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첫번째 책은 2012년 마지막으로 읽은 책인 '생각의 좌표'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요즘 자주 듣는 '꿈타장의 행복한 책읽기' 팟캐스트 덕분이다. 주로 주말에 차를 탈 때나 방에 혼자 있을 때 아이패드로, 요즘은 휴대전화로도 다운 받아서 운동할 때나 출퇴근할 때 하나씩 듣곤 한다. 그 중 '생각의 좌표'를 다룬 에피소드를 듣고 한번 읽어볼까..생각을 하는 와중에 그여자 Gene께서 선물해주셔서 읽어보게 되었다. 


홍세화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와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를 쓴 작가이자 진보주의자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진보신당의 대표를 맡은 것은 이전부터 듣긴 했었지만 이미 당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시기였기에 그러려니..하고 말았었다. 앞에 적은 저자의 두 책도 제목만 듣고 읽어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사실 저자에 대해 알고 있던건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어찌보면 아무런 선입견이 없는 상황이랄까. 

 


생각의 좌표

저자
홍세화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09-11-2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더 인간적인 사회가 아니라, 덜 비인...
가격비교

첫문단에서 적었듯이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질문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일반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 이 의문을 접하게 되면 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가, 남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주입된 것은 아닐까, 라는 의문도 저절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진정한 내 생각이 무엇인지, 그 생각의 좌표는 어디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무교육기간 동안, 지금 세대는 대학교육까지를 받으며 자신의 생각을 구축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자신의 생각을 만드는 방법으로는 폭넓은 독서, 열린 자세의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이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은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권장은 커녕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도 않는다. 이 부분을 저자는 아래와 같이 표현한다. 


교육의 궁극적 목적이 주체적 자아, 진정한 자유인을 형성하는데 있다면 학생들에게 독서와 토론, 직접 견문과 성찰의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로지 암기와 문제풀이 능력으로 학생들을 줄 세우는 한국의 제도교육은 윤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들의 일상에서 폭넓은 독서, 열린 토론, 직접 견문, 성찰의 기회를 완벽하게 빼앗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학생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일제고사의 시행이라든가, 대학에 대한 지향이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보다 줄어들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현실이 그다지 바뀌진 않았을 것 같다. 그나마 교육열(?)이 극성이지는 않았던 고등학교를 다녔던 나조차도 학교에서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나 '타나토노트'와 같은 비교과서를 읽는 것을 본 선생님에게 '너도 이런 책 읽는구나'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교육열이 훨씬 높았던 수도권이나 다른 곳의 학생들은 더더욱 그런 압박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기를 강요당하고, 수행평가의 일환으로만 이용되는 토론, 초등학생조차도 학교-학원-집(독서실도 포함 가능)의 쳇바퀴만 허용되는 생활에서 직접 견문이나 성찰은 바랄수도 없다. 대신 시험 성적, 모의고사 성적만이 일상이 되고 전국에서 몇 등이나 몇 등급인지, 전교, 반에서 몇 등인지, 언어 영역, 수리 영역 점수가 몇 점인지가 아이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어릴 때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중 하나는 언어 영역을 시험을 통해 점수를 내는 것이었다. 어떤 작품을 읽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같은 책을 읽어도 모든 사람이 같은 문장에서 감동을 받지도, 재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는 인생 최고의 책이 누군가에게는 X나 재미없기만 한 책이기도 하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모든 학생들이 같은 작품에 대해 같은 것을 느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워야 한다. 시의 어느 행은 어떤 것을 의미하고, 저 단어는 무슨 의미이고, 이 작품의 주제는 이거라고. 수학처럼 딱 맞는 답이 나오는 분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문사회과학은 생각과 논리를 요구하는, 정답이 없는 학문인데도 서열화된 대학은 초중고 교육을 대학입시 교육에 종속시킴과 동시에 학생들을 일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도록 요구했다. 인문사회과학을 생각과 논리는 없고 정답이 있는 '반학문'으로 왜곡시킨 배경이다. 학생들에게 생각과 논리를 물어서는 일등부터 꼴등까지 정확하게 줄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인간과 사회, 사물과 현상에 관해 묻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도록 요구하는 대신 객관적 사실에 관해 암기하도록 요구할 뿐이다. 생각과 논리의 학문을 암기과목으로 바꾼 것이다.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겠지만 굳이 꺼내지 않던, 학창 시절에는 그저 해야하니까 따랐고 이후에는 이후의 생활에 정신이 팔려 남의 일로 치부하고 넘어갔던, 그 생각에 대해 저자는 위와 같이 말했다. 그런 문제의 이유는 '서열화'이고, 문제로는 학생들이 자기 생각과 논리를 갖지 못하고 객관적 사실에 관해 암기하기만을 요구받는 것이라고. 


현재 학교에서의 문제는 제대로 된 시민 - 자유나 평등, 인권, 자율성, 관용을 지닌 - 을 기르기 보다는 경쟁과 승리를 가장 큰 덕목으로 삼는 학생들을 기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에 종속되버린 학교로서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사회와 교육계 전체를 한번에 바꿀 수는 없기에 학교 내부에서라도 뭔가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있고, 그 때문에 서울에서 혁신학교나 학생인권조례 등이 지속되지 못할 현실을 보면서 아쉬움을 느낀다. 


교육 문제 외에도 여러 사회 문제들에 대해 다루는데 그 중에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비판도 있다. 이 또한 본인들의 생각이 어디서에 어떻게 만들어졌고, 현재 자신의 위치를 알려 하지 않는 점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비정규직,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지 않는 점을 들 수 있다. 사실 노동자의 50%가 비정규직이고 자영업 비율이 30% 정도인 우리나라에서 노동자와 중소자영업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들이 이렇게도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이는 본인들이 '나는 다르다'라고 생각하거나 정당들에 전혀 관심, 혹은 기대가 없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사파리의 초식동물들은 그들끼리 서로 연대하지 않으면 하나씩 차례로 잡혀먹히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고 함께 행동한다. 동물들도 알고 있는 진리를 사람들도 이제는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지만 아직은 충분히 깨닫지 못한 것 같다. 5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글이 길어진 김에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실수 중에는 '다르다'를 사용해야 할 곳에 '틀리다'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르다'는 different, '틀리다'는 wrong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용하거나 '틀리다'로 통일해서 사용하곤 한다. 이것은 단순한 말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이 '다르다' 대신 '틀리다'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서일지도 모른다. 살다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서로의 차이를 용인하는 것에 인색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서로가 다를 뿐인데 서로가 틀렸다라고 생각하고 갈등을 겪거나 갈등을 키우곤 한다. 이 점을 고려하면서 사회를 바라보면 자신과 다른 사람은 틀렸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고쳐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나도 그 중 하나이고. 저자는 몰상식은 불관용을 낳고 불관용은 제어되지 않을 때 거침없이 폭력으로 나아간다고 말한다. 문제는 앞에 말한 것과 같이 서로의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몰상식이 용인되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 널리 퍼져있어 사회의 주류를 차지할 정도라는 점이다.

 

글을 쓰다보니 원래 구성했던 것에 비해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가 버렸다. 글이 너무 길어지기도 했고. 과연 누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뜬금없지만 책의 한 구절을 옮기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생각이 어떻게 자신의 생각이 되었는지를 고민해봄으로써 사회가 더 성숙해지길 바라며.

 

시민사회의 발전 단계는 대중이 무지와 무관심 단계에서 벗어나 얼마나 시민의식이 성숙했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또한 시민사회의 발전 단계는 시민의식이 광신과 극단주의, 사익추구 자체에 내장하고 있는 열성과 집요함에 얼마나 맞서고 있는지, 권력과 돈이 가진 힘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있다면 추천.

먹고 살기 바쁜데 자기 성찰 따위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면 추천.

학교에서의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프랑스에서 살다 온 지식인이 말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3. 1. 4. 20:09
2012년 한해가 마무리 되면서 모든 인터넷 서점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있는 와중에 그남자르닌과 그여자 Gene이 함께 하는 '그남자 그여자의 독서와 생각'에서 그남자 세르닌 단독으로 2012년에 그남자가 읽은 책 중 '갑'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기록해보기로 했다. 중요한건 2012년 출간된 책 기준이 아니라 그남자 세르닌이 2012년 읽은 책 기준이라는 점과 갑은 한권이 아니라 여러 권이라는 점. 

순서는 '갑 of 갑', '갑 of 갑 of 갑' 이런 식으로 경중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올해 읽은 순서대로다. 블로그에서 리뷰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다. 순전히 개인 취향이니 본인과 생각이 다르더라도 이해해주길. 


- 2012 그남자가 읽은 '갑'들

1.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더 나은 삶을상상하라 / 자유시장과 복지국가 사이에서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토니 주트 (플래닛,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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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토니 주트가 사망하기 전 집필한 마지막 책. 
저자의 '포스트워'도 언젠가 보려고 생각 중. 
2012/02/26 - [그남자와 책] -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현대 시민의 필독서


2.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 장하준 정승일 이종태의 쾌도난마 한국경제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장하준 (부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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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경제가 미래에 나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책을 읽을 때만 해도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느냐에 따라 책에서 나온 수준까지는 진행될 수 있지 않을까..생각했지만 현재로서는 타협의 대상인 재벌, 기업집단이 자발적으로 협상을 받아들일 유인도, 사회나 정부가 강제로라도 협상장에 끌어들일 방법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실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협력의 진화
협력의 진화 / 이기적개인의팃포탯전략
카테고리 과학 > 교양과학
지은이 로버트 액설로드 (시스테마,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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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 죄수의 딜레마'라는 용어를 들이댈 필요는 없다. 협력을 할 줄 아는 착한 사람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여준다. 다들 좀 서로 도우면서 착하게 살자. 
2012/10/02 - [그남자와 책] - 협력의 진화 - 서로 도우며 착하게 살자


4. 노동의 배신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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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미국 저소득층 사회에 대한 르포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대입해봐도 딱히 다르지 않다. 아무리 일해봤자 더 나은 삶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2012/09/01 - [그남자와 책] - 노동의 배신


5.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
집을 순례하다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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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을 순례하다 /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 담긴 8개의 집 이야기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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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고 전위적이지 않은, 진짜 사람을 위해 지어진 집들의 순례기. 
2012/10/28 - [그남자와 책] - 집을 순례하다
2012/12/21 - [그남자와 책] - 다시, 집을 순례하다


스크롤의 압박을 이겨내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두들, 나름대로 올해를 마무리하는 의미로 (꼭 책이 아니더라도) 한 해를 돌아보고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보는건 어떨지. 
by 청춘한삼 2012. 12. 24. 21:50
관련글 : [그남자와 책] - 집을 순례하다

'집을 순례하다'를 재미있게 읽고 바로 질러버린 속편. 다시 집을 순례하다. 속편이기 때문에 여전히 저자도 같고 구성이나 책의 컨셉도 거의 같다. 얼마나 같은지 저자의 서문도 따로 없다. 원래 잡지에 싣던 원고를 모아서 책으로 낸거라 그런가..생각하고 있다. 

다시 집을 순례하다 / 20세기 건축의 거장들이 지은 달고 따듯한 삶의 체온이담?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2년)
상세보기
 
기본적인 컨셉은 같지만 속편으로 오면서 좀 더 건축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진 듯 하다. 유럽과 미국의 주택만을 소개하던 전편과 달리 일본과 멕시코의 건축까지 소개됐을 뿐만 아니라 주택 자체만이 아닌 전체 건축모음을 소개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는건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과 그 사람을 위해 건축가가 기울인 노력을 소개하는 것이다. 

