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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잘 표현하면서도 독자의 눈을 끌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많은 책들이 둘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전자만을 고려하거나 - 예를 들면 서양 미술사 같은 - 반대로 후자만을 고려하기도 한다. 둘을 잘 조합하기는 의외로 어려운데 둘을 잘 조합하면 제목만 봐도 가슴에 막힌 것을 뻥 뚫어주는 듯한 책이 탄생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와 같은 책이 대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욕망해도 괜찮아'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욕망해도 괜찮아 / 나와 세상을 바꾸는 유쾌한 탈선 프로젝트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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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영화 '색계'를 통해 욕망(색)과 규범(계)의 세계에서 더이상 규범에만 지배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개인적인 경험들을 중심으로 학벌, 사랑, 종교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드리는 욕망과 규범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놓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혹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규범 속에서 살아가도록 교육받는다. 하지만 항상, 언제까지나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만 하고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저자는 '지랄총량의 법칙'이라는 단어를 통해 언젠가는 가슴 속에 꾹꾹 눌러놓았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든 표출되기 때문에 자신 내면의 욕구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적인 욕망 중 하나는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다. 남이 먼저 자신을 인정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자신이 직접 자신이 잘났다고 자랑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놓고 내가 내 자랑을 하면 그 가치가 떨어지는 법. 중요한 것은 내가 엄친아가 아니라는 말을 통해 내가 엄친아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자기 자랑을 자랑이 아닌척하는 방법을 택하는데 저자는 그런 은근한 욕망의 표출이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골적이지 못하고 '은근하게' 표출되는 욕망은 우리 삶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그 부작용에 비해 효과는 너무 미미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남의 은근한 욕망을 귀신처럼 잡아내는 무시무시한 센서가 갖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좀 엉뚱한 비유지만 '영어 못하는 한국인'인 제가 제일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바로 '영어 못하는 한국인'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겁니다. 미국인 앞에서 영어하는게 훨씬 쉽습니다. 미국인은 알아서 제 영어를 듣고 이해해주니까요. 3인칭 단수 뒤의 동사에 s 붙이는 걸 까먹은 실수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집어내는 사람은 미국인이 아니라 '영어 못하는 한국인'입니다. 저도 그 중 하나라서 잘 압니다. 자기는 영어 한마디 못해도, 남의 영어 실수는 쉽게 잡아내듯이, 자신의 은근한 욕망은 몰라도 남의 은근한 욕망은 귀신처럼 잡아내는 것이 인간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은근한 자랑이 상대방에게 먹혀들기를 원하지만, 누구도 상대방의 은근한 자랑을 듣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은근해도 내 자랑이 상대방에게 순수하게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p.146)

 
앞에서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스스로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는데, 사회적으로도 사회의 건강함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일 수 있다.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여고 앞을 배회하는 바바리맨부터 고위공직자, 상류층의 비뚤어진 욕망 표출로 인한 뉴스는 끊이지 않고 뉴스를 장식한다. '나는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매일매일의 일상 속에서 자기 내면의 욕구에 충실하려는 색과 남에게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려는 계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인정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욕망을 폭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 대해 말해둘 한가지, 가식을 떨지 않고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고 그것이 긍정적인 반응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본인이 이미 어느정도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그냥 미성숙한 사람으로 생각되기 쉽지 않을까.  
그리고 솔직하게 바라본 자신의 욕망이 불법적이고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그 욕망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것일까.

그여자가 말했듯이 서점에 서서든, 전자책의 미리보기를 통해서든 프롤로그는 다들 읽어보길.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 
유재석을 꿈꾸지만 현실은 정형돈인 모든 사람들에게 강추.


by 청춘한삼 2013. 5. 26. 21:30
'백인'을 보면 '미국 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회에서 한평생 살아오긴 했지만, 미국과는 다르게 고대 그리스로부터 시작되는 유럽의 유구한 역사와 독일, 프랑스, 영국, 북유럽 국가 등이 가진 부유하고 살기 좋은 나라의 이미지는 나에게 있어 유럽에 대한 선망과 기대감을 가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그들의 역사와 생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부끄러운점과 고충, 고민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지금은 재정위기 때문에 유럽연합(EU)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세계대전이라 이름 붙인 전쟁을 두번이나 치루고도 전 유럽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그들의 시도(혹은 실험)는 충분히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수십년 간 서구화를 급격히 진행시켜 왔고, 근현대 들어 좋지 못한 사이를 유지해 온 이웃 나라들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유럽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단 그런 조건이 없더라도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살아갈 교훈을 얻는 것은 언제나 필요하기도 하고.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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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부터 보고 배워온 세계사는 대부분 유럽에 무게중심을 두고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의 다른 대륙의 역사는 유럽사와 관련이 있을 때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세계사라고 하는 것이 유럽 중심으로 연구되었고 전파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주류 역사학의 시각만을 따르는 것은 자기도 모르게 왜곡되어 있는 역사적 시각을 가지게 되는 위험이 있다. '조금은 삐딱한 세계사'라는 제목은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다. '삐딱한' 것이 '잘못된, 틀린'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시각을 가진'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그러면 이 책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아닌가?) 책에서는 유럽 문명이 어떻게
근대정신을 가지고 발전시켜 나가는지를 살펴본다. 또 하나의 의문이 될, 저자가 말하는 '근대정신'은 다음과 같다. 

르네상스가 근대를 향한 기지개라고 봤을 때, 근대성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근대는 물론 시대를 지칭하는 단어지만 동시에 문명의 특정 상태을 의미하기도 하며 논의의 성격에 따라서는 후자가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것른 단지 경제적인 영역이나 제도,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넘어서는 문명의 의식수준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근대의 핵심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다양한 어휘로 설명·정의할 수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기독교 도그마의 붕괴와 인본주의의 성립'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특정 가치가 사회를 지배하고 이에 반항하는 자에 징벌을 내릴 때 우리는 그 사회가 도그마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중세 유럽에 있어서 도그마는 기독교였다. (p. 187)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 특히 중세는 인간보다 신이 우선시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라는 '광기'라는 단어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던 시기이기도 했다. 저자는 관용과 사랑이 기독교 내에서만 통했던 시기라고 말했지만, 십자군 원정이나 마녀사냥을 보면 사실상 기독교 내에도 관용과 사랑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었다. 이런 시기를 탈피해 신 대신 인간을 중시하는 인본주의가 탄생하고 전파되는 것은 눌렸던 스프링이 결국 더 높이 튕겨오르는 것과 같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위에서 저자는 '기독교 도그마의 붕괴와 인본주의의 성립'을 중세 유럽을 벗어나는 핵심요소라고 말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것이 근대의 핵심요소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도그마를 대신한 반공 도그마의 극복과 인본주의의 성립일까. 혹은 다른 요소일까. 


이제 우리는 어두운 과거인 중세를 넘어 근대정신을 달성한 이상적인 사회를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 또한 던질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정신과 이상적 사회에 대한 견해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한 저자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범죄, 학살, 착취, 수탈, 부패는 이어지고 거짓과 위선을 통한 지배와 통제는 더욱 교묘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이 말해주는 바는 하나다. 인류는 여전히 탐욕과 증오, 광신의 포로로 살고 있다. 새로운 맹신이 과거의 맹신을 대체하고 새로운 미움이 예전의 미움을 대신하며, 소유에 대한 욕망은 무한대로 확장되어 타인의 땀과 피를 요구하고 있다. 중세는 아직 종결되지 않았고 근대의 이상도 달성되지 않았다. (p. 434)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단일한 주제와 짜임새이다. 단순히 시대별로 어떤 전쟁이 일어났는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정신의 달성'이라는 주제를 견지하며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얇지 않은 두께의 책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이야기에는 짜임새가 있다. 

또한 유럽사 외에도 챕터가 끝날 때마다 저자가 유럽, 캐나다에 살면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는 점도 마음에 드는 면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해되지 않았던 서구사회의 빈곤층, 범죄자들의 존재가 서구사회의 개인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할까. 

