것 같지만, 결국 한방향에서 만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나, 너, 우리로 나눠지는 챕터들에서 내가 물었던 질문과 얻고자 했던 대답이 녹아 있는 것만 같아서 열심히 읽었었다.

딱딱하기만 했던 철학에 한걸음 다가간 것 같아서 뿌듯했고, 이런 철학을 이해하고 나에게 왜 철학이 필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P.S - 음, 인생의 가이드를 찾은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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