이번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집은 제일 먼저 나오는 스미요시 연립주택이다. 
이름만 보고 연립주택이라고 하기에 우리나라의 빌라와 같은 집을 상상했었는데 일반적인 주택이라 놀랐다. 비단 나만 그렇게 착각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 주변의 경찰 또한 이름만 듣고는 집 안에 연립주택이 있는건가..하고 생각을 했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알고 보니 가운데 중정을 통해 집이 양분되기 때문에 연립주택이라고 했다는..
스미요시 연립주택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요소는 외장을 콘크리트로 마감했다는 점이다. 최근에 지은 박물관이나 여러 건축물들에서 콘크리트 마감이 나타나곤 하지만 주택에까지 적용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시각적으로 뭔가 특이해 보이는 것 외에 여름에는 더워서, 겨울에는 추워서 문제라는, 거주민에게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여름의 콘크리트 도로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연립주택의 주인은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처럼 힘들긴 하지만 집을 전혀 고치지 않고 25년간 살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이 책이 나온지는 좀 더 되었으니 아직 그대로 살고 있다면 30년이 넘었겠다. 
사실 연립주택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 나온 비판처럼 '건축가의 횡포'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주택은 결국 사는 사람이 만족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비판만 할수는 없는 듯하다. 저자는 그렇게 오랫동안 만족하며 살고 있는 집주인들을 찬양하지만 내가 집주인이었다면 어땠을까..그냥 살았을까 아니면 팔거나 새로 지었을까..그건 모르겠지만 우선 지금 드는 생각은 내가 나중에 집을 짓게 되면 외장 콘크리트는 피해야겠다는 것이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집은 덴마크의 '키에르홀름의 집'이다. 
바닷가에 나즈막히 지어진 집이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는 점이 기억에 남게 하는 요소인듯하다. 집의 크기가 큰편이라 내가 그렇게 지어서 살기엔 힘들겠지만 주변 경관을 잘 즐길 수 있고, 월출을 볼 수 있도록 디테일하게 설계된 점, 내부의 깔끔한 인테리어까지, 잘 새겨놓아야겠다.

케이르홀름의 집 파트에서는 집 이야기만이 아니라 저자의 '순례'에 대한 속이야기도 나온다. 저자가 순례 겸 취재를 하는 마음가짐이 나오는데 조금 옮겨보면 아래와 같다. 

제가 순례를 하는 주택들은 모두 대학시절부터 제가 연모해왔던 주택들입니다. 때문에 공간 구성이나 입면은 물론, 그 집의 특징이나 눈여겨볼 만한 부분 여기 제 뇌리에 각인되어 있지요. 게다가 사진가나 편집자가 동행하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혼자 떠나는 여행이니 제 일의 스케줄만 잘 정리하면 언제든지 가볍게 떠날 수 있습니다. 
가끔 "취재 힘드시죠?"라며 걱정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말이 나온 김에 <무대 뒤>의 이야기를 살짝 해볼까 합니다. 제가 하는 취재란 사실 싱거울 정도로 간단합니다. 취재라기보다는 그저 <방문>이라고 쓰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보통의 방문보다는 주의 깊게 둘러보려 하고 관심 가는 부분은 스케치한다거나 재빨리 실측해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것도 그리 힘들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콧노래와 함께하는 즐거운 일입니다.
사진 촬영도 마찬가지지요. 삼각대를 세워 본격적인 자세를 취해 찍기 시작하면 가구를 옮긴다거나 앵글 안에 소품을 이리저리 배치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카메라는 손에 든 채, 실내는 있는 그대로, 플래시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세 가지 원칙을 고수하며 스냅 사진을 찍는 요령으로 짧은 시간 안에 찍고 있습니다.
거주자가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사항을 미리 준비해서 인터뷰를 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통역사를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복잡한 이야기로 들어가면 제 쪽의 어학 실력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대부분 잡담에 가까운 가벼운 이야기로 일관합니다. 또 그 이야기를 메모하지도 않습니다. 메모같은 것을 하면 서로 새삼스럽게 격식을 차리게 되므로 허물없이 이야기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즉 취재하는 쪽도, 반대편 쪽도 잘하려고 긴장할 필요 없는 <평상복>처럼 편안한 취재입니다.


생각보다 길게 썼는데 저자가 어떤 자세로 주택들을 방문했는지를 보면 책의 본문을 보지 않아도 저자가 얼마나 순례, 혹은 방문을 즐기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본문을 보면 저자의 행복함이 절로 느껴져 나까지 절로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난다. 저자의 저서 중에 '집을 짓다'라는 책이 번역되었던데 읽어볼까말까 고민 중이다. 이제 남의 작품이 아닌 자신의 작품을 위주로 이야기를 할테고, 실제 집을 짓는 건축가의 마음이 어떤지도 궁금하고 해서 보고 싶긴하다. 보고 싶은 책이나 봐야할 책들이 밀려있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아마 언젠가 구해서 읽어보긴 읽어볼 듯 하다. 

추천 여부는 전작과 같은데 + α 하나. 
주택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강추. 
자신이 살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강추. 
아파트만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 
조금은 다른 여행기를 원한다면 추천. 
전작, '집을 순례하다'를 읽어봤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2. 12. 21. 21:14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에 출판되는 경제학 관련 책에는 크게 두가지 분류가 있었다. 하나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원인의 분석, 다른 하나는 지금까지의 경제학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후자는 대개 경제학(혹은 주류 경제학)의 '경제적 인간(Homo-economicus)' 가정을 비판하며 행동경제학을 소개하거나 행동경제학을 토대로 논의를 전개하는 편이다. 

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군터 뒤크 (비즈니스맵,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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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의 경제학 불황의 경제학'이란 긴 제목을 가진 책은 제목만 보고도 대강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예상할 수 있다. 거기에 'Farewell to Homo-economicus'라는 원제를 보면 더 상세하게 내용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사람들은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경제적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호황일 때와 불황일 때의 심리, 생각이 달라진다. 경제 상황에 따라 현실에서 구현되는 경제의 내용이 달라지고 이를 설명하는 학문인 경제학 또한 상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내용을 본문에서는 여러번,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는데 간단히 한 문장으로 말하면,

호황은 긍정을, 불황은 스트레스를 만든다.


로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긴 설명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이처럼 경제는 시대의 원초적 본능과 함께 파드되를 춘다. 호황기에는 지킬 박사가 왈츠를 추고, 불황기에는 하이드가 분노의 춤을 춘다. 호황기에는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가 지배하고, 불황기에는 자본가와 프레카리아트 및 프롤레타리아가 생존을 두고 투쟁한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변화를 경제학 이론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들은 시기에 따라, 사람에 따라 항상 상반되는 이론에 빠져든다. 그들은 역사와 심리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나타나는 경제 이론을 매번 새로운 것으로 인식한다. 


위 본문에서 말하는 시대에 따른 인간 본성을 책에서는 '국면적 본능'이라 부른다. 인간은 스트레스 상태(불황기)에서는 인간의 탈을 쓴 기게, 혹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는 동물이 되고, 미래에 대한 긍정적 희망이 있다면(호황기) 신뢰와 의미가 가득한 환경에 있는 인간이 된다. 이처럼 경기에 따라 인간의 인간관 또한 경기 상황에 따라 변한다. 

더글러스 맥그리거는 '기업의 인간적 측면'이란 책에서 인간 본성에 대해 X이론과 Y이론을 제시한다. X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천성적으로 게으르고 일하기를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자는 노동자를 선도하고 이끌어야 하며 무엇을 해야할지, 정확한 작업 과정을 하나하나 지정해 주어야 한다. Y이론에서 인간은 능동적이고 의미를 추구하는 행동에서 삶의 가치를 느끼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Y이론에 따르면 경영자는 직원들이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느끼도록 작업과 목표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면 일은 경영자가 닥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다. 이처럼 X이론과 Y이론은 동일한 인간을 상반된 두가지 시선으로 바라보는데 책에서 말하는 국면적 본능과 두 이론은 조건에 따라 합치된다. 그 조건은 경제 상황이다. 호황기의 사람들은 Y이론, 불황기의 사람들은 X이론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불황기에 사람들은 서로 이익만을 취하려는 동물이 된다. 저자는 이런 시기의 사회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낙오하는 사람은 저성과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남들이 그렇게 낙인찍도록 하는 것도 자기 잘못이다!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도 자기 잘못이다! 모두 높은 압력을 받고 있기에 실패한 자는 어떤 배려도 없이 그냥 살벌한 길 위에 나앉도록 놓아둘 수 밖에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공동체가 죽어버린다. 교회는 비어간다. 자원봉사로 유지되는 사회단체들도 해체된다. 각자 스스로 행동해야 한다. 국가의 구성원이 점점 줄어드는데도 아이를 낳고 기를 시간은 없다. 


굳이 책에서 불황기의 사회 묘사를 읽어보지 않더라도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이미 불황기의 혹독함과 어려움을 체험하고 있다. 불황기의 어려움을 줄이고, 불황기를 최대한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서 경제학은 '어떻게 하면 경제를 합리적인 선상에서 유지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답은 '호황기 때의 현명함과 절제'이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고 책에서도 설명하듯이 호황기에는 본능과 탐욕, 흥분이, 불황기에는 생존투쟁이 지배한다. 시기를 막론하고 '국면적 본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국면적 본능에 휩쓸리지 않는 것은 매우 어렵다. 표지에 나온 사자는 호황기에는 절제없는 사냥을 하고 초식 동물 수가 너무 줄어들면 급격한 불황을 맞는다. 후버 전 대통령이 말한, 자본주의가 낳은 너무나 탐욕스러운 자본주의자 뿐만 아니라 이스터 섬에 살던 원주민들까지도 호황기의 탐욕은 억제하지 못해왔다. 당장 거울을 보고, 주변을 둘러봐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호황과 불황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은 역사적으로 불가능했다고 생각하고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현명한 사람들도 존재했다. 표지에 사자 반대편에 있는 인디언이 그 주인공이다. 인디언은 "아주, 아주 많은 들소가 있다고 해도 평소에 먹던 만큼만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디언 외에도 이누이트나 조에족 같이 여러 집단들이 탐욕 대신 인디언과 마찬가지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는 선지자들이 존재해왔다는 점에서 희망을 가져보자. 

중요한 것은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누구를 따라갈 것인가이다. 우리는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회를 원한다면 이성적인 정당과 이성적인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위해 좋은 시기에 저축하고 절제하자..라고 말하는 지도자가 과연 선출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행동경제학에서 한발 더 나간 대안경제학을 원한다면 추천. 
(본문에서는 제외했지만) 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나타나는지 알기 쉬운 설명을 원한다면 강추. 
경제에 관심이 없더라도 인간 심리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덧. 마지막 문단 때문에 정치적인 시선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책에서는 그런 느낌 별로 없음.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2. 12. 9. 21:01
나는 요리에 무지한 편이다. 할줄 아는 요리라곤 라면 끓이는 것 밖에 없고 집에 먹을 것이 없는데 혼자 식사를 해야 하면 라면을 끓이거나 배달음식을 시키거나 나가서 사먹는다. 얼마전까진 밥솥에서 김이 나오면 밥이 다된건줄 알았었다. 한참 더 놔둬야 한다는걸 이제는 안다만.. 20년간은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음식만 먹고, 이후 십년은 요리가 불가능한 기숙사에서만 살다보니 전혀 요리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은 요리를 좀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곤 한다. 졸업 후 혼자 살게 되면 매일 사먹기만 하기도 그렇고, 야매토끼의 웹툰을 볼 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나도 한번 배워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식보다는 제빵이나 파스타 요리를 배워보고 싶은건 100% 내 취향 때문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우선 한식을 배워야겠지. 

나처럼 요리 스킬이 전혀 없던 한 PD가 직장을 휴직하고 멀리 영국까지 가서 500일간 요리를 배워왔다.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있다면 당연히 들어보았을 '누들로드'를 만든 이욱정 PD가 그 주인공이다. 음식 전문 PD였으니 음식에 관심이 많고 보고 들은 것이 많으니 나처럼 아무 개념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출발선이 앞서 있었을 것이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읖는다고 하지 않나. 물론 그도 기술은 전혀 없었기에 한참 고생을 하기는 한다만. 