전체적으로는 '근간'으로 되어 있는 다른 대륙의 시리즈를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인류의 이성을 통한 근대성의 발전 과정을 알고 싶다면 강추.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세계사(유럽)를 보고 싶다면 강추. 
소위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차이, 선진국의 명암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덧. 책의 마지막에 성당기사단(템플기사단)과 장미십자회, 프리메이슨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내용 중에 팩트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추측, 추정하는 내용이 많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책의 말미에 흥미를 끌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은 나쁘지 않고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단체들일 수도 있지만 결국 음모론과 추측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점에서 본문에서 잘 쌓아온 책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물론 이건 개인 취향의 문제. 
by 청춘한삼 2013. 5. 18. 17:07
'집을 짓다' 라는 제목을 보고 누군가 오해할수도 있겠지만, 여긴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소개하는 곳이지 뭔가를 자랑하는 블로그는 아니라는걸 기억해주길. '집을 짓다'는 이전에 소개했던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의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건축가로서 자신이 지은, 짓는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책이다. 



이전에 보았던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를 흥미롭게 읽었는데 저자가 건축 마니아가 아닌 건축가로서 펴낸 책이 있다는 점에서 안읽어볼수가 없었다. 전에도 적었듯이 내가 살 집을 지어서 살고 싶은 생각이 있기도 해서 '집을 짓다'라는 책의 제목뿐만이 아니라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이라는 설명을 보니 더더욱 그랬고. 

집을 짓다 -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면 돌아가고 싶은 낭비없고 간소한 나만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하여
카테고리 기술/공학 > 건축/인테리어
지은이 나카무라 요시후미 (사이,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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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에서처럼 요시후미씨는 여전히 인간적이고 듣기(읽기려나) 편한 문장으로 이것저것 이야기 해준다. 본인이 생각하는, 그리고 본인이 지어온 집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집이란 무엇인가, 집이란 어떠해야 하는가와 같은 물음에 자기 나름대로 답한다. 르코르뷔지에의 '어머니의 집'과 같이 '집을 순례하다'에서 나왔던 집들도 이런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잠깐씩 등장하는데 완전히 같은 내용을 우려먹는다거나 하진 않으니 사골국을 먹을까 걱정하는 분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에서는 건축가 요시후미씨가 지어온 집을 소개하는데 이를 통해 요시후미씨가 집을 지을 때 어떤 점을 고려하는지 들여다 볼 수 있다. '집을 순례하다' 시리즈처럼 간단한 사진과 손으로 그린 평면도, 스케치, 건축주들과의 대화들이 특유의 친근한 말투로 다가온다. 이번에는 '자신이 지은 집을 순례한다'는 느낌이려나. 몇 개의 집을 통해 과장되지 않고 소박하며 건축주에 잘 어울리는 집을 지으려는 건축가 요시후미씨를 볼 수 있다. 

건축가인 요시후미씨가 꼽은 자신의 집 짓기 원칙 6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주변 풍경과 조화를 이루는 집
 2. 소재나 형태에 고집을 부리지 않는 집
 3. 그 자리에 어울리는 집
 4. 가족을 너그러이 포용할 수 있는 집
 5.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
 6. 공간에 힘을 주는 가구가 있는 집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아야 할 원칙이라고 생각되는데, 다섯번째인 건축주에게 어울리는 집을 짓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적은 부분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집. 
생활환경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도 역시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예를 들어 확고한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가족의 경우에는 <상자 같은 주택>을 주고 그 안에서 마음껏 생활을 꾸려나가게 두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가족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세부사항을 조금 더 상세히 정해주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습니다. 주택의 건축양식에는 하나의 정답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많은 정답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그때 그 가족에게 적합한 해결방법을 제안하면 어떨까요? 설계자에게 그런 여유와 깊이가 있다면 정말 좋겠지요. 
찰스 임스라는 건축가이자 가구 디자이너의 집은 그의 직업과 생활을 생각한다면 두말 할 필요 없는 정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과연 동시대의 일반적인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도 정답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저는, 그 집은 찰스 인스를 제외한 다른 평범한 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집은 그 가족의 분수에 맞아야 합니다. 옷으로 말하자면 그 사람답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는 복장이어야 하지요. 저는 그런 집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단조롭게 보이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솜씨 좋은 재봉사가 만든 옷 같은 집, 그런 집이 제가 꿈꾸는, 집입니다. (p.46)


단조롭게 보이더라도 정교하게 만들어진, 솜씨 좋은 재봉사가 만든 옷 같은 집을 짓고 싶은 건축가라면 나도 내 집을 맡기고 싶다. 나도 언젠가 이런 좋은 원칙을 가지고 실천하는 건축가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주택을 짓는 건축가라면 읽어보길 추천.
(굳이 주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집을 갖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내가 어떤 집을 갖고 싶어 하는지 궁금하고 고민되는 사람에게 추천.  

 
by 청춘한삼 2013. 5. 11. 20:14
제목만 봐도 책의 성격을 바로 알 수 있는 책들이 있다. '밑줄 긋는 여자'란 제목의 이 책도 마찬가지다. '밑줄 긋는 여자'는 저자가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본인의 이야기를 나누는 에세이다. 책을 소재로 한 에세이로는 '장정일의 독서일기'나 이동진의 '밤은 책이다', 정혜윤의 여러 책들이 있고, 혹은 성격이 좀 다르긴 하지만 지난번에 포스팅했던 '확신의 함정(세르닌, Gene)'와 같은 책도 있다. 다들 좋은 책이겠지만 내가 아직 '확신의 함정' 외에는 읽어보지 못해서 어느 책이 가장 뛰어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밑줄 긋는 여자 -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 이야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나라별 에세이
지은이 성수선 (엘도라도,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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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 긋는 여자'가 마음에 드는 점은 저자가 책을 매개로 자신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한다는 점이다. 자신이 회사에서 겪었던 일, 출장 중에 있었던 일, 연애 중에 느꼈던 일, 첫번째 책을 통해 라디오 방송의 한 코너를 맡게 된 일 등 생활 속에서 있었던 다양한 경험들을 자신이 그간 읽어온 책과 연결하여 솔직하게 (혹은 솔직하게 느껴지도록) 말한다. 

일견 저자가 사교적인 편으로 보이고, 하고 싶은 것을 실행으로 옮기는 능력도 있으며, 회사일도 해외영업이다보니 일반적인 직장인에 비해 다양하고 화려한 삶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도 결국 빡세고 합리적이지 못한 회사에서 시달리며 퇴근 후에는 일기 한줄 쓸 힘도 없는 회사원이라는 것을 통해 읽는이가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자신을 저자에게 투영할 수 있게 해주지 않나 생각된다. 

'꿈타장의 행복한 책읽기 팟캐스트'에서 이미 들었었지만 회사, 조직 생활에서의 애환을 다룬 '우리는 시간을 팔았지 영혼을 팔지 않았다' 챕터에서는 이제 곧 본격적으로 회사생활을 하게 될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다가왔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알아본 '당하더라도 알고 당하자' 챕터에서는 영문도 모르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큰 피해를 본 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대변하는 저자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와인을 모르는 초보자를 위한 간단한 팁같이 일상에서 도움이 되는 소소한 내용도 실려있다.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이라든가 감정적인 면도 때론 재미있게, 때론 감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프로 글쟁이들과는 뭔가 다른 에세이들이 실려있다. 

마지막으론 아쉬운 점..이라기보단 그냥 덧. 책의 부제인 '떠남과 돌아옴 출장길에서 마주친 책 이야기'는 저자가 해외출장을 자주 다니는 직장인이고 책의 내용에서도 해외 출장에서 있었던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굳이 저렇게 부제를 정해야 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아마 저자의 이전 책인 '나는 오늘도 유럽 출장 간다'를 의식한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또 하나는 이 책을 리디북스에서 전자책으로 샀는데 표지가 위의 책 정보에 있는 표지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위의 표지는 책 겉을 싸는 이중 표지인데 전자책의 표지로는 본 책의 표지가 나와있다. (정확한 용어를 모르니 무슨 말인지 내가 봐도 잘..-_- ) 

책과 생활이 연결된 진솔한 에세이를 보고 싶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5. 4. 17:14
관련글 : [그여자와 책] - 발칙하다 못해 유쾌하다! 발칙한 유럽산책

그여자 Gene이 썼듯이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이하 유럽산책)'은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 팟캐스트에 소개되었다. 이전에는 빌 브라이슨이 쓴 책 중에서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만 보았었기 때문에 그를 대중과학서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유럽산책'을 포함해 여러 기행문을 써온 여행작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팟캐스트를 통해 책의 일부 내용을 접하니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다. 드라이하게 적긴 했지만 팟캐스트에서 읽어준 부분이 너무 재미있어 하도 여러번 듣다보니 어느 정도 내용을 외워버렸을 정도이다.  

'유럽산책'은 제목부터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이 아니라 '빌 브라이슨 유럽산책'으로 지어져 왜 관사를 넣지 않았을까 의문을 자아낸다. 하지만 번역본 제목은 빌 브라이슨이 정한 것이 아니라 출판사(21세기북스)에서 정한 것이다. 같은 출판사에서 번역된 빌 브라이슨의 다른 저서들 - 미국산책, 영국산책, 미국횡단기 등등 - 을 보면 마찬가지로 관사 '의'를 포함시키지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 궁금하다. 난 출판사 관계자를 알지 못하니 아마 평생 모르고 넘어가겠지.  

빌브라이슨발칙한유럽산책
카테고리 여행/기행 > 해외여행
지은이 빌 브라이슨 (21세기북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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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산책'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로는 팟캐스트에서 읽어준 예테보리편과 피렌체편 일부의 내용과 표현이 내 취향에 딱 맞았다는 점과 더불어 작가는 도대체 왜 여행을 떠났을까..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여행을 떠나는 목적으로는 휴식을 바라거나 뭔가 새로운 것을 얻고자 하거나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감탄하기 위해서와 같은 어떤 긍정적인 면이 있다. 그런데 팟캐스트에 소개된 내용만으로는 왜 작가는 굳이 집을 떠나서 여러 일을 겪으며 투덜거리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다. 역시 책에는 왜 본인이 여행을 떠났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빌 브라이슨이 밝힌 여행의 목적을 포함한 두 부분을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런던에 있을 때 유럽 여행을 한 다음 책을 쓸 거라고 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여러 외국어를 구사하시나 보군요."
"아니, 영어밖에 모르는데요." 
내가 모종의 자부심을 가지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눈으로 날 바라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는 그것이 외국 여행의 묘미다. 나는 여행지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낯선 나라를 여행하는 것보다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을 자아내는 일이 어디 았을까. 여행자는 갑자기 다섯 살짜리 어린이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장담할 수 없다. 존재 자체가 연이은 추측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p.54)


함메르페스트는 준비 운동치고는 다소 오래 걸린 감이 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할 참이다. 나는 돌아다니고 싶어서 몸이 근질거렸다. 유럽 전역을 떠돌아다니면서 영국에는 도저히 들어오지 않을 영화의 포스터도 구경하고 움라우트(독일어의 특수 기호)와 세디유(대개 c 밑에 붙는 s 모양의 기호)가 잔뜩 붙은 각종 상품과 상점 안내문, 그리고 주차금지 표지판 비슷하게 생긴 문자를 신기한 듯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도 그 나라를 제외한 다른 곳에서는 전혀 히트할 가능성이 없는 대중가요도 듣고, 나와는 평생 연이 닿지 않을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전화 박스 사용법부터 저 식품의 정체가 무엇인지까지 도무지 친숙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었다.
낯선 곳에서 어리둥절해하는가 하면 매료되기도 하고, 실타래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근사한 대륙의 다양성을 경험하고 싶었다. 기차를 타고 한시간만 가면 주민들의 말도, 음식도, 업무 시간대도 다르고, 주만들은 한 시간 전에 만났던 사람들과 너무나 다른 삶을 살면서도 묘하게도 비슷한 곳, 나는 이런 근사한 대륙의 여행자가 되고 싶었다. (p.57)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다섯 살까지 어린이가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친숙한 것이라곤 없는 이국적인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 생각보다는 평범한 이유라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빌 브라이슨은 이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빌 브라이슨은 여행 도중 여러 황당한 일들을 겪으며 시종일관 투덜거리거나 빈정거리고 풍경이나 분위기에 감탄하기도 하면서 
유럽 대륙 북쪽 끝자락의 함메르페스트에서 오른쪽 끝인 이스탄불까지를 여행한다. 빌 브라이슨의 글의 힘에 더해 번역자의 능력 덕분에 Gene이 썼듯이 책을 읽다보면 작가와 함께 유럽 어딘가를 함께 거닐고 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내가 가본 적은 없고 이후에 가보더라도 20년 전(정확히는 1990년)에 빌 브라이슨이 걸었던 곳과는 절대 똑같지 않을 유럽의 도시들이지만 그 도시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멋진 사진을 찍고 어디에 가서 뭘 보고 뭘 먹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며 '나는 이렇게 멋진 곳에 잘 다녀왔으니 너도 나와 똑같이 해보렴'이라고 말하는 여행책들 보다는 이런 책이 진정한 여행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뒷표지에 있는'여행 정보가 아니라 여행의 재미를 준다'는 문구가 이 책의 특징을 가장 잘 말해주는 듯 하다. 

유럽여행, 여행기를 원한다면 추천.
풍자와 돌직구의 향연을 원한다면 강추.
재미있는 책을 원한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4. 28. 15:40

'확신의 함정'의 저자인 금태섭 변호사. 원래는 검사였는데 한 신문에 실었던 칼럼이 문제가 되며 옷을 벗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금태섭 변호사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칼럼도, 작년 말 떠들썩했던 안철수도 아닌 오마이뉴스에서 팟캐스트로 제공한 '저자와의 대화'였다. 제공되는 모든 팟캐스트를 보지도 않고 금태섭이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책의 제목이 손가락을 유도하는 뭔가가 있었다. 당시 '확신의 함정'을 내고 저자와의 대화에 나온 금태섭은 주최측의 요청 때문에 책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설명을 주로 했었다. 덕분에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책의 주요 내용이나 분위기를 파악하려던 나는 완전 낚였었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내용도 흥미로웠다) 그래서 어떤 책인지 한번 봐야지..라고 생각하다 넘겨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확신의 함정