쿡쿡 / 누들로드PD의 세계 최고 요리학교 르코르동 블뢰 생존기
카테고리 요리 > 요리에세이
지은이 이욱정 (문학동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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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유학을 떠난 브코르동 블뢰는 런던에 있는 프랑스 요리 전문학교이다. 나는 처음 들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 학교라고 한다. 저자는 이 곳에서 초급, 중급, 고급, 파티셰 과정까지를 소화하며 요리에 대한 경험을 쌓는다. 단순하게는 정리정돈을 잘하는 습관부터 타인의 요리, 다른 문화의 음식에 감탄하는 법을 배우고 좋은 음식과 그것을 우리에게 준 자연에 감사하는 법까지 배운 저자의 경험들이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통해 독자에게 잘 전달된다. 저자가 방송 PD이다보니 깔끔하고 재치있는 말솜씨뿐만 아니라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진들이 저자의 경험과 생각을 더욱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에세이라는 장르를 잘 보지 않는 편이고, 그나마 요리에 관련된 책은 아주아주 어릴 때 집에서 산 전자렌지에 딸려왔던 전자렌지로 가능한 요리 예시책을 제외하면 거의 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의욕이 마구 생기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여러 에피소드들과 저자의 생각들을 통해 느낀 것은 크게 두가지이다. 하나는 문화적 상대주의, 다른 하나는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가이다. 우선 첫번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아래와 같다. 

<누들로드>를 만들면서 내가 느낀 것은 국수가 특정한 민족의 독창적인 창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국수는 '우리만의 음식'도 아니지만 '그들만의 음식'도 아니다. 국수뿐 아니라 모든 음식은 크고 작은 문명의 자장 속에서 오랜 세월을 거쳐 완성되어 왔다. 우리가 한식세계화에 대해 질문해야 할 것은 '우리 것이 저들 것보다 얼마나 더 우월한가?'가 아니라 '우리에게는 있고 저들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 '저들에게는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무엇인가?'이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음식문화와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궁극적으로 '저들에게 무엇을 배울까?'를 고민해야 한다. 


개고기나 김치 등 우리나라 음식에 대한 외국의 평가는 음식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보다는 쉽게 민족주의로 흘러 '우리 음식이 더 낫네', '저들이 틀렸네'의 소모적인 논쟁을 유발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와 저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무조건적인 승리 지상주의가 아니라 상대주의를 통해 객관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경쟁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의 프레임 자체를 바꿔야 한다. 이것은 음식에 국한해서가 아닌 모든 것에 대해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인생에 대한 자세로는 저자가 요리유학을 결심하게 된 '인생은 물이 막 끓기 시작한 2.5ℓ 냄비다. 더 늦기 전에 내가 가진 내료를 있는 대로 집어넣고 죽이든 밥이든 리조토든 무언가를 만들어야 돼'라는 생각을 항상 떠올리면서, 동시에 '인생이라는 요리에는 모두가 따라야 할 정해진 레시피란 없으며, 오직 자기가 만들어가는 자신만의 레시피가 있을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하겠다. 

요리를 좋아한다면 추천.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현재의 인생에 변화를 꿈꾸고 있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2. 11. 24. 01:41
세상은 언제나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다. 10년 뒤와 같이 먼 미래가 아니더라도 당장 한달 뒤의 대선에서 누가 승리할지조차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다. 내일 아침 포털 메인화면을 뒤덮을 기사가 어떤 것이 될지도 아직은 알 수 (혹은 확신할 수) 없다.

이런 불확실성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특성임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람은 주변에 넘쳐난다. 언론에 등장하는 수많은 정치평론가들, 내일 어떤 주식이 오를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주식 전문가들, 아파트 값이 바닥을 찍었다고 주장하는 부동산 업자들, 버스 좌석 뒤에 붙은 광고의 역술인들, 인생역전을 바라며 로또를 사는 사람들, 월드컵마다 저주를 거는 펠레.. 확신의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본인이 미래를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 내용을 주변에 알리고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실패를 겪는지에 대해서는 굳이 예를 들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일기예보와 같이 일상적인 예측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이미 이전 포스팅 - 거의 모든 것의 미래 - 를 통해서도 언급한바 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에서는 미래 예측을 위한 모델에서 결과에 영향을 주는 모든 요인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미래 예측은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고,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결과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모두 고려할 수 없는 이유는 요인들의 정확한 값을 측정, 이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모든 요인을 고려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와 같은) 도구의 한계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모든' 요인을 파악할 수 없다는데 있다. 미처 생각지 못한 요인, 검은 백조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랙스완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동녘사이언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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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백조란 미처 예상치 못한, 하지만 매우 중대한 요인이 되는 현상을 비유하는 말이다. 팻테일(Fat Tail)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흰색 백조만을 봐오며 '모든 백조는 희다'는 생각을 가졌던 서구인에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견된 검은 백조 몇 마리가 준 충격은 경험적 인식, 신념을 깨버리는 현상 자체를 '검은 백조(Black Swan)' 현상이라 부를 정도로 컸다. 이런 충격은 비단 서구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아예 이름도 '백조'라고 짓지 않았나. 

검은 백조 현상은 예견 불가능성, 막대한 파급력, 사후 합리화의 속성을 지닌다. 
최근 대표적인 검은 백조 현상이자 저자를 현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게 만든 사건이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골디락스 시대가 그렇게 급격히 막을 내리리라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렇듯 제대로 된 예측이 불가능했고, '글로벌'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을 보듯 엄청난 파급력을 보였고 이로 인해 몇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재정위기라는 연쇄적인 고통를 겪고 있다. 또한 당시에는 침묵했던 많은 전문가들이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에는 너도나도 문제의 조짐이 있었다거나 저마다의 해석을 내놓으며 문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말하는 사후 합리화를 시도하곤 한다. 
비단 글로벌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검은 백조 현상이라 불릴만한 현상에 대해서는 이런 속성들이 드러나곤 한다. 작년 가을 갑자기 떠올랐던 안철수 현상이라든가, 각자 생활 속에서건 역사 속에서건 검은 백조에 대해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상을 평범의 왕국과 극단의 왕국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한다.
평범의 왕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검은 백조가 출현하지 않는 영역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쉽게 예측이 가능하고 무작위성이 작으며, 과거의 사회 환경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다. 극단의 왕국은 평범의 왕국과는 반대로 검은 백조가 출현하는 영역이다. 현재나 과거의 정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고, 극단적인 몇 개의 사건, 사례가 전체를 결정해 버릴 수 있으며, 현대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각을 예를 들자면, 사람들의 키는 평범의 왕국, 사람들의 부는 극단의 왕국에 속한다. 사람들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평균을 구했을 때, 100명의 표본 중 세계에서 제일 키가 큰 사람 한명이표본에 끼여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전체 평균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표본이 1000명으로 커진다면 그 영향은 더 줄어들 것이다. 이번에는 역시 100명의 표본의 부를 생각해보자. 만일 표본 100명 안에 빌게이츠가 끼여있다면 부의 평균은 그 한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마 99명의 부를 모두 합쳐도 빌게이츠 한 사람의 부보다 작을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에는 표본이 1000명으로 늘어난다고 해도 전체 평균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지더라도 여전히 평균을 외곡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평균에 대한 내용은 지난 포스팅 - 새빨간 거짓말 통계 - 에서도 언급한바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몇가지 사례가 전체를 좌우할 수 있는 영역을 극단의 왕국, 그렇지 않은 것을 평범의 왕국이라 부른다. 저자는 현대 사회의 많은 영역이 극단의 왕국에 속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검은 백조가 출현할지 모른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특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검은 백조가 출현하게 되고, 출현했을 때 충격이 클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미래 예측 또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는 검은 백조 자체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검은 백조 출현이 예측 가능하다면 이에 대한 대비와 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그러면 검은 백조가 더이상 검은 백조가 아닐 것이지만, 실제로 예측 불가능한 검은 백조가 출현하기 때문에 이를 고려하지 못한 미래 예측은 맞을 수가 없는 것이다. 

검은 백조가 언제 어떻게 출현할지 모른다고 주장하는 저자가 가장 비판하는 것 중 하나는 정규분포곡선이다. 이공계가 아니라면 고등학교 수학시간에 잠깐 듣고 잊어버렸음직한 이 곡선이 비판받는 것은 어떤 극단에서 나타나는 검은 백조 현상의 가능성이 너무 무시되고 평범의 왕국만을 고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Normal Distribution NIST
위와 같은 정규분포곡선은 중앙의 평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것을 보여준다.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의미하는 분산, 표준편차가 커질수록 확률은 점점 내려가고 검은 백조라 할만한 정도의 거리가 되면 거의 의미없는 확률이 나온다. 이 때문에 정규분포곡선은 검은 백조의 가능성을 (거의) 무시하는데 많은 분야에서 정규분포곡선을 이용해 여러 모델을 만들고 이 모델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려 하기 때문에 검은 백조의 출현을 전혀 예측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검은 백조의 출현 가능성을 언제나 잊지 말고 명심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검은 백조 이야기는 실패를 면하는 정도를 넘어서 행동의 준칙을 마련해 준다. 검은 백조 이야기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지식을 어떻게 행동으로 만들고 어떻게 가치 있는 지식을 판별하는가를 알려 준다. 


이 글을 읽는 모두, 언제나 검은 백조를 잊지 말자. 

세상은 왜 예측한대로, 기대하는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인지 궁금하다면 추천. 
두꺼운 책을 싫어한다면 비추. 
깔대기를 휘두르며 잘난척하는 저자의 말을 그냥 넘길 수 없다면 비추. 


덧. 290페이지에 '칼 마르크스는 프루동의 <빈곤의 철학 The Misery of Philosophy>을 꼬집어 <철학의 빈곤 The Philosophy of Misery>이라는 비판서를 쓴 바 있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 책의 영어제목이 바뀐게 아닌가 싶다. 찾아보니 원제들이 영어가 아니긴 한데 영어로 옮기면서 역자가 실수한게 아닐까. 물론 확실한건 블랙스완 책의 원문을 보는 것이겠지만..
by 청춘한삼 2012. 11. 8. 20:05
내가 가지고 있는 소망 중에 하나는 내가 살 집을 지어서 사는 것이다. 집이 너무 클 필요도 없고 적절한 사이즈의 마당이 있는 주택을 지어서 사는 것이 꿈이다. 그러려면 우리나라에서는 단독주택에 대한 관심과 배려, 시장이 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싶긴한데 몇년 전부터 땅콩집을 필두로 한 단독주택 바람과 아파트 시장의 침체를 생각하면 점차 주택(혹은 비아파트) 시장도 커질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주택을 지으려면 건축가의 도움을 받지 않을수도 있지만, 사실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편이 훨씬 마음 편하게, 내가 원하는 집을 지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지어서 내가 살지 않고 세를 놓을 것도 아니고,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니 내가, 그리고 내 가족이 원하는 형태의 내외장을 가지는 집을 지으려면 아마도 복사한 듯 찍혀서 판매되는 설계도로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집의 구조나 형태를 확실히 결정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집에 살아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내가 그렇게 할 형편은 못되기 때문에 간접적인 체험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건축가, 특히 주택 전문 건축가가 직접 거장들이 만든 집을 방문하고 펴낸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집을 순례하다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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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인 저자는 전세계(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유럽) 20세기의 거장들이 지은 집을 (제목 그대로) 7년간 순례하고 독자에게 그 집들을 소개한다. 내가 아는 건축가는 아무도 없긴 하지만 건축학도의 입장에서는 성지순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세계 문화유산 답사기 주택편'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건축 여행기라는 점에서 이전에 읽었던 '세계건축기행'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 책에 비해서는 좀 더 감성적이고 쉽게 다가온다. 문체의 영향도 있지만 여행을 떠나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의 설레임과 기대감,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사진이 아닌 직접 건축물을 보고 느낄 때의 놀라움과 감동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두 책의 가장 큰 차이는 소재이다. 세계건축기행이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세계문화유산들이 소재라면, 이 책은 20세기의 주택만이 소재이다.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저자의 감성을 드러내는 문체만이 아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주택들의 내외부 사진과 스케치한 설계도가 책에 생생함을 더해준다. 저자가 단순한 건축가가 아닌 주택 건축의 팬이기 때문에 집들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설명하는 것이 가능한 것 같다. 또한 책 중간중간 등장하는 일러스트들(표지의 일러스트를 포함해서) 또한 저자가 직접 그린 것들이다. 