저자
금태섭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1-06-28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우리의 결론,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형사사건 전문변호사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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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인 '확신의 함정'은 '확신의 순간에 빠지는 함정'을 의미한다. 누구나 어떤 일에 대해 확신을 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던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매주 로또를 살 때마다 당첨될 것을 확신하지만 토요일 저녁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해피엔딩을 확신하고 고백했지만 ASKY를 몸소 체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검사였던 저자도 검사 시절 확신의 함정에 빠졌던 경험을 고백하며 책은 시작된다. 저자가 검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검사 시절 사건을 맡던 중 확신의 함정에 빠진 내용이 주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나의 기대는 거기까지는 맞았지만 이후로 내 기대는 함정에 빠져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검사'나 '법률가'이기 때문에 고민하거나 제기하는 문제의식과 같은 내용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다독가'의 입장에서 책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책은 전반적으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에 대한 고민에 대해 생각해볼 화두를 제시하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거나 문제인식을 발전시켜 나가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검사 시절 자신의 경험이나 법률적 내용, 사건 판례 등을 제시하기보다는 주로 소설에 나오는 사례를 제시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사형제를 유지해야 하나, 체벌은 필요한가, 도박, 마약, 음주는 처벌해야 하는가 등 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내용을 많이 다루지만 소설을 통해 문제를 제시하거나 내용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내용이나 서술이 너무 무겁지 않게 흘러가는 장점이 있다. 물론 저자가 글을 쉽게 쓴 것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용에 언급되었던 책들을 책 마지막에 모두 정리해두었다는 점이다. 책을 읽으면서 관심이 생긴 책을 찾아보거나, 직접 이 책을 읽지 않았어도 챕터마다 정리된 책 리스트를 통해 관심있는 분야에서 어떤 책이 소개되었는지를 알고 찾아볼 수 있다.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관심있는 분야가 있으면 해당 분야에서 소개된 책을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1. 악마의 종족은 따로 있는가 
 - 흉악범에 대한 사형은 정당한가
  존 그리샴. 가스실
  스티븐 킹, 그린 마일
  공지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거세하면 성범죄가 사라지는가
  앤서니 버지스, 시계태엽 오렌지
 - 아동성폭행범의 맨얼굴
  홈스, 앨리스의 최후
 - 연쇄살인범에게도 관용이 필요한가
  앤 룰, 내 옆의 이방인
  양들의 침묵, 조나단 드미
  도라스 레싱, 다섯째 아이
 - 가끔은 변호사도 침을 뱉고 싶다
  조이스 캐럴 오츠, 강간, 사랑이야기
 - 다 잘되라고 때리는 거란다
  패터 회, 경계에 선 아이들
 - 맞으면서 크는 아이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2. 딜레마에 빠진 법정
 - 자백, 정말 믿을 수 있을까
  존 그리샴, 자백
 - 혁명은 되고, 살인은 안되는가
  아라빈드 아디가, 화이트 타이거
  조지 오웰,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 복수는 법의 것?
  너새니얼 호손, 주홍 글자
  김용원, 브레이크 없는 벤츠
  박현욱, 아내가 결혼했다. 
  로버트 A. 하인라인,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는가
  제스 월터,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레몽 라디게, 육체의 악마
  제임스 A. 미치너, 작가는 왜 쓰는가
  프랑수아즈 사강, 슬픔이여 안녕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 품 안의 자식과 성인의 기준
  로맹 가리, 새벽의 약속
  시리어스 맨, 에단 코엔, 조엘 코엔 감독
 - 성매매 특별법을 위한 변론
  가즈오 이시구로, 나를 보내지마
3. 확신의 순간에 빠지는 함정
 - 나는 나를 증명해야 하는가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 음란함을 저하는 기준
  장정일,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탈로 칼비노, 왜 고전을 읽는가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 신은 왜 여자를 대머리로 만들지 않았나
  마르잔 사트라피, 페르세폴리스 1, 2
- 결함있는 생명?
  조디 피콜트, 쌍둥이별: 마이 시스터즈 키퍼
 - 과학은 정답일까
  마이클 크라이튼, 공포의 제국
  프레드 싱거, 데니스 에이버리,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
  로이 W. 스펜서, 기후 커넥션
 - 전능하신 신의 이름으로
  살만 루슈디, 악마의 시
4. 국가와 정의라는 알리바이
 - 그것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 반역자의 아들이 사는 법
  E.L.닥터로, 다니엘서
 - 유신의 추억
  주노 디아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염소의 축제
 - 음모론 대 국론통일
  돈 드릴로, 리브라: JFK 암살범에 관한 기록
  팻 콘로이, 사랑과 추억
  쑹훙빙, 화폐전쟁
  짐 말스, 크로스파이어
  제럴드 포스너, 사건 종결
  빈센트 불리오시, 역사 바로 세우기
 - 모든 전쟁은 범죄다
  조지프 헬러, 캐치-22
  웨스트윙, 아론 소킨 제작
 - 테러범에겐 법정이 필요없다?
  살만 루슈디, 광대 샬리마르
 - 너는 어느 편이냐고 묻는 자들에게
  아서 쾨슬러, 한낮의 어둠. 

by 청춘한삼 2013. 4. 21. 20:53

최근들어 좀비물이 인기다. 몇 시즌째 진행되고 있는 미드 '워킹데드'나 간간히 개봉하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28주 후'와 같은 영화들에 더해 이제는 사랑하는 좀비(웜바디스)까지 등장했다. 좀비와의 전쟁(?)을 다룬 소설 '세계대전 Z'를 원작으로 하고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도 곧 개봉 예정이다. (제목이 월드워Z로 나오는듯) 내가 마지막으로 봤던 좀비물은 아마도 윌 스미스 주연의 '나는 전설이다'인 듯 하다. 이 영화도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단순 좀비영화로 봤을 때는 그냥저냥 봤었는데 원작을 아는 사람에게는 욕을 많이 먹었고, 원작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긴 했어서 한번 찾아보았다. 

 


나는 전설이다(밀리언셀러 클럽 18)

저자
리처드 매드슨 지음
출판사
황금가지 | 2005-06-2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 공포 소설과 영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흡혈귀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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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무려 60년 전, 1954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런데 배경은 1970년대로 20년 정도 뒤의 세계를 설정하고 있다.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핵전쟁 이후 살아남은 유일한(것으로 추정되는) 생존자 네빌이 매일 밤 덤벼드는 흡혈귀들을 저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작품이라 추켜세웠던 것을 듣고 봐서인지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감명받지는 못했다. 50년대에야 새로운 설정과 발상을 선보인 작품일 수 있겠지만, 좀비물들이 넘쳐나게 된 지금 다시 보았을 때 신선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처럼. 특히 영화까지 미리 봤다면 스토리도 대강은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이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반복되는 일상이 공포로 나타나는 것이다. 네빌은 낮에는 주변의 좀비(흡혈귀)들을 죽이고 밤이 되면 집으로 공격해오는 좀비들을 막기 위한 대비에 힘쓴다. 그리고 밤마다 몰려드는 좀비를 처리하거나 휴식을 취한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는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현재 생활의 유지나 더 나은 삶에 대한 기대 때문인 것도 같고. 네빌은 유일한 생존자로서 외로움을 느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니 아마도 죽을 때까지 반복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좀비로 살아가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인지 고민한다. 물론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명언처럼 슬럼프를 겪으면서도 살아가려 애쓴다. 


개인적으로 좀 더 흥미로운 점은 '나는 전설이다'라는 책의 제목이다. 나는 책을 읽기 전에는 제목의 '전설'을 '전설적 영웅(혹은 생존자)'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전설'의 의미는 전설적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전설'(혹은 신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적기는 어렵지만 현재는 인간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흡혈귀란 존재는 그저 전설로 남아있다. 하지만 인간이 지배하던 세계가 막이 내리고 흡혈귀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을 때 유일한 인간인 네빌은 '전설'로 남게 되는 것이다. 눈이 하나만 있는 원숭이 나라에 간 눈을 두 개 가진 원숭이같은 입장이랄까.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지는 오래된 고전 공포소설 중 하나라 굳이 블로그에 포스팅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던 이 작품이,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이, 결말에 다가가면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포스팅까지.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봤었다면 영화에는 없던 남다른 의미를 찾아보시라. 

좀비, 흡혈귀가 나오는 공포물을 좋아한다면 추천. 


덧. 혹시 나처럼 낚이는 사람이 있을까봐 하나 덧붙이자면 이 책에서 '나는 전설이다'는 앞의 절반 정도만 나오는 중단편(?)이다. 책의 나머지 절반 정도는 리처드 매드슨의 다른 단편들이 실려있다. 


by 청춘한삼 2013. 4. 14. 17:36

관련글 :

 - [그남자와 책] - 십자군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 [그남자와 책] - 십자군 이야기 2 -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의 마지막, 세번째 책이다. 1권에서는 1차 십자군, 2권에서는 2차 십자군에서 3차 십자군의 출현 이전까지를 다뤘는데 십자군 원정은 8차까지 시행됐다. 이 한권으로 여섯번의 십자군 원정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마지막 권은 남다른 두께를 자랑한다. 350 페이지가 채 안되던 1, 2권의 1.5배 정도인 600 페이지나 된다.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기록을 남겨두려는 이 글도 길어지고...

 


십자군 이야기. 3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2-05-16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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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에 의해 예루살렘을 빼앗겼던 무슬림은 살라딘에 의한 지하드를 통해 다시 예루살렘을 손에 넣었다. 예루살렘을 다시 이교도의 손에 넘겨주게 된 그리스도교도들은 또 한번의 십자군을 조직한다. 프랑스와 영국의 왕, 제후들에 더해 독일(당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까지 등장하는 초호화캐스팅이었다. 