8명의 건축가의 9개의 주택이 소개되는데 거장 건축가들의 작품임에도 화려하거나 전위적이기만 하고 비실용적인 면이 그다지 없다는 것이 놀라웠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은 약간 예외이긴 하지만 낙수장이 백만장자의 별장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르 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이나 루이스 칸의 에시에릭 하우스가 마음에 든다. 주변 경관과 잘 조화가 되고, 과하기는 커녕 오히려 단순한 구조, 눈치채지 못할 곳에서도 집에 살 사람들을 세심히 배려한 흔적들. 여러가지 요소가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사실 주변과 집의 조화와 그 집에 살 사람에 대한 세심한 배려는 소개된 여러 주택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요소이다. 작은 채광창 하나, 가구 배치 하나, 진입로 각도, 편안한 동선 배치까지,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여서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알게 되면 건축가의 세심함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점들이야말로 그들을 거장이 되도록 한 가장 큰 요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저자는 평범한 독자들이라면 놓치기 쉬운 하나하나를 발견하고 설명해준다. 

세상에는 수많은 집들이 있지만 저자가 고르고 골라서 책에 소개된 집들에서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주위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집들을 보여준다.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무굴의 타지마할,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이 거대하고 웅장하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은 아닌 건축물과는 달리 평범한 사람들이 요리하고 식사하고 잠드는, 생명이 살아가는 집들을 볼 수 있다. 더불어 저자의 주택에 대한 애정 또한 엿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주택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강추.
자신이 살 집을 짓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강추. 
아파트만이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추천.
조금은 다른 여행기를 원한다면 추천.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지원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2. 10. 28. 23:27
최근 롯데와 SK의 뜨거운 가을시즌이 계속 진행되고 있다. 가을야구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미국에서도 동시에 진행중이다. 올 시즌도 여전히 제국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AL) 챔피언쉽에 진출했다. 양키스는 1995년 이후 2012년까지 18번의 시즌 중 17번의 포스트시즌을 치루며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강팀 중 강팀임을 증명하고 있다. 양키스가 단 한차례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시즌은 2008 시즌이었다. 2008 시즌 뉴욕 양키스를 제치고 지구 우승을 차지한 것은 만년 하위팀이던 탬파베이였다. 바로 전해 2007 시즌에 지구 최하위를 기록했던 탬파베이는 팀 창단 최초로 지구 우승을 차지하고 기세를 몰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다. 월드시리즈에서는 또 하나의 돌풍의 팀이던 필라델피아에게 패했지만 탬파베이는 시즌 내내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 / 메이저리그 히든 챔피언 탬파베이 레이스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영일반
지은이 조나 케리 (이상,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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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큰 성공을 하면 그 성공 요인을 밝히는 책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꼴찌팀에 어떤 일이 발생했길래 어느날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는지 알려주기 위해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라는 긴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원제는 'The extra 2%'이다. 원제는 대답, 번역본 제목은 질문인셈이다. 

이 책의 소재가 야구팀 경영이라는 면에서 이전에 포스팅 했던 머니볼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머니볼이 빌리빈이라는 괴짜 단장을 축으로 세이버 매트릭스나 팀의 구성원들을 배열하며 어떻게 오클랜드가, 그리고 빌리빈이 혁신을 통해 성공을 거두었는지 말해준다면, 이 책은 탬파베이라는 팀 자체를 축으로 이들의 암울했던 역사와 개혁을 통한 성공에 더 무게를 둔다. 이런 서술 방식의 차이는 빌리빈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단장과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통계학적 분석을 통해 전체 야구계의 기존 상식을 뒤흔들만한 혁신과 결과를 보여준 오클랜드와 새로운 구단주에 의해 구단의 모든 것을 뿌리째 바꾸는 개혁을 성공시킨 탬파베이의 차이 때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전까지 없던 선구자가 나타나 경쟁력 없던 팀을 쇄신하고 성공을 거두는 면에서 두 책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많이 다르다. 세이버 매트릭스라는 새로운 해석툴을 이용해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며 적은 돈으로도 성공을 달성한 오클랜드. 최악의 프로팀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성공을 거머쥔 탬파베이. 비유를 하자면 오클랜드는 가난한 집안의 고등학생이 열심히 공부해 결국 서울대에 차석으로 입학한거라면, 탬파베이는 가난하고 찌질한 만년 문제아가 어느 날 갑자기 정신차리고 공부하더니 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했다고나 할까. 

이런 성공의 성격 차이 때문에 두 책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면은 차이를 보인다. 머니볼은 과외도 못하고 문제집은 커녕 교과서 살 돈도 충분치 않은 가난한 아이가 얼마나 창의적인 방법(세이버 매트릭스)으로 공부를 했는지를 조명한다면 이 책은 문제아가 '어느 정도' 문제아였는지를 보여주고 정신을 차린 뒤(구단주 교체)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를 보여준다. 

머니볼이 빌리빈이라는 선구자가 오클랜드를 영광의 길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영웅물이라면 이 책은 구단주를 그런 영웅적 주인공으로 그리지는 않았다. 성공을 이끈 것은 분명 새로운 구단주였지만 전체적으로는 팀의 역사를 다룬 전기문과 같은 성격을 보인다. 실제로 책은 탬파베이 구단이 창단되는 과정부터 시작된다. 이는 탬파베이가 1998년에야 생긴 어린 팀이기 때문에 가능한 구성이기도 하다. 초대 구단주 시절 암울했던 과거와 다음 구단주 시절의 개혁과 노력을 대비하게 되면서 경영진에 의해 몰락하고 성장하는 팀의 모습을 자연스레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조금 아쉬운 면을 들자면, 야구 자체에 대한 내용, 특히 나처럼 세이버 매트릭스에 대한, 내용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아쉬울만한 책이다. 책의 구성도 빌리빈이라는 괴팍한 등장인물이 주인공은 아니어서(초대 구단주가 그런 성격이긴 하지만 끝까지 등장하는 주인공은 아니므로) 순수한 재미 면에서도 머니볼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느낌이다. 물론 이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 

반면 이 책이 머니볼에 비해 나은 점은 우리나라에 번역되고 영화가 나온 시점에서는 빌리빈이 이끄는 오클랜드의 머니볼이 실패하고 있던 시점[각주:1]이었지만 탬파베이의 성공스토리는 현재진행형[각주:2]이라는 점에서 더 싱싱한 혁신, 성공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또한 야구 자체보다는 경영면에서 머니볼에 비해 더 많은 비중을 가진다. 아마 경영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야구를 좋아한다면 추천. 
경영서를 원한다면 추천. 
야구를 좋아하면서 경영서를 원한다면 강추. 
세이버 매트릭스에 관심있다면 비추.
각종 역사에 관심있다면 추천.  

 
  1. 머니볼이 미국에서 출간된 2003년 이후 2006, 2012시즌을 제외하고 오클랜드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 책이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은 2006년, 영화 개봉은 2011년이었다. [본문으로]
  2. 탬파베이는 2008시즌 월드시리즈 진출 이후 2010, 2011시즌에 다시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2012시즌에는 3게임차로 와일드카드를 놓쳤다. [본문으로]
by 청춘한삼 2012. 10. 20. 21:09
나는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나만의 생각이다). 주변에 내 취향과 비슷한 책을 읽는 사람이 그다지 없는데, 그여자 Gene께서 책 읽는 것을 좋아하시고 거기다 내가 그나마 좋아하는 추리 소설 종류도 좋아하는 편이라 말이 잘 통할 때가 많다. (특히 Lupin) 그래서 서로 읽은 책을 꺼내서 말해 보고 마음이 맞으면 같은 책을 읽고 서로 토론도 해보고..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 블로그도 구상하게 된거고. 

하지만 이전의 포스팅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둘 모두 읽은 책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하지만 댓글을 통한, 혹은 평소 대화를 통해 한 사람만 읽은 책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교환하곤 한다. 자연스럽게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카테고리 인문 > 독서/글쓰기
지은이 피에르 바야르 (여름언덕,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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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블로그에서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혹은 만나지 않은 사람, 보지 않은 영화, 듣지 않은 음악, 가보지 않은 여행지 .. 뭐가 됐든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일상적이다. 여기에서는 책에서 말하는, 독서에 대해서만 말해보도록 하자. 

굳이 직접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책의 내용은 잠깐의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인터넷 서점의 서평이든, 블로거들의 서평이든, 포털사이트 책담당자의 서평이든, 서평들은 쏟아져나온다. 인기가 없는 책이라 그런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출판사의 서평이나 책 표지 뒤에 들어갈 추천사, 목차, 하다못해 책의 제목을 통해서도 그 책이 대강 어떤 이야기를 할지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굳이 찾아보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 통해 전해들을 수도 있고, 운좋게 드라마나 영화화 되었다면 책을 읽지 않고도 그 내용을 (정확히 같게는 아닐지 몰라도) 알 수 있다. 요즘은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기도 하고. 어쨌거나 책을 읽지 않더라도 책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는 정도의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책을 직접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책을 읽은 것(독서)과 읽지 않은 것(비독서)을 확실히 구분해야 할 것이다. 만약 책의 제목만 본다면 그건 독서일까 비독서일까, 만약 책의 목차만 본다면 그건 독서일까 비독서일까, 만약 책을 대강 훑어만 본다면 그건 독서일까 비독서일까, 만약 책을 보지 않고 주변에서 듣기만 했다면, 혹은 영화나 드라마 등 다른 매체를 통해 접해서 내용을 알고 있다면 그건 독서일까 비독서일까. 대다수는 이 중에서 엄밀한 의미의 독서는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책을 모두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 내용이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책을 읽었으니 독서이긴 하지만 책을 읽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없다는 점에서는 비독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책의 내용을 정확히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면 독서를 한것일까. 또한 기억하고 있는 책의 내용이 본질적인 책의 내용이냐도 의문이다. 우리의 기억이나 인상은 선택적이고, 책의 내용은 자기 나름대로 해석되어 기억되기 때문이다. 이렇듯 책을 읽은 것과 읽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큰 의미가 없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이미 비독서의 비율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보편, 일상적이다. 중요한 것은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끼리 책에 대해 말할 수도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읽지 않은 책의 저자와도 이야기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를 위해 제목과 같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해준다. 대강의 내용은 굳이 책을 모두 읽지 않고도 목차만 보고도 어느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란 책의 제목만 보면 책을 읽지 않고도 적당히 둘러대며 말할 수 있는 처세술이나 화법 등을 가르쳐주는 너저분한 책과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가벼운 책은 아니다. 왜 책을 읽어야 하나, 어떻게 읽어야 하나와 같은 고찰을 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이렇게 마무리하면 너무 무거운 것 같고, 한 줄로 이 책을 요약하면..제목이 될테고, 다른 한 문장을 쓴다면, 책 안 읽었다고 쫄지마~가 될 것이다. 책을 읽지 않고도 책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을 굳이 읽으라고 추천하는 것이 이 책을 읽고도 해야할 행동일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몇 줄 적으며 마무리하면, 

책을 꼭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면 추천. 
독서에 대한 압박이나 강박관념, 죄책감 등이 있다면 강추. 
반드시 책이 아니더라도 비평, 리뷰, 논평, 감상문 등을 많이 쓴다면 강추. 
처세술을 원한다면 비추.  

by 청춘한삼 2012. 10. 6. 22:43
시골의사이자 주식 전문가, 청춘들의 멘토, 안철수의 친구 등 다양하게 알려져있는 시골의사 박경철. 사실 나에겐 경제포커스 진행자로서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다. 구수한 사투리로 재무설계 코너에 참여한 보통 사람들과 소통하며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이 전문가다운 식견과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 특이해보였던 것 같기도 하고. 나같은 보통 사람들의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앞에서 달려나가며 따라오라고 손짓하기보다는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는 사람같은 느낌이다.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세트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박경철 (리더스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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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만 들리는 라디오에서도 사람 냄새를 구수하게 풍겼던 저자가 오래전에 썼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제야 접하게 되었다. 사실 1권은 여름 휴가 기간에 읽었으니 오래 묵혀두긴 했다. 세트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두 권 모두 저자의 의술 활동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담고 있다. 