살라딘은 이 소식을 듣고 정말 조급하고 긴장했을 것이다. 사상 최대의 십자군을 맞이해야 했던 것이다. 살라딘이 가장 신경을 쓰던 황제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1세가 원정 도중 갑작스럽게 익사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십자군의 꽃이라 불리는 3차 십자군에는 '사자심왕' 리처드가 있었다. 십자군보다는 자국의 영토 확장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끝내 먼저 귀국해버린 프랑스왕 필리프와는 달리 영국왕 리처드는 3차 십자군을 거의 혼자 승리로 이끌었다. '사자심왕(The Lionheart)'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이전까지 지지부진하던 십자군과 살라딘군과의 전투를 리처드는 시원시원하게 승리로 이끌며 성도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했다. 하지만 본국에서 동생과 필리프에 의해 발생한 반란으로 인해 살라딘과 평화협정을 맺고 유럽으로 돌아가면서 예루살렘 재탈환이라는 목적은 이루지 못한다.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4차 십자군에 대한 내용이다. 베네치아와 연합하여 이집트로 가려던 군대는 베네치아에 의해 조종되어 베네치아의 해상영향력을 높히기 위한 원정을 하게 된다. 자라 공략에 이어 마지막으로는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 공략까지. 한번도 함락된 적 없던 콘스탄티노플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십자군과 베네치아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하지만 '십자군 이야기 3권'에서는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제대로 나와있지 않다. 약 30년 전에 시오노 나나미 본인이 썼던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권'을 참조하라는 말 밖에. 콘스탄티노플 공략이 성공한 후의 내용도 자세히 나와있지 않아 4차 십자군의 마지막 행동들이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4차 십자군에 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 그대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았다면 '십자군 이야기 3'에서 굳이 다시 읽을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번역자가 다른데도 그렇다는건 시오노 나나미가 '십자군 이야기'를 쓰면서 이전 책에서 원고의 대부분을 그대로 옮겼다는 의미일 것이다. 작가의 의도대로이긴 하지만 4차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플에서 행했던 전투와 이후 이집트로 가지 않고 흐지부지된 십자군 원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권'을 읽어보는 것이 필수라고 본다. 


5차 십자군은 십자군도 그렇지만 소년 십자군이라고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초래하고 만다. 프랑스의 잔다르크는 전쟁에 참여하고 후에 성녀로까지 추앙받았지만 소년 십자군을 이끌었던 몇몇 소년들은 전 유럽의 소년들을 노예로 만드는 비극을 초래하였다. 1차 십자군의 군중 십자군과 마찬가지로 무지와 광기가 어떻게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은 유럽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소년 십자군이 노예로 팔려나갔는데 교황청이나 해당 국가의 즉각적인 조치가 없었다는 점이다. 군대를 이용하거나 상인에 대한 파문조치라도 취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실제 효과가 얼마나 되든간에) 아무 것도 안한 것은 소년 십자군이 제대로 공인받지 못한 존재였기에 그랬던 것인지 의문스럽다.  


6차 십자군은 오랜만에 황제가 출전한 십자군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그다지 성스럽거나 영광스럽지 못했다. 원정을 떠나고 싶지 않아하는 황제 프리드리히 2세에게 억지로 예루살렘 왕의 지위를 주고도 진행과정이 만족스럽지 않자 파문까지 시켰다. 덕분에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한 황제가 이끄는 '십자군'이라는 특이한 조합이 생기긴 했다만. 원정을 떠나긴 했지만 끝끝내 한차례의 전투도 벌이지 않고 순전히 군사력과 외교력만으로 프리드리히 2세는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지중해 연안 도시들을 그리스도교에게 돌려주었다. 전투를 위한 준비는 철저했고 본인들의 강력한 군사력을 소모하는 대신 이를 외교전에 이용하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스마트함을 보인 점은 리처드와 같아보이지만 전투 없이 외교만으로 예루살렘을 양도받은 것은 리처드 이상의 성과라고 생각된다. 당시 여론은 그렇지 않았지만. 현대의 시각으로는 가장 뛰어난 성과를 올렸지만 당시 종교적 시각으로는 최악이었던 6차 십자군. 프리드리히 2세의 파문은 예루살렘의 재탈환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았고, 예루살렘 주교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할 정도였다. 로마 교황은 프리드리히 2세의 신성로마제국을 침략하기까지 했고. 당시 성직자들이 바랐듯이 이교도를 피로 성지를 씻어내는 일이 과연 그들의 신이 원하는 일이었을까.


실질적 마지막 십자군인 7차 십자군은 프랑스왕 루이에 의해 실행된다. 하지만 그는 리처드도, 프리드리히2세도 되지 못했다. 피렌체와 연합하여 이집트로 쳐들어갔지만 루이는 전쟁에 대한 준비도, 전투시의 능력도 모두 뛰어나지 못했다. 아니, 결과로만 본다면 최악이었다. 일찌감치 후퇴한 피렌체군 외의 나머지 생존자가 모두 포로로 잡혔을 정도이니. 이후에 다시 한번 루이에 의한 8차 십자군 시도가 있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원정이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루이가 사망하면서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7차 십자군을 실질적으로 마지막 십자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7차 십자군의 성과는 더이상 대규모의 십자군이 중동으로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무슬림들에게 심어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프랑스의 왕이 직접 지휘해 온 십자군이 사상 최대의 패배를 당햇기 때문이다. 또한 살라딘 이후부터 내려오던 아이유브 왕조가 노예 출신의 맘루크에게 왕의 자리를 넘겨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어찌되었건 7차 십자군은 유럽과 중근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7차 십자군 이후 맘루크는 '그리스도교도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지중해에 처넣어주겠다'는 생각으로 중근동에서 그리스도교도를 몰아냈다. 지중해 연안의 해안도시 아코에서의 전투를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교는 200여년 만에 중근동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이후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는데 그리스도교를 수호하던 두 기사단인 템플 기사단과 병원 기사단의 엇갈린 운명도 그러했고, 이코노믹 애니멀으로 불리던, 지금 표현으로는 장사의 신이려나,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이야기도 그랬다. 

 

2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진행된 전쟁의 역사를 보면서 흥미롭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인간이 죽이고 죽이는, 그것도 종교의 이름으로, 과정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런 것들이 지금도 여전히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루살렘은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다. 시오노 나나미는 책의 중간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남겼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된다. 

전쟁은 인류 최대의 악업이다. 그런데도 인류는 도무지 이 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전쟁이란 그 승패 여부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른 후 얼마나 오랫동안 평화가 이어졌느냐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게 좋지 않을까. 

또한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영원히 지속되는 평화란 있을 수 없으며, 그때그때 단기간의 평화를 쌓아가는 식으로 달성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연구하면 할수록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이라는 가정이 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나 또한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인류가 전쟁이라는 악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00년의 평화를 얻는다는 명분으로 단 하루라도 전쟁을 해서 무고한 희생자를 만들수는 없지 않을까. 기나긴 전쟁 이야기를 읽어온 것에 비하면 너무 이상적인 생각이려나. 


살라딘과 리처드의 대결을 보고 싶다면 추천. 

엄격한 종교의 시대에 황제가 된 자유로운 영혼, 프리드리히 2세, 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by 청춘한삼 2013. 4. 13. 19:55

 

관련글 : 십자군 이야기 1 - 시오노 나나미

 

전편인 '십자군 이야기1'은 보에몬드, 고드프루아, 레몽에 의해 주도된 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해방(침략) 이후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을 이루고 1차 십자군의 1세대 주요인물들이 모두 무대에서 내려갈 때까지를 다루었다. 후속편인 '십자군 이야기2'는 당연하게도 이후의 십자군 원정과 중동의 프랑크인들, 사라센들을 다룬다.