제목만 보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내용들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게 되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지만은 않다. 아무래도 저자의 직업이 의사이다보니 나같은 비의료인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죽음과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대다수이다. 간간히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기는 하지만 어둡고 슬프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훨씬 많다. 개인적으로는 1권을 보다가 이걸 계속 봐야할까..라는 생각을 했었고, 1권을 다 본 뒤에는 2권을 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1권을 다 보고, 2권까지 읽게 된 것은 이야기 하나하나에 담긴 저자의 솔직함과 진실함, 등장인물들의 삶의 궤적들 때문이었다. 내 경우에는 희노애락 중 노와 애를 많이 느껴서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 또한 우리네의 인생이라는 것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여자께서 의료인이라는 점도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수술실에서 내가 평생보는 피보다 많은 양을 하루밤에 볼 것이고, 내가 평생볼 환자보다 더 많은 환자를 이미 보았을텐데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마 평생이 지나도 진짜 어려움의 1%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 것 같다. 그만큼 책에서 느껴지는 비통함과 슬픔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기는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무거움과 더불어 생명이란, 사랑이란, 우정이란, 죽음이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의사라면 이정도 경험들은 다들 있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저자도 누구에게나 있는 정도의 에피소드를 자신이 발견하였다고 말하긴 하지만 주변에 대한 감수성이 없었다면 이런 책을 낼 수 없었을거라 생각한다. 

의사, 혹은 의료종사자를 꿈꾼다면 강추. 
감정적으로 쉽게 영향을 받는 편이라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덧.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로 고 김근태 고문의 선거비용 초과 자진신고를 들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큰 인물이다.  
by 청춘한삼 2012. 10. 3. 19:45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당장 당신이 오늘 점심으로 먹은 식사 한끼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들어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도움은 뒤로 하더라도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주변의 도움을 받아 자라난다.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또한 남들에게 도움을 준다. 우리는 누군가와 서로 도와가며 살아간다. 


개인적이라고 말하든, 이기적이라고 말하든, 남들과 서로 돕는 것에 서툰 사람들이 있다. 서툴기만 한다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의 선의를 무시하거나 오히려 이용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곤 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착하고 협력적인 사람들보다 더 성공하고, 성공을 위해서는 그런 자세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말일까? 



협력의 진화

저자
로버트 액설로드 지음
출판사
시스테마 | 2009-04-02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협력의 진화』의 저자 액설로드는 컴퓨터 토너먼트를 이용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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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수의 딜레마'라는 표현이 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더라도 단어 자체는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하다. '죄수의 딜레마'란 죄수 두 명이 심문 당할 때 서로 상대방이 죄가 있다고 자백하면 둘 모두 징역 5년, 둘 다 끝까지 죄가 없다고 주장하면 둘 모두 징역 1년을 받고, 만일 한명은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고 한명만 상대방이 죄가 있다고 자백하면 자백을 한 죄수는 무죄 방면, 자백을 하지 않은 죄수는 모든 죄를 혼자 떠안고 징역 10년을 살게 되는 상황이다. (징역 햇수는 임의로 정한 값)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자백을 하지 않는 것이지만, 서로 상대방이 어떤 행동하든 자신은 자백을 하는 것이 더 유리하기 때문에 결국 둘 다 서로를 배신하고 자백을 해서 5년 형을 받게 된다는 것이 '죄수의 딜레마'이다. 한마디로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모두에게 최선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렇듯 죄수들이 한번만 선택을 한다면 자신에게 유리한, 자백을 하는 편을 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죄수의 딜레마를 반복하면 어떨까. 마찬가지로 서로를 믿지 못하고 계속 서로를 배신하기만 할까. 그것이 최선일까.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 놓일 프로그램들을 공모해 대회가 열렸다. 대회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은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다. 서로 협력하면 둘 모두 3점을 얻고, 서로 배신하면 서로 1점만을 얻는다. 하나는 협력, 하나는 배신한다면 협력한 쪽은 0점, 배신한 쪽은 5점을 얻는다. 이 간단한 규칙으로 참가한 프로그램들이 모두 한번씩 게임(?)을 하고 최후에 총점을 이용해 순위를 가렸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다수는 배신을 적절히 잘하는, 덜 관대한 참가자(프로그램)가 우승했을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1차 대회를 비롯해 비공식까지 6회에 걸친 대회에서 총 5회 우승, 1회 준우승이라는 놀라운 결과를 낸 참가자는 '팃포탯'(Tit for tat)이었다. 팃포탯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생각할 수 있다. 처음에는 일단 협력을 하고 다음부터는 상대방이 이전에 선택한 것을 그대로 갚아주는 전략이다. 이런 단순한 전략이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지배했다. 


팃포탯의 성공요인은 결코 먼저 배신하지 않는 신사적 특성과 상대의 배신 후에도 단 한차례의 응징(보복적) 후 용서(관대함)하고 협력하는 경향이다. 한번 배신하면 당장은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상대의 배신도 이끌어내면서 결국 점수의 총합은 낮아지게 된다. 상대가 한번 배신을 했다고 해서 용서하지 않고 계속해서 응징(배신)을 한다면 역시 상대도 다시 협력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신사적인 특성 덕에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리지 않고 보복적이라 상대가 배신을 할 때마다 지속하지 못하게 억제하고, 관대함은 상호협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규칙이 간단하기 때문에 상대로 하여금 다음에 선택할 전략을 쉽게 이해하게 해서 장기적으로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팃포탯은 어떤 대회에서도 강건하게 성공을 거두었다.


신사적인 규칙인 팃포탯만 비정한 규칙들 사이에서 홀로 우뚝선 것은 아니었다. 의외로 상위권의 대다수는 비신사적이고 비정한 규칙들이 아니라 신사적이고 관대한 규칙들이었다. 쓸데없는 문제에 휘말리거나 지속적으로 손해를 보지 않고 차곡차곡 점수를 쌓아나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협력의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축구나 체스처럼 오로지 한쪽만 이기고 한쪽은 지는 식의 경쟹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상호협력이 상호배반보다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될 때가 더 많다. 좋은 성과를 올리는 비결은 상대방을 누르고 이기는게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협력을 유도하는 것이다.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협력을 유도하여 증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통해 얻은 결론은 크게 세가지다. 

하나는 현재에 비해 미래를 더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당장 배신을 통해 이득을 볼 수는 있겠지만 더 길게 보면 협력하는 것이 더 이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소개팅을 할 때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 하는 것과 또 보고 싶은 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과 같다. 

다음은 서로의 선택에 의한 네가지 결과에 대한 보수의 크기를 바꾸는 것이다. 점수 체계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면 상호작용의 내용이 변질되어 더이상 죄수의 딜레마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만일 죄수들이 상대를 고발하고 형량을 살고 나왔을 때 조직에 의해 보복을 당하게 된다면, 아마 둘 모두 상대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상호협력의 장기적인 동기를 배반의 단기적 동기보다 높게만 하면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피하고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협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가치관과 그에 대한 사실, 요령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서로에 대한 배려를 가르치고, 협력을 함으로써 서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과거에 상호작용했던 상대를 알아보고, 그 상호작용이 어땠는지 관련된 특성을 기억하는 인식 능력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협력이 아닌,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협력할지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면 배반의 단기적 동기보다 상호협력의 장기적 동기가 높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협력을 할 수 있는 사회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루시퍼 이펙트에서 보듯 인간은 주위 환경, 역할에 크게 영향을 받는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의 구조 자체를 협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해 두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협력을 택할 수 있는 유인이 될 수 있다. 

협력을 이해하는 것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반대로 협력을 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협력이 항상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시험에서의 컨닝, 짜고 치는 고스톱과 같은 것부터 학연, 지연과 같은 세력권 형성, 독과점 시장에서의 담합과 같이 사회적인 큰 문제점들이 있다. 협력으로부터 빚어지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협력을 증진시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협력을 증진시키는 방법으로부터 알 수 있다. 이를 테면 서로 협력하지 못하도록 상호작용의 보수의 크기를 바꿔서, 독과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현재의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실질적인 피해를 받을 정도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협력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협력을 우선시하는 팃포탯은 배반 중심적인 규칙에 비해 훨씬 성공적이다. 중요한 것은 팃포탯은 절대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항상 서로 협력한다면 서로 동점일 것이고, 배신을 당한다면 상대보다 조금 더 낮은 점수만을 얻게 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협력적인 팃포탯은 승리자이다. 너무 단기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점을 기억하자. 

리처드 도킨슨은 추천사에서 세계의 지도자들을 모두 가두어놓고 이 책을 준다음 다 읽을 때까지는 풀어주지 말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지도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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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10. 2. 19:30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하우스푸어라는 단어가 많이 들리는 편이다. 과도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사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가난해지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그나마 하우스푸어는 집이라도 있잖아..라고 생각하는 편이고, 요즘은 언론을 통해서 자주 접하지는 않지만 워킹푸어의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한창 유행처럼 이 단어가 나올 때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로 거의 대표되고 있는듯 하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할거라고 생각하지만 지속적인 고성장을 경험했던 우리나라에서는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전에는 단칸방에서 살지언정 열심히 일을 해서 내 집을 가진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그 꿈을 이루는 세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많지 않고, 그나마 있는 비정규직 일자리는 그야말로 인생을 비정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서는 중산층을 향한 희망이 깨지고 비정규직의 문이 활짝 열린 외환위기 시절 미국에서 워킹푸어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실험은 바버라 에런라이크라는 여성 작가가 최저임금을 받는 직종에 직접 뛰어들어 과연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한지를 체험해보는 것으로 실행되었다. 

노동의 배신 /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푸어 생존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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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의 목표는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최저임금으로 생활이 가능한가이다. 노동을 통해 번 돈을 이용해 집세를 내고 필요한만큼의 식료품을 사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세개의 도시에서 각각 한달씩 실험을 진행했다.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 도우미, 요양원 보조, 월마트 직원으로 일했다. 결과는 당연히 좋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저임금 일자리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일자리를 얻더라도 하나의 일만 해서는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었다. 노동환경과 생활환경이 열악한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의 우리나라는 과연 어떤가. 비정규직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하더라도 빚만 쌓여가는 것은 늘어가는 가계부채와 신용불량 통계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가. 답은 아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면 노동을 통해 번 돈으로 최소한 자신과 가족의 생계는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최소한의 해법은 현재 시급 5000원도 안되는 최저임금을 최저생계비 수준으로 인상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비정규직 채용을 억제하고 비정규직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 일을 하고 있지만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가지고 있거나 건강 등의 문제로 노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복지를 통해 재기의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최저생계비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 참여연대가 최저생계비만으로 생활이 가능한지에 대한 체험(실험)을 시행한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의 체험내용보다는 '황제와 같은 식사'와 같은 논란이 일기도 했었다. 당시 1일 식료품비가 6300원, 1인 가구 한달 최저생계비가 50만 4300원 정도였는데 현재는 55만 3300원 정도, 내년에는 57만2천원 정도이다. 2년 동안 10% 정도 올랐고 내년에도 2만원 정도가 오르기는 하지만 거주비를 포함한 모든 생활이 저 비용만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선거의 해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최저임금이나 각종 '푸어'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는 것 같다. 이런 좋은 시기를 놓치지 말고 일하는 사람과 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본인들의 노력으로 점차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책을 쓴 10년이 지난 후 첨부한 후기의 이 말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빈곤을 줄이고 싶다면,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계속 그렇게 살게 만드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임금을 너무 적게 주지 말자.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다루지 말자. 그들이 원한다면 더 나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환경을 얻기 위해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주자. ...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 (p.311)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  
혹시라도 정치를 하고 있다거나 할 예정이라면 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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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아랍이 어떤 나라들을 말하는지 몰랐다. 정확히는 아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지. 아랍과 중동, 이슬람 국가를 거의 동일시해왔다. 뭔가 차이가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정확히 뭐가 다른지 알지 못했다. 나에게 중동[각주:1]이나 아랍이란 단어는 석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라크, 테러, 축구 경기 정도에서나 접하는 단어였다. 관심을 가질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실제로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 정도라고 할까. 이런 아랍에서 5년 동안 기자, 특파원으로 지냈던 한 유럽인이 중동과 저널리즘에 대한 책을 냈다. 