 


십자군 이야기. 2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11-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가격비교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한 가장 큰 요인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을 이끄는 제후들과 이슬람측 영주들은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서로 분열을 반복했지만, 십자군은 최종 목표 앞에서는 항상 단결했지만 이슬람측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십자군 국가들이 안정되고, 1차 십자군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통일되어 가고 십자군 국가들은 이전처럼 단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부터 공격자의 입장이었던 십자군 국가들은 이제 방어를, 방어에 급급했던 무슬림들은 공격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분열되어 있던 이슬람 세계가 강력한 리더의 등장으로 통일되어 갔다. 장기, 누레딘, 살라딘으로 이어지는 술탄의 등장으로 1차 십자군 시절 뿔뿔히 흩어져 본인들끼리 싸우기 바쁘던 이슬람 세계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가장 북쪽에서 무슬림을 막아주던 에데사 백작령이 지도에서 사라지고, 유럽인들은 복수를 위해 2차 십자군을 파견했다. 제후들로 이루어졌던 1차 십자군과는 달리 이번에는 왕들로 이루어진 십자군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전투도 한번 하지 않고 적과 싸우기 시작한지 4일만에 철수하고 말았다. 아마 소식을 들은 모두가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그리고 2차 십자군의 실패는 십자군 국가들에게는 더이상의 병력 충원 없이 무슬림들과 싸워야 한다는 의미였다.

 

1차 십자군 원정이 성공적으로 끝난 이후, 역설적으로 십자군 국가들의 병력은 줄어들었다. 원정에 참여했던 기사들 중 상당수가 유럽으로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이후 십자군 국가들은 내내 병력의 부족을 느꼈고 방어적으로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방어에 성공해냈다. 비결은 크게 세가지였다. 템플기사단과 성요한 병원기사단의 존재, 요소마다 건설한 성채, 이집트에 비해 뛰어난 해군력을 통한 제해권 장악이 그것이다.

 

현대의 특수부대에 비견될만한 위력과 성격의 템플기사단과 병원기사단. 오직 이교도와의 전투만을 위해 창설되어 주로 하위 계층의 프랑스인들로 이루어진 템플기사단과 병원에서 시작되어 유럽 전역 제후들의 자제로 구성된 성직자들의 모임인 병원기사단의 성향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함께 힘을 합쳐 싸우거나 행동을 같이 한 적이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들의 능력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적은 병력만으로도 200년의 세월 동안 십자군 국가를 지킬 정도로.

 

소수의 병력으로 요소를 지키기 위한 성채는 두 기사단에 의해 주로 건설되었다. 문화적인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왜 무슬림은 성채를 짓거나 이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마스쿠스나 안티오키아와 같이 큰 도시를 가지고 있으니 성벽이나 건물 축조에 대한 경험은 많을텐데 왜 굳이 본인들도 활용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당하기만 하면서. 아무튼 '크락 데 슈발리에'같이 주요한 성채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한번 가보고 싶다. 그전에 시리아가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야할텐데..

 

마지막으로는 강한 해군력을 가진 이탈리아의 해양 도시국가에 의한 제해권 장악이다. 이들이 해군력을 제공한 것은 십자군 국가를 통해 중근동과 유럽을 연결하는 경제활동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제해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해안가에 위치한 십자군들의 도시들은 바다와 육지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지 않았고, 해양을 통해 무기나 식량, 병력들까지 항상 안정적으로 보급받을 수 있었다. 전쟁에서 안정적인 보급의 중요성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더 말할 것도 없다.

 

시아파와 수니파로 갈라져있던 무슬림 세계를 통합한 살라딘은 성전, 즉 지하드를 선언했다. 술탄에 의해 지하드가 선언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는 종교의 이름으로 뭉친 십자군과 개별 무슬림들의 싸움이었다면 이제 진정으로 양측이 모두 종교의 이름으로 나선 것이다. 싸움은 어찌보면 허무하게 예루살렘 조금 위에 위치한 하틴에서의 전투 한번으로 끝났다. 단 한번의 전투로 살라딘은 승리를 거머쥐었고 예루살렘과 주변 도시 대부분은 무슬림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십자군 이야기 2는 끝난다.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는 무슬림에게서 기독교인에게 넘어갔던 성지 예루살렘이 십자군 이야기 2권에서는 반대로 기독교인에게서 무슬림으로 넘어갔다. 그말은 성지를 빼앗긴 기독교인들이 다시 십자군을 파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아직 십자군 원정은 두 번밖에 실행되지 않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과 이슬람측의 비대칭적인 인재 출현 시기에 대한 언급으로 책을 시작했다.

 

어째서인지 인재는 어느 시기에 한쪽에서만 집중적으로 배출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시간이 좀 지나면 잦아들고, 이번에는 다른 쪽에서 인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2권에서는, 그리스도교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그린 1권에 이어 이슬람측에서 배출된 남자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왜 양쪽 모두 같은 시기에 인재가 배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에 명쾌하게 답해준 철학자도 역사가도 없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신들의 배려인가, 아니면 이것이야말로 역사의 부조리인 것일까...

 

실제로 1차 십자군 이후부터 살라딘에 의한 예루살렘 재탈환까지의 시기 동안 이슬람 측에서는 장기, 누레딘, 살라딘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계속해서 배출되었지만, 기독교 측에서는 보두앵3세, 이벨린 정도가 능력있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한센병에 걸려있던 보두앵 3세의 활약은 짧았고, 이벨린은 왕이 아니었다. 그 외 멜리장드나 뤼지냥, 샤티용같은 인물들은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 중 하나로 시오노 나나미는 십자군 국가의 정치에 관여하던 여자들에게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안티오키아를 장기에게 갖다바치려던 알리스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당연하겠지만 멜리장드에 대해서는 정책이나 통치력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는다. 상황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지는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떤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는지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것이 아쉽다.

 

십자군 이야기 1권을 읽어보았다면 당연히 읽어보시라.

 

by 청춘한삼 2013. 4. 6. 23:23

중국은 이미 너무도 크고 전세계적인 영향력도 큰 나라다. 중국은 극심한 빈부격차나 일부 사람들의 의식수준과 같은 이미지 때문에 중국이 얕보이기도 하지만 10억이 넘는 인구를 한 국가가 통제함으로써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 경제를 넘어서 작년(2012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중국 작가인 모옌이 선정되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알고 있던 중국 현시대의 작가는 위화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작가 위화의 존재를 알기는 했지만 위화의 소설을 제대로 읽어본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위화를 알게 된 것도 앞서 몇번 언급했던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팟캐스트를 통해 허삼관 매혈기의 도입 부분을 들었고, 서점에서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본 것이 내가 읽은 위화 소설의 전부다. 그리고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를 통해 소설가 위화의 비소설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저자
위화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3-03-0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세계가 사랑하는 소설가 위화가 그려낸 현대 중국의 열 가지 풍경...
가격비교

 

부제에 나와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선정한 열 개의 단어로 중국에 대한, 그리고 저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위화는 마오쩌둥에 의해 행해진 너무도 정치적이었던 문화대혁명 동안 청소년기를, 이후 그야말로 엄청난 경제발전 시기를 살아온 세대이다. 그런 위화가 선정한 열 개의 단어는 인민, 영수, 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이다. 독서와 글쓰기는 위화의 개인적인 경험에 좀 더 무게를 둔다면 그 외 단어는 중국 역사, 사회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열가지에 대해 하나하나 모두 언급하기보다는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인민은 북한에서 사용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로 대체되어 일반적으로는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다. 중국에서는 마오에 의해 인민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 톈안문 사태 이후 갑작스럽게 그 힘을 잃었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이 정치적 열정을 톈안문 사태에 모조리 쏟아부은 후 열정의 방향을 개인의 부로 돌리면서 '인민'이라는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지던 사람들이 각자의 개성을 가지는 개별적인 인간들로 분화되었다는 것이다. 위화는 톈안문 사태 시기에 비로소 '인민'이라는 단어와 진정으로 만났다고 한다. 계엄령에도 불구하고 한 입체교차로를 지키던 사람들, 무기가 아닌 신념으로 뭉친 사람들의 에너지를 통해 '인민'이라는 단어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책의 제목처럼 그들의 목소리는 빛보다 더 멀리 전달되고 그들 몸의 에너지가 그들의 목소리보다 더 멀리 전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산채는 우리가 흔히 짝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가짜 혹은 모조품, 권리 침해, 규범 위반과 같은 많은 의미가 모방이라는 의미에 흡수되어 '산채'로 대변된다고 한다. 우리에게 쉽게 떠올리는 것은 Nokir, Samsing, 혹은 명품이나 해적판 물건들과 같은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전 분야에 걸쳐 산채 현상이 확산되어 산채 음료, 약품 등을 비롯해 산채 텔레비전 프로그램, 산채 광고, 산채 유행가, 산채 스타까지 등장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에서 인터넷을 통한 산채 텔레비전 프로그램, 산채 뉴스들은 관제 방송들이 제대로 다루지 않는 (혹은 못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뉴스타파와 같은 정치, 사회 팟캐스트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산채 현상은 아무리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해도 '모방'이라는 본질 상 해악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표절과 모방, 악의적 조롱, 비방과 같은 문제적 행동을 긍정적인 면을 가진 행동으로 인식되게 하기 때문이다. 이 덕분에 그런 행동들이 당당하게 행해지며 양성화 된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가 퍼져나가는 것이다. 산채와 관련된 위화의 경험담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4년 전에 나는 내가 사는 건물 아래 있는 육교에서 해적판 '형제'를 발견했다. 나의 책이 다른 해적판 서적과 함께 노점에서 팔리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책을 파는 노점상은 내가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형제' 한 권을 건네주면서 친절하게 추천해주었다. 그 책을 받아 들고 몇 장 뒤적거려보니 금세 해적판임을 알 수 있었다. 내가 노점상에게 말했다.

 "이건 해적판이네요."

 "해적판 아니예요," 노점상은 진지한 표정으로 내 말을 바로잡아주었다. "산채판이지요."

 

마지막 단어인 '홀유'는 '어지럽게 잘못 인도한다'는 의미의 '호유'라는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는데 허풍과 선동, 종용과 같은 의미에 허튼소리, 뜬소문, 사기와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남을 속이거나 뭔가를 덮어씌우는 것을 말하는데 사기보다는 장난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의 거짓을 말하는 것으로 보면 되는 듯 하다. 홀유는 산채와 마찬가지로 현대 중국인들의 도덕적이지 못한, 혹은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대변하는 것 같다. 남을 속이는 행동에 이름을 붙이고 적극적으로 이용한다면 결국 모두가 모두를 속이는 것이 이익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 질 것이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산채 현상은 현재의 중국 사회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홀유 현상은 그런 면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꼽은 열가지 이외에 열 한번째 단어를 꼽는다면 어떤 것을 고르겠냐는 질문에 위화는 '자유'라고 말한다. 경제개방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던 중국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Don't be evil'이라는 모토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는 구글은(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다만) 중국에 진출하면서 중국에서 톈안문 사태에 대한 검색을 하면 최적의 검색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보기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처리했다. 톈안문 사건은 1989년 6월 4일에 일어났다. 하지만 6월 4일을 언급할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5월 35일이라는 표현을 대신 이용한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이 밖에도 정치적 이견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러 단어들이 여전히 검열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몇 년 동안 언론의 자유가 후퇴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중국도 언론 선진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참고로 5월 35일식이 아닌 6월 4일식 비판을 한 이 책은 중국 본토에서는 출판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중국에 언론의 자유가 있냐는 독일 독자의 질문에 대한 위화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는데 재미있어서 소개해 본다.

 

어느 국가든 간에 언론의 자유는 상대적인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국민들이 총리를 욕할 수 있지만 이웃 사람을 욕해선 안 될 겁니다. 중국에서는 총리를 욕해선 안 되지만 이웃은 욕할 수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분명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와 개인적 경험, 진실된 이야기를 다룬 책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아, 그 책' 이렇게 떠오르는 책은 없다. 내가 그만큼 우리나라 역사에 관심을 덜 가져서 그런 것일까. 좋은 책, 혹은 저자가 있다면 누구든 댓글로 추천해 줬으면 좋겠다.

소설은 아니지만 진솔한 고백과 중국 사회에 대한 분석을 보며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우리 나라에도 이런 책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가의 글을 소설보다 에세이를 통해 접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위화의 소설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그리고 왜 위화가 대단한 평가를 받는 작가인지도 알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해, 위화에 대해 알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기를. 이 말은 절대 당신을 홀유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 개인적으로 느낀 책의 단점을 하나만 말하자면 마오쩌둥이 어떤 인물인지, 문화대혁명이 어떤 사건이었는지에 대한 인상을 가질 수 있겠지만 왜, 어떻게 이 인물이 역사에 등장하고, 문화대혁명은 어떤 경위를 통해 시작되고 진행되었는지와 같은 전체적인 모습을 이 책만으로 알기는 어렵다. 당시 중국에 대해 조금은 알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을 보며 다른 자료를 찾아거나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나는 후자였는데 책을 읽으며 주석으로 간단하게라도 문화대혁명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론 이런 불만의 원인은 나의 중국 역사에 대한 무지. 

 

위화의 팬이라면 이미 읽었겠지만 강추.

위화가 말하는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중국 정부에서 말하지 않는 중국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덧. 왜 굳이 표지를 이중으로 했는지가 의문이다. 책이 하드커버인 것도 아닌데. 띠지까지 있다보니 거의 삼중이다. 그냥 책 값을 500원이라도 싸게 내지..라는 생각이..

by 청춘한삼 2013. 3. 31. 20:30

바람을 뿌리는 자에 이어 개인적으로 두번째 접한 타우누스 시리즈이다. 나처럼 뒤늦게 읽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통해 타우누스 시리즈를 접했을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특별판까지 나올 정도로 정말 유명하고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 덧붙일만한 말이 거의 없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저자
넬레 노이하우스 지음
출판사
북로드 | 2011-02-1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감출 수 없는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과 마주하다!어느 폐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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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와 보덴슈타인은 여전히 작품에 등장하지만 '바람을 뿌리는 자'와는 다르게 다른 동료들에게는 거의 제대로 된 도움을 받지 못한다. 상태(?)가 정상적이지 못한 동료들이 있어서이다. 개인적인 가정사, 친분 관계, 동료와의 불화..주변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난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야. 당신들과 같이 힘든 일상을 살아가는 진짜 사람이야'라고 외치고 있다. 주변인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주인공 중 하나인 보덴슈타인도 마찬가지다. '바람을 뿌리는 자'에서는 이미 이혼을 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수사에도 영향을 끼쳐 '냉철한'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한다.

 

작품의 배경은 작은 마을이다. 살인자로 추정되는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멸시를 당하며 10년을 버텨온 아버지와 10년이 지나고 출소해 마을로 돌아온 아들 토비아스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을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존재와 10년 전 벌어졌던 살인에 더불어 마을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씩 밝혀지는데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긴박할 땐 긴박하고 풀어줄 때는 풀어주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다. 현재까지 출판된 작품 중 마지막에 집필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완성형에 가깝게 잘 만들어진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작은 마을과 그 마을의 비밀이라는 설정에서 윤태호 작가의 '이끼'가 떠오르기도 한다. '이끼'에서는 평범한 주인공이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는 내용이라면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형사인 주인공이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는 차이가 있다.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점은 작은 마을에 살던 주민들은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시골에 살아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작은 마을이나 시골에 가면 도시에 비해 인간적으로 친밀한 느낌, 넉넉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보다. 두 마을 모두 어두운 비밀이 숨겨져 있어서 사람들이 비밀을 파헤치려는 주인공을 그렇게 대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작품만이 아니라 로알드 달의 '맛'을 보아도 비슷한 인물들이 나온다. 내 주변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외지인을 경계하는 행동 양식은 작은 마을이라고 해서 더 나을 것은 없는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품도 그여자 Gene의 도움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무한한 감사를 :)

 

흡입력 있는, 재미있는 소설을 원한다면 강추.

다른 타우누스 시리즈를 읽었지만 이 책은 읽지 않았다면 강추. 