웰컴 투 뉴스 비즈니스 / 저널리즘 쇼비즈니스를 뒤집는 아랍 특파원 표류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언론/신문/방송
지은이 요리스 루옌데이크 (어크로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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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몇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하나는 제목과 같은 비즈니스로서의 뉴스 비판, 다른 하나는 중동의 독재국가들에 대한 비판이다. 

뉴스에서 해외 소식을 전할 때는 해외 특파원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뉴스를 브리핑하곤 한다. 미국이라면 백악관 앞, 월스트리트 거리 뭐 이런 곳?? 해외특파원들이 언론의 취재가 용이한 국가라면 특파원을 직접 두는 것이 더 빠르고 자세한 현지 소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라면 해외 특파원의 의미가 전혀 없어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힘들게 해외까지 가서 현지 소식을 본국의 회사나 CNN 등을 통해서 듣고 이를 토대로 기사를 써서 다시 본국으로 보내는..바보같은 짓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뉴스 시청자, 청취자를 위한 쇼를 진행하는 것이다. 

또한 중동의 독재국가들[각주:2]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언론의 자유와 취재의 어려움의 이야기 또한 3자의 입장에서는 재미있었다. 처음으로 알게 된 내용이기도 했고. 독재국가에서는 말 그대로 보도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같이 각종 여론조사나 통계 수치, 인터넷을 통한 여론 동향 등을 생각도 할 수 없고, 그나마 가능한 것은 익명의 관계자들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북한의 언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우리나라의 현실은 과연 얼마나 더 뛰어난건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에서 가장 강조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뉴스를 이루는 현실은 복잡하고, 이 때문에 뉴스의 이면을 봐야한다는 것이다. 쌩쌩 잘 돌아가는 컴퓨터의 본체 뒤에는 많은 선과 먼지가 뒤엉켜있듯이 어떤 뉴스 뒤에 감춰진 진실은 지저분하고 엉망일 수 있다. 흔히 이스라엘에 의한 피해자로 인식되는 팔레스타인의 자치정부는 외부의 이스라엘과 함께 일반 팔레스타인인들을 구속하고 압박하는 독재정권이다. (물론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잘하고 있다는건 아니다) 서방세계가 이스라엘의 편을 드는 것은 유대인이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을 통해 이해할 것이 아니라 언론이 뉴스를 만들고 유통시키는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편의를 제공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미국이나 이스라엘과 같은 국가에서 수행하는 전쟁에서 공습이나 미사일 공격을 하면 뉴스에서는 출격하는 폭격기나 발사되는 미사일만을 보여주지만 우리가 지켜보고 알아야 할 현실은 폭격, 공격당하는 도시, 마을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뛰어다거나 발작을 일으키는 아이들, 가족들일 것이다. 이렇게 복잡, 다양한 현실과 뉴스의 이면을 생각해서 비판적으로 보지 않으면 제대로 된, 객관적인 관점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미도 있고, 국제 사회, 언론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수작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의 현실과도 비교해 볼 수 있고. 그런데 반응은 그다지 좋지 못했던 듯하다. 책을 빌리기 조금 전에 시사인에서 '아까운 걸작' 코너에 소개된걸 보면 말이다. 

언론과 언론인의 역할에 관심이 있거나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면 강추. 
방송되는 뉴스 이면에 어떤 것이 생략되어 있고 방송되지 못하는지 알고 싶다면 추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양측의 문제가 뭔지 알고 싶다면 추천. 

  1. 서구인의 시각에 의한 중동이란 단어보다는 서아시아라는 단어를 더 선호하긴 하지만 사실 중동은 서아시아에 북아프리카 지역까지 일부 포함하는 개념이라 서아시아와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서아시아보다는 중동이 더 맞는 개념이다. [본문으로]
  2. 우리나라에는 2011년에 책이 소개되었지만 원작이 나온 것은 2006년으로 쟈스민 혁명에 의해 독재자들이 쫓겨나기 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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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8. 28. 20:13

어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유형은 성취형, 우호형, 표출형, 분석형의 네 가지로 나뉜다. 이 중 분석형은 데이터를 중시하는 특성을 가지므로 이 유형의 사람을 설득할 때는 구체적인 수치 등을 거론하여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전략이 주효하다. 


위 문단의 내용은 내가 지금 막 꾸며낸 것은 아니고 '설득의 비밀'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왔던 내용이다. 하지만 비단 분석형 인간이 아니라 하더라도 숫자에 약한 사람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신문 기사를 읽거나 뉴스를 보다가 숫자, 통계, 그래프, 도표와 같은 것들이 나오면 그 내용을 더 쉽게 받아들이고 설득되거나, 그렇지는 않더라도 공신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숫자들에 쉽게 현혹되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숫자제공자가 의도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
카테고리 과학 > 수학
지은이 대럴 허프 (더불어책, 2004년)
상세보기

(이 책에서는 주로 통계로 표현하는) 숫자는 가치중립적인데 왜 굳이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걸까??라는 의문이 생길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은 숫자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이 가치중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사처럼 대놓고 그래프를 이상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모든 언론인들은 중립적이지 않기 때문에(중립적이라는 단어 자체도 애매하긴 하다) 자신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독자를 유도하기 위해 숫자나 통계가 가진 (우리가 인식하지는 못하는) 권위를 이용하곤 한다. 

책에서는 당연히 미국의 언론, 정치인, 연구소 등에서 나온 자료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아주 이해하기 어렵거나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도의 난이도를 보이지 않고, 숫자나 통계와 친하지 않은 사람도 어렵지 않게 지은이가 말하는 바를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신문, 방송 등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통계는 아무래도 여론조사일 것이다. 정치, 사회, 경제등 여러 분야의 여론조사가 정부, 기업, 연구기관 등으로부터 조사되어 쏟아져나오곤 한다. 그나마 여론조사는 최근 몇 년 동안 정치적인 국면에서 정확도(혹은 신뢰도)에서 많은 의심을 받아왔기 때문에 응답에 응한 표본의 수, 표본집단의 편향성, 질문의 중립성 등과 같은 문제의 소지가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다. 간단히 오래된 예를 하나 들면, 평일 오후 시간에 집전화만을 대상으로 전화 조사를 한다면 그 시간 대에 집에 있는 비율이 높은 가정 주부의 의견을 과다하게 중요시하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휴대전화도 조사 대상에 포함을 시켜야 하고 연령별, 성별, 지역별 등 여러가지 필터를 거쳐야 좀 더 정확한 조사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진짜 평균적인 의견을 얻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 외에 가장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통계는 평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을 구하는 방식이 한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비롯한 조작의 가능성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평균의 경우에도 여론조사와 마찬가지로 표본집단에 대한 문제는 동일하게 가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여대생 3명 중 한명이 교수와 결혼했다고 해서 '여대생 중 33.3%가 교수와 결혼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평균을 구하는 방식은 대부분의 사람이 고등학교 과정 정도에서 배웠을 산술평균, 기하평균을 포함해 여러가지가 있다. 난 안배웠는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저 잊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한번 검색해보시라. 
일반적으로 '평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떠올리는 방식은 전체 표본집단에서 평균을 구할 대상의 값을 모두 더하고 대상의 총수로 나누어서 구하는 산술평균이다. 산술평균 계산하는 방식을 예로 설명하면 술집에 5명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의 연봉이 1500만원, 2000만원, 2500만원, 2500만원, 3000만원이면 이들 연봉의 산술평균값은 (1500만+2000만+2500만+2500만+3000만)/5=11500만/5=2300만원이 된다. 그런데 이 때 술집 안으로 연봉이 25억쯤 되는 박지성[각주:1]이 잠시 들렀다고 하자. 그러면 술집 안의 6명의 평균연봉은 (1500만+2000만+2500만+2500만+3000만+25억)/6~4억3천만원이 된다. 과연 이 평균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술집에 원래 있던 사람 5명이 너무 적다고? 그럼 평균 연봉이 2300만원인 사람 100명이 있었다고 해보자. 그렇다고 해도 박지성이 포함되면 평균연봉은 4700만원 정도가 나온다. 표본집단을 대표하는 값인 평균값이 어떤 것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럴 때는 표본들의 중간에 있는 값을 선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처음 5명과 박지성을 표본으로 하면 (1500만, 2000만, 2500만, 2500만, 3000만, 25억) 중 중간에 위치한 2500만원이 중간값으로 구한 평균연봉이 되는 것이다. 

비단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평균을 구하는 방식에 따라 그 값은 일반적으로 달라진다. 그리고 평균 구하는 방식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산술평균, 기하평균, 조화평균, 중간값, 최빈값, 가중평균 등등 수많은 방식이 있다. 경우에 따라 적절한 방식을 이용하고, 결과를 제시할 때는 어떤 방식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제대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조사자가 원하는 결과를 가장 잘 드러내는 평균을 이용해 조작 아닌 조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평균이 아니더라도 조사자가 어떤 통계를 제시할 때는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가장 잘 드러내는 통계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챕터에서 '통계의 속임수를 피하는 다섯 가지 열쇠'를 제시한다. 책에는 구체적으로 나와있지만 리스트만 옮기면 다음과 같다. 

1. 누가 발표했는가? 출처를 캐봐야 한다. 
2. 어떤 방법으로 알게 되었는지 조사 방법에 주의해야 한다. 
3. 빠진 데이터는 없는지 숨겨진 자료를 찾아보아야 한다. 
4. 내용이 뒤바뀐 것은 아닐지 쟁점 바꿔치기에 주의해야 한다. 
5.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살펴 봐야 한다. 석연치 않은 부분은 조사해라. 


모두들 너무 쉽게 속지 않기 위해 어떤 팟캐스트 방송 엔딩처럼 외쳐보자. 
정치는 쫄지마~ 통계는 속지마~!! 

통계를 다루는 직업을 가진 사람, 그외에도 기자나 언론인이 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강추. 
기사나 뉴스같은 곳에서 통계만 나오면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추천. 
내가 모르는 뭔가가 나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 추천. 
나도 통계로 사기쳐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읽지마시길. 



덧.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으로 생각되는 책.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노르망 바야르종 (갈라파고스, 2010년)
상세보기
나도 아직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좋을지 확신할 순 없음. 

덧2. 나도 이제야 알았는데 처음에 언급했던 설득의 비밀 다큐멘터리를 토대로 책이 나와있었다.
설득의 비밀 / 타인을 움직이는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카테고리 자기계발 > 화술/협상
지은이 EBS제작팀 (쿠폰북, 2009년)
상세보기
 관심있으면 읽어보거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시라. 
  1. 박지성 연봉이 25억원인지는 사실 모름. 다만 30~40억원까지는 안된다는 말을 하니까 대충 그정도는 되나보다하고 잡은 것임. 출처는 (http://sports.media.daum.net/worldsoccer/news/breaking/view.html?newsid=20120725163331699)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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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8. 12. 15:53
이전에 읽었던 '돈 좀 굴려봅시다'의 저자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님이 2009년에 쓰신 책이다. 이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발견하고 살까를 한참 고민했지만 당시에는 읽고 있던 책이 있어서 미뤄뒀었다. 그러다 저자가 블로그를 통해 '돈 좀 굴려봅시다'의 출간 이벤트로 리뷰를 쓰면 이 책을 포함한 세 권의 책 중 하나를 주신다길래 지난번 리뷰를 통해 이 책을 받아 보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친필 사인까지 해서 책을 보내주신 (그것도 선불 등기로!!)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님에게 감사한다고 전해드리고 싶다. 
원화의 미래 - 환율은 경제의 체온계이다
카테고리 경제/경영 > 재테크/금융
지은이 홍춘욱 (에이지21,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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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책은 원화(₩), 그리고 원화와 다른 화폐의 관계, 즉 환율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부제에 나와있듯이 우리나라에서 환율은 경제 상황을 나타내는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전에 주식투자를 하는 형과 KOSPI를 모델링하면 어떤 변수가 필요할까에 대한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난 그 땐 주식이나 경제에 막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때였기에 금리나 원유 가격 등 여러가지를 떠올렸었지만 실제 투자자인 형은 환율 하나면 된다고 했던 기억이 있다. 이렇게 어느정도 실제 투자 경험이 있다면, 혹은 경제나 주식에 관심을 가진다면 우리나라 경제(와 주가)가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왜 우리가 환율에 대해 알아야 하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투자 상식과 현실 간의 괴리, 앞으로 10년 정도 후의 미래의 원화 및 다른 주요 화폐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저자의 평소 이미지나 다른 책(이라고 하기엔 '돈 좀 굴려봅시다'밖에 못봤음)과 마찬가지로 차근차근, 여러 예시들을 들며 쉽게 설명하고 있다. 환율이나 경제에 대해 기초 지식이 없더라도 관심만 있다면 충분히 이 책 하나만으로도 따라갈 수 있을 정도라고 생각한다. 

환율과 경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에 대한 이야기도 전혀 나오지 않을 수는 없다.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내용이 기대, 혹은 당부의 형태로 언급되기도 한다.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에 대한 내용이 있는 3장에서 무리한 성장률 목표는 그 자체로 위험 요인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해당 부분을 조금 옮기면 아래와 같다. 

정부는 7%라는 성장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확장적인 재정정책 및 달러/원 환율의 상승을 적극적으로 유도했다. 가계의 저축률이 1970년대나 1980년대처럼 높고, 우리나라의 잠재성장률 수준이 7%대였다면 이 정책은 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계의 저축률이 19990년대를 고비로 빠르게 하락하고,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4%선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고성장정책을 추진한 것은 경상수지의 악화를 불렀을 뿐이다. 또한 정부으 환율 인상 노력은 글로벌 경기의 악화와 맞물려, 1997년을 연상시키는 환율 급등사태로 이어졌음은 이미 2장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P.124)


원화 외에도 미래를 예측한 것에는 국가신용등급에 대한 내용도 있다. 무디스나 S&P와 같은 신용평가사들에서 국가신용등급을 결정할 때는 정치적 위험, 소득 및 경제구조, 경제성장 전망, 재정 유연성, 공공부채 부담, 물가 안정성, 국제수지 구조 및 유연성, 대외부채 부담, 통화 안정성과 같은 요인을 고려한다. 저자는 2009년 당시에는 몇가지 불리한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조금 오를 것으로 예상했었다. 지나고 나서 결과적으로는 무디스의 신용등급이 A2에서 A1으로 한단계 상승하고, S&P와 피치는 A와 A+를 각각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외부채 부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표가 부정적으로 보여 추가적인 상승은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출간된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작년부터 크게 문제가 불거진 국가 부채에 대한 내용이 없기는 하지만 재정정책을 펴던 나라들이 출구전략을 잘못 운영할 것을 예상해서 책에 굳이 내용을 추가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족일 수 있지만 책에 대해 다른 이야기. 
시기상으로는 이 책이 '돈 좀 굴려봅시다'에 비해 먼저 출간되었지만 나는 이 책을 나중에 봤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낀 것 같기는 하지만 이 책이 '돈 좀 굴려봅시다'의 프로토타입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환율의 중요성이야 당연하지만 다른 자산들과 환율에 대한 내용을 담은 4장도 거의 겹치는 내용이다. 이 책은 환율에만 집중하고 있지만 '돈 좀 굴려봅시다'는 투자에 대해 좀 더 폭넓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차이일 것이다. 

또 하나 사족을 달자면 왜 이후에 나온 책의 제목이 '돈 좀 굴려봅시다'와 같이 말랑말랑해졌는지 알 것 같다. 원화의 미래라는 제목이 내용에 잘 맞기는 하지만 쉽게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제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YES24에서 확인한 판매량에 있어서도 '돈 좀 굴려봅시다'가 훨씬 많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어느정도는 확인해 볼 수 있다. 

환율에 대해, 그리고 환율과 재테크 수단들과의 관계를 쉽게 설명한 책을 원한다면 강추. 
경제나 재테크에 전혀 관심없다면 비추. 
'돈 좀 굴려봅시다'를 이미 읽었다면 굳이 안읽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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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8. 5. 18:44
저자는 자칭 소셜디자이너이고 현재는 서울시장으로 재직 중이다. 박원순 시장이 새로운 시대에 필요할 (무려) 천개의 직업을 소개하고 있다. 모든 직업이 박원순 시장의 머리속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은 아니고 그간의 시민 활동을 통해 알게된 해외의 직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경제 구조가 비슷한 일본에서 우리나라에 앞서 등장하고 성업중인 직업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천 개의 직업 박원순의 대한민국 희망 프로젝트
카테고리 자기계발 > 성공/처세
지은이 박원순 (문학동네, 2011년)
상세보기


'아무것도 없는 그대를 위한 직업', '환경을 사랑하는 푸른 청춘이라면'과 같이 여러 분류에 따라 그에 맞는 직업들을 10개 정도씩 소개하고 있다. 1000개 모두를 자세히 소개, 설명해주지는 못하고 150개까지는 한페이지 정도 분량을 할애하고 나머지 850개는 한 두 문장 정도로 간단히 소개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자세히 설명한 직업이 더 중요하거나 
시급하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많은 분류가 있고 많은 직업이 소개되었지만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인간과 환경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15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신에서 인간으로 관심이 옮겨진 것과 마찬가지로 현재는 자본에서 다시 한 번 인간으로 관심이 옮겨지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쾌적하게 살기 위해 주위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때문에 인간과 환경에 관련된 직업이 점점 중요시될 수 밖에 없을 것인데 이 책에서 소개된 직업들 중 상당수가 미래 사회에 필요한, 혹은 각광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개된 직업들 중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열정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직업들도 없지는 않지만 대다수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책을 보는 동안 이건 내가 할 수 있을까..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보았지만 현재의 내 능력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어렵다고 생각된다. 물론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떤 직업을 시작한다고 해도 경쟁력이 없어 쉽게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원하는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가지기 위해 이른 시기에 이런 책을 접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물론 이미 어떤 분야에 대해 충분한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면 어떤 나이건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관계나 능력을 갖춘 시니어에게 유리한 점도 많다고할까. 하지만 전문성이나 다른 능력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박원순 시장이나 희망제작소를 통해 어느정도 도움을 받을 수는 있을 것 같다. 

책이 출판된지는 1년이 조금 안된 것 같은데 이 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청춘들이 이력서를 쓰는 대신 창업을 했는지 궁금하다. 현재보다 미래에 더 통할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일에 많은 사람이 나서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꿔주면 좋겠다. 나도 관심이 가고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각광받을 것으로 보이는 직업들이 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관심을 가질만한 일들이 있는 것 같다. 주변에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새로운 미래,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해보자. 
 

현재는 눈에 띄지는 않지만 새로운 직업에 도전하고 싶다면 강추. 
창업은 하고 싶지만 마땅한 아이템이 없거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추천. 
은퇴나 사직 후 제 2의 출발을 위한 직업을 찾고 있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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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8. 3. 11:30
책을 읽으면서 '나도 책을 한 권 쓰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도 그런 점에선 예외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 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작가가 되기엔 상상력과 감성이 너무나 부족하고, 인문서를 내기엔 사유가 깊지 않으며, 기술서나 실용서를 내기엔 지식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너무나도 크다. 물론 필력 또한 좋지 않기 때문에 뭘해도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란 심정으로 언젠가 번역에라도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전문번역가는 아닌 아마추어로.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 Try! Translator!
카테고리 외국어 > 번역/통역
지은이 김우열 (위즈덤하우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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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당시 난 번역이 창작보다는 쉬울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영어공부 하는 셈치고 신문기사나 블로그 포스트들을 하나하나 번역을 해보면서 번역이 절대 창작보다 쉽지 않고, 오히려 더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혼자 영문으로 된 텍스트를 읽을 때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만 정리하며 읽어나가면 되지만 제대로 번역을 하려면 남들도 제대로 이해하고 읽기 쉽도록 해야하는데 그 작업이 절대 쉽지 않았다. 영어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한국어 실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지, 문장 구조를 어떻게 해야할지..직역을 하다보면 너무 어색한 번역체들이 난무하고, 반대로 하다보면 원문과 달라지는 것 같아 찝찝하고..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번역에 대한 이런저런 어려운 것들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설명해주거나, 혹은 번역가가 쓴 에세이가 아닐까 생각을 했었다. 전자이기를 좀 더 원하면서 책을 보게 되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실용적인 책이었다. 특히 번역일의 진행방식, 번역가의 생활 뿐만 아니라 급여(?)까지 번역가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알기를 간절히 원할만한 정보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나야 프로번역가가 될 생각이 없으니 크게 관심가지지 않았지만, 특히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소상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번역가에 관심이 있다면 꼭 체크해야 할 것이다. 

지은이는 몇년전 베스트셀러였던 시크릿의 역자였다고 한다. 난 보지않은 책이라 잘 모르겠지만 큰 인기를 끌었던가보다. 베스트셀러까지 됐지만 그 책으로 돈은 많이 벌지 못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경력에는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스쿨(?)같은 것을 운영하면서 후진양성에 힘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번역문 ≠ 원문(직역문)'이라는 것을 설명한 부분이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진정으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란 번역가가 원문을 읽고 그 안에서 독자에게 전달해줘야 할 요소와 그렇지 않은 요소를 의식적으로 가려, 전달해줄 요소를 우리말 표현에 맞게 새로이 재구성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고 직역에 대한 고민을 완전히 덜 수 있었다. 원문과 똑같이, 그대로 번역하는 것이 좋은 번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줄어든 고민보다 더 크게 재구성의 부담이 다가왔다. 이점이 번역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에 비해 쉽지 않게 만드는 부분이다.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만 하면 되지만 번역은 원작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번역서를 읽을 독자에게 전달할 것만 추려 새롭게 구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창조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번역가는 이미 있는 것을 다른 언어로 새로 창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최소조건으로는 아마도 내가 보기에도 읽고 싶은 문장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원문과 번역문의 언어 능력 뿐만 아니라 해당 내용에 대한 지식, 논리적인 사고력, 양쪽 국가에 대한 문화 차이의 이해과 같은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번역이라는 것이 절대 쉽게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점들 때문에 번역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긴 했지만 좀 더 준비해서 언젠가는 제대로 된 번역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다. 평소에 조금씩 연습을 하다보면 (말그대로) 언젠가는 제대로 번역을 할만한 능력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로도 열심히 여러가지 공부를!!

마지막으론 책에 실려있던 조셉 윌리엄스의 말을 인용. 
번역의 최후 심판자는 독자다. 결국 독자는 늘 옳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강추. 
일때문이건 취미때문이건 번역을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 
외국어라면 치를 떠는 사람에겐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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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2. 7. 28. 20:39
내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 물론 이전 시대의 유명한 경제학자들 중 노벨상을 받았지만 내가 수상 사실을 모르는 학자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는 현 시대(2008년)에 노벨상을 받았고, 노벨상을 받은 학자임에도 불구하고 학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활동에도 여전히 활발히 나서고 있다. 메시나 호날두가 경기장 안에서만 공을 차는게 아니라 조기 축구회에도 나가고 동네 축구팀에서도 뛰는 느낌이랄까(좀 다르긴 하지만)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라는 긴 제목의 책은 크루그먼이 노벨상을 받기 한참 전, 1990년대 중반(1995년~1997년) 발표했던 글들을 모은 책이다. 책 속의 글들이 적힌 것은 15년 정도, 우리나라에 나온지는 10년이 된 책인데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님의 추천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총 세권의 추천 책 중 굳이 이 책만 읽어본 이유는 저자가 유명해서..라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에 이 책밖에 없어서..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카테고리 경제/경영 > 경제일반
지은이 폴 크루그먼 (부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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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적었듯이 책의 내용이 1990년대 중반 정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를 파악하거나 기억해내는데 부가적인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으니 사실 거의 대부분을 파악해야 했고(내가 밥 돌이 누군지 어찌알았겠나), 나중에 어렴풋이 들었던 사건들(예를 들면 소로스의 영국 경제 거덜내기같은)도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봐야 했다. 

책에서 크루그먼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잘못된(그의 표현에 따르면 어설픈) 이론을 설파하는 사람들을 격하게 비판한다. 잘 모르면 같은 좌파(미국에선)로 묶일 수도 있을 로버트 라이시도 기업의 다운사이징에 대한 견해에서 통계와 분석보다는 뒷이야기와 구호에 의존한다는 점을 들어 비판한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시절을 생각하면 좀 갸우뚱하게 된다) 하지만 우파인 공급중시론자들에 대해서는 조롱에 가까운 비판을 선사한다. 소득세와 법인세의 감세를 통해 기업의 투자가 늘어나고 노동자들의 실질소득이 증가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조세수입은 오히려 증가하는 선순환이 없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아직은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여전히 상당수의 사람들은 공급중시론(감세론)을 지지하고 있다만. 

좌우의 어설픈 이론가들을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세계화와 성장에 대한 그의 생각도 책에 실려있다. 간혹 호모 이코노미쿠스는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결국 그의 설명을 듣다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건 어쩔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가난한 3세계의 사람들이 나쁜 환경에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며 착취당하고 있긴 하지만 아예 그런 일자리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그의 견해를 들 수 있다. 처음 이 의견을 보았을 때는 예전에 경제학원론에서 봤던 최저임금제 논쟁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일을 아예 못하는 것보다는 수당과 노동환경이 충분치 않더라도 하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인데 정말일까.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할 정도의 보상만 받고 노동을 하도록 지켜보아야 하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크루그먼의 생각은 '그렇다'이다. (물론 최저임금제에 대한 내용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값싼 노동력만이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진 경쟁력이기 때문에 이 경쟁력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대안이 없는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전에 개인적으로 그런 상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과연 그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아니오'이기는 했다. 하지만 예전(크루그먼이 이 책을 쓰던 시기)과 달리 사람들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무역이라는 이름으로 값싼 노동력만을 가진 3세계 노동자들에게 조금 더 많은 보상을 주려는 노력들이 행해지고 있고, 팍스콘과 같은 곳의 근무환경에 대한 개선을 위한 움직임도 보여진다. 스타벅스나 애플 같은 글로벌 대기업에서는 아직 소극적이지만 점점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더 많은 3세계 노동자들이 조금 더 보상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크루그먼은 여전히 아래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을 것 같고 그게 진실에 더 가까울 수 있어 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제3세계의 노동자들에 대해 더 높은 임금과 더 나은 근로 조건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들 나라 인구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들, 일용 노동자들, 폐품 수집자들 등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일본의 경제나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다룬 글도 있고, 좀 더 가벼운 글들도 등장한다. 어떤 에세이에서나 크루그먼의 견해가 잘 드러나고 있는데 크루그먼답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내용만 있고 본인의 견해는 빠져있는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와는 반대 느낌이다. 어떤게 더 좋다, 나쁘다는건 아니지만 경제학에서는 자신의 주장 및 입장이 뚜렷한 글이 좋지 않나 생각한다.

크루그먼이 90년대 중반 현실 경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궁금하다면 추천. 
경제학자는 어떤 논리를 따라 자신의 입장을 결정, 정리하는가 궁금하다면 추천. 
기업의 다운사이징과 공급중시론(감세론)에 대한 크루그먼의 견해가 궁금하다면 추천. 
경제학에 대한 지식 및 관심이 전혀 없다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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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어준이란 인물을 알게 된 것은 당연히 딴지일보를 통해서다. 중학교 시절 자주가던 책 대여점에 있던 딴지일보 단행본을 통해 딴지일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도, PC통신도 이용하지 않던 시기였기에 난 그때까진 딴지일보가 책으로 계속 나오는지 알았더랬다. 이 후 고등학생 때는 한번씩 들어가보다가 학부 2학년 때 탄핵사건 이후 한동안 자주 방문했었다. 요즘은 다시 안가고 있기는 하지만 대신 팟캐스트를 청취하며 김어준을 만나고 있다.  

건투를 빈다 김어준의 정면돌파 인생매뉴얼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어준 (푸른숲,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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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면 '딴지일보', '나는 꼼수다'도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제목이다. 이 사람 참 작명센스 있다. 

작년에 MBC에서 했던 색다른 상담소의 팟캐스트를 최근 접해서 시간날 때 하나씩 들어보고 있는데 이 책의 후속편, 혹은 재판(?)처럼 느껴진다. 사실 난 팟캐스트를 접한게 먼저라 책을 읽으면서 색다른 상담소의 활자판같이 느끼긴 했다. 상담의 내용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것들이 있고 해서 그렇기도 하고..그만큼 많은 청춘들이 자신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알고보면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고민들에 대해 그렇게 아프니까 청춘이다, 희망을 가져라, 용기를 잃지 마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와 같은 교과서적인 위로와 조언 대신 왜 그러고 사냐, 너 자신을 똑바로 쳐다봐라, 오바하지 마라, 걔가 나쁜 놈이다..와 같은 조언들이 난무한다. '나'에 대한 고민에 대한 상담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 강조되는 것은, 나 자신을 알기 위해 여행을 가고, 나 자신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나의 욕망과 타인의 욕망을 구분해서 진정한 나의 욕망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들이다. 역시 총수답게 빙빙 둘러가거나 은유적으로, 혹은 말랑말랑하게 말하지 않는다. 직설적이다. 책을 읽다보면 총수 말투와 웃음소리가 눈으로 들리는 듯하다.  

남의 인생이 아닌, 온전한 너 자신의 삶을 살아라..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받으며 나는 과연 잘하고 있나..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과연 나는 남이 아닌 내 인생을 살고 있는걸까. 갈등과 고민을 잘 처리해 나가고 있는걸까. 살면서 생기는 수많은 고민들에 대해 정답은 아무도 모르지만 답을 결정하고 답안지에 적는 것은 결국 나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라는 여행 동안 나 자신을 좀 더 잘 파악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하겠다. 나 자신의 경계선을 확실히 알 때까지. 

이 글을 읽는 모두, 건투를 빈다. 

뭔가 고민이 있다면, 특히 책정보의 목차에 나와있는 고민이 있다면 추천. 
목차에 나온 고민이 아니더라도 뭔가가 당신을 힘들게 한다면 추천. 
이미 나에 대한 객관화가 끝났다면 굳이 안읽어도..
하지만 김어준의 팬이라면 필독. (팬이라면 이미 읽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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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홍춘욱 이코노미스트님(채운아빠님)을 알게 된 것은 지난번 글에서도 등장했던 '박경철의(지금은 김광진의) 경제포커스'였다. 그리고 간간히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도. 그래서 블로그도 알게 되어 즐겨찾고 있고, 에스틴이 개장(?)한 이후에는 에스틴에서도 자주 글을 접하고 있다. 방송에서도 그렇고 글 속에서도 꼼꼼한 분석과 친절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전달 방식이 눈과 귀를 끄는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책이 나오자마자 구입하게 되었다.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는 서점에 항상 쌓여있는 그저그런 재테크 책 중 하나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에스틴에서 본게 아니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저자가 누구인지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 같다. 저자의 이전 책들의 제목이 '인구 변화가 부의 지도를 바꾼다', '원화의 미래'와 같이 딱딱하지만 전문가가 썼다는 느낌을 팍팍 주었기 때문이다. 사실 블로그에서 이전부터 책을 쓰신다기에 이 책의 부제인 '한국형 탑다운 투자전략'과 같은 제목을 기대(혹은 예상)했었다. 하지만 더 많은 독자들에게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한 방법으로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전문가들이 많이 고심해서 결정할 제목일테니..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이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는지 경제포커스에서 책을 소개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언급하셨다. 스크립트 링크)

돈 좀 굴려봅시다 한국형 탑다운 투자전략
카테고리 경제/경영 > 재테크/금융
지은이 홍춘욱 (스마트북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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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분류에도 나와있고 제목에서 뿜어내는 기운에서 알 수 있듯이 재테크 책이다. 수많은 재테크 방법 중 부제에 나와있듯이 '한국형 탑다운 투자전략'에 대한 책이다. 

그럼 탑다운 전략이 뭐야?? 라는 의문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탑다운 전략이란 투자를 하기 위해 수행하는 분석을 하는 방식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회사의 주식이 많이 오를지를 궁금해하고, 저평가되어 있거나 상승할 것으로 보이는 주식 종목을 찾으려 노력한다. 이렇게 유망한 세부 종목들을 찾는데 가장 주력하고 해당 섹터, 거시 경제 경기를 부차적으로 분석하는 방식을 다운탑 전략이라 한다. 경기, 섹터, 종목 중 가장 아랫단계인 종목부터 윗단계로 올라가며 분석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탑다운 전략은 이와 반대로 거시경제의 경기 분석을 가장 우선시하는 방식이다.

이 책(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투자 수익률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어떤 주식을 사느냐, 어떤 아파트를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자산을 배분 하느냐..라고 한다. 그렇다면 장기적으로 자산을 적절히 분산해서 투자하고, 탑다운 전략을 통해 단기적으로 투자자산간의 배분을 적절히 조절함으로써 수익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자산배분의 필수요소는 미국 채권에 대한 투자이다. 미국 채권 수익률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하는 투자인 국내 주식투자의 수익률과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강력한 헷지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굳이 헷지수단이 필요한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서는 IMF 외환위기, IT버블, 카드사태,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이 국내 주식시장에 매우 큰 충격을 주는 사건이 계속해서 등장했고 앞으로도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유도 책에 나와있다) 그리고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당시 국내 주식시장은 50% 가량 폭락하고 달러/원 환율은 큰 폭으로 상승했던 것만 기억해도 국내 주식시장과 달러 자산 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미국 채권 외에 달러에 투자하는 방법도 블로그에 올려놓으셨으니 관심있으면 참고) 

하지만 자산배분 전략이 과거에 좋은 결과(수익률)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미래에도 여전히 통할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2000년대만 해도 IT버블이나 묻지마 펀드 열풍과 같이 주식투자가 영원히 고수익을 보장하며 상승할 것만 같던 시대가 있었고 좀 더 오랜 기간을 보면 불패신화를 만들어왔던 부동산도 있다. 하지만 수도권의 부동산도 서서히 꺼지고 있다. 이렇게 영원히 통할만한 투자 방식이 과연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는데 저자는 자산배분 효과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한국 주식과 미국 국채, 분산투자 효과가 없어지는 경우는 한국 경제구조가 수출이 아닌 내수성장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 자본집약적 제품에서 지식집약적 제품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한국의 외환시장이나 주식시장이 해외 경제여건의 여건을 덜 받기 때문에 한국 투자자들이 굳이 미국 국채에 분산투자를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계속되는 FTA 체결국가의 확대만 보더라도 첫번째는 충족되기 어려우며 두번째 요인도 현재의 한국기업들에게는 '굳이' 혹은 '아직은'의 이유로 단기간에 바뀌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본문 p.274-277 내용 요약)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친절하게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고기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 아니라 '친절하게'이다. 대부분의 재테크 책들은 고기(라고 적고 돈이라고 읽으면 된다) 잡는 법을 나름대로 가르쳐주고 있을 것이다. (많이 읽어보진 않아서 확신은 없다만) 하지만 이 책은 정말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거시경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하긴 하지만 혼자 찾아보기에는 막막한 경제 통계들을 어디서, 어떤 경로를 통해 찾고 보기 좋게 편집할 수 있는지까지 꼼꼼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그런 면에서 투자에서만이 아니라 거시경제 파악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탑다운 투자 방식이 거시경제 분석을 통한 투자이기 때문에 거시경제 분석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투자에서도, 경제 공부에서도 많이 도움을 주는 책이다.

하루하루 모니터나 휴대전화로 내가 산 종목을 보며 전전긍긍하는 사람에게 강추.
임기응변으로만 투자에 임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강추.
각종 위기 시절에 주식투자로 크게 손해를 본 적 있는 사람들에게 강추.
투자, 특히 탑다운 투자에 대해서 알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추천. 
연수익 10% 이상을 꾸준히 내고 있는 투자자라면 굳이 안봐도 하던대로 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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