 

덧. 404페이지에 '식당으로 안내했다'가 '식당으로 안내햇다'로 적혀있는데 나중에 수정되었을지는 모르겠다. 내가 본건 2011년 3월23일 나온 초판10쇄.

by 청춘한삼 2013. 3. 23. 21:17

언젠가부터 책 시장에선 고전 번역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 낸 것인지, 수요가 공급을 만들어 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전 읽기도 차츰 퍼져나가는 분위기이다. 모든 고전들을 원전이나 완역본을 통해 접한다면 가장 좋을 수 있겠지만 실제 그렇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근 영화 개봉 이후 인기를 끌고 있는 레미제라블 완역본을 읽어봤다면 알겠지만 영화에서 나온 스토리나 어릴 때 알고 있던 장발장과는 텍스트의 양이나 깊이가 전혀 다르다. 레미제라블만이 아니라 안나 까레리나나 죄와벌 같은 책들, 심지어 걸리버 여행기와 같이 가벼워보이는 책들도 전체 이야기는 전혀 어린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소설들도 그런데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느낌을 제목부터 풀풀 풍기는 고전들, 예를 들면 국부론, 자본론, 종의 기원, 꿈의 해석, 꾸란, 이런 것들은 더더욱 읽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책은 좋은 대체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원전이나 완역본에 비해 해설이 달린 책들은 역자나 기획자, 지은이들이 말하고자하는 바에 이끌려 갈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된 사전 준비없이 사막을 횡단하기보다는 안내자의 도움을 받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슬람과 꾸란

저자
이주화 지음
출판사
두리미디어 | 2012-08-2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편견의 틀에서 벗어나 이슬람을 올바르게 이해하다!이슬람의 경전인...
가격비교


십자군에 대한 책들을 보다보니 자연히 내가 이슬람 세계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중세 유럽과 기사, 그리스도교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슬람에 대해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어릴 때 읽었던 역사책에서 이슬람에 대해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마호메트가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로 부흥된 종교라는 정도..에 한 손에는 '코란'을, 한손에는 칼을 들고 지하드(성전)를 수행하는 전사들의 이미지. 그리고 9.11 사건 이후로 다가온 부정적 이미지와 아프간 전쟁 이후로 불쌍한 이미지..정도가 다이다.

 

이슬람에 관해 알고 싶긴 하지만 꾸란을 읽어볼 수도 없고, 제대로 알아볼만한 창구가 없는 상황에서 알게 된 것이 '청소년을 위한 이슬람과 꾸란'이다. 이전에 같은 시리즈인 국부론과 자본론을 읽어보고 만족했었기 때문에 이슬람에 대해 입문서로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이슬람교는 '알라신'을 믿고 경전으로는 '코란'을 읽는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나마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통해 '알라'라는 단어 자체가 '신'이라는 의미라 '알라신'이 아니라 '알라'라고 해야 하고, '코란'은 영어식 발음이고 '꾸란'이 원래 발음에 가깝다는 것 정도는 알게 되었었다. 예언자 '마호메트'도 사실 '무함마드'이다.

 

'이슬람과 꾸란' 책을 통해서는 무함마드가 이슬람교를 확산시키기 이전인 무지의 시대에서부터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은 이후로 이슬람교가 박해받으면서도 점차 퍼져나가게 되는 과정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이슬람교의 핵심과 특징이 무엇인지, 꾸란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왜 그 내용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알라를 믿게 하였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최근에는 근본주의자들이 지배하는 이란이나 여타 중동 국가들을 통해 이슬람교가 시대에 맞지 않고 너무나 보수적이라는 인상을 쉽게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자는 항상 온몸을 가리고 외출해야 하고 남자 또한 정도는 덜하지만 마찬가지다. 여성의 사회 활동이나 야외 활동 또한 제한되는 등 성차별적 요소도 존재한다.

 

하지만 초기의 이슬람교는 보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무지의 시대, 에는 상당히 진보적인 가르침을 전파했다. 알라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기 때문에 노예제를 폐지를 주장했고, 남아 선호사상으로 여자 아이가 태어나면 바로 땅에 묻어버리는 풍습이 있던 당시 사회에서 그런 행동을 금하게 했다. 또한 성장한 후에도 인간보다는 물건에 가까운 취급을 받던 여자도 평등한 인간으로 대우받도록 했으며 심지어 유산 상속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무함마드는 연설을 통해 평등과 인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오! 사람들이여, 인류는 모두가 아담과 이브의 자손으로 한 핏줄을 이어 받은 형제입니다. 아랍인이 비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또한 비아랍인이 아랍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지 않으며, 흑인 또한 백인보다 우월하지 않습니다. 우열은 오직 하나님을 믿는 경외심에 있습니다. 또한 모든 무슬림은 서로가 서로에게 형제이며, 무슬림들은 모두가 하나의 움마(공동체)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평등을 비롯해 인권향상에 힘썼던 이슬람이었건만 시대의 변화를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제는 너무나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이 1400년 후의 시대 변화를 예상하지 못하고 계시를 남긴 무함마드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시대가 변했음에도 이슬람의 원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본인들에 유리하게 교리를 이용하는 자들이 문제일 것이다.

 

이슬람교의 핵심은 '유일신'을 믿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우상 숭배를 멀리하고, 유일신 하나님을 믿으며, 선을 행하라'는 것이 전부이다.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어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나 유대교같은 타종교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슬람에서 말하는 유일신 하나님, 알라, 는 예수님을 인간 세상에 내보내고 부활시켜 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말한다. 즉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는 같은 신을 섬긴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각 종교들의 입장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비종교인인 내가 볼 때는 그것이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증오할 정도인가..라는 의문에 자신있게 'YES'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이스람이 가진 특징 중 하나는 관용이다. 이는 유일신에 대한 것에는 타협이 없지만, 타인을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관계없이 평등한 인간으로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타종교 신자에 대해서도, 유일신을 섬긴다면 마찬가지다. 천년이 넘게 서로 으르렁거리긴 했지만 각자 자신의 종교적 가르침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면 굳이 싸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이슬람이란 종교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당시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었던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독교나 불교와 같은 다른 종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종교이든 핵심 교리와 경전에 담긴 말들은 바르게 살아가는 법을 이야기 한다. 무조건적인 사랑, 평등, 관용..뭐라고 표현하든 그 핵심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를 믿고 행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행하는 사람에 따라 선한 목적을 가진 일도 나쁜 결과를 불러올 수 있고, 나쁜 목적을 가졌더라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어떤 종교를 믿든 간에 타인을 존중하고 사랑으로 대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참된 종교인이 아닐까.

 

이슬람교, 꾸란의 가르침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현재의 중동, 이슬람 세계에 대해 알고 싶다면 비추.

by 청춘한삼 2013. 3. 17. 20:11

[그여자와 책] - 바람을 뿌리는 자


2011년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의 엄청난 인기를 보며 한번쯤 읽어봐야겠네..생각하고 있던 넬레 노이하우스의 책을 이제야 읽어보게 되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이 내용 상으로도, 출간 시기로도 '바람을 뿌리는 자'보다 앞선 이야기라서 먼저 읽으려고 했는데 그여자 Gene께서 '바람을 뿌리는 자'를 먼저 읽어보라고 해서 읽은 순서는 거꾸로다. (알고보니 내용이나 출간 시기와는 별개로 작가가 작품을 쓴 순서로는 '바람을 뿌리는 자'가 먼저라는 깊은 뜻이..) 


바람을 뿌리는 자 - 타우누스시리즈.5
카테고리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넬레 노이하우스 (북로드,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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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는 여형사 '피아'와 그녀의 고참이자 파트너인 수사반장 '보덴슈타인'이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다. 내가 이전에 읽었던 추리소설들은, 엘러리 퀸처럼 경찰과 탐정의 협업도 있긴 했었지만 홈즈나 뒤팽, 미스 마플 같은 탐정에 의한 소설이 대부분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에서 경찰들에 의한 추리를 접하긴 했었지만 경찰들만으로 이루어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장편소설은 나에겐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사실 경찰들은 추리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빛내주기 위한 우둔한 - 사실은 평범한 - 사람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니. 

책갈피의 작가 소개에서는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남다른 직관으로 사건을 풀어가는 여형사 피아'가 등장한다고 되어 있는데 '바람을 뿌리는 자'에서는 보덴슈타인의 냉철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은 그다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감정적으로 쉽게 흔들리고 불안해하는 사람의 면모를 더 많이 보여주었고, 덕분에 피아가 본인의 능력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며 사건을 추적해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체 시리즈 중 이 책만 그런 것인지 나머지도 어느 정도 그런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아마 이전에는 안그랬으니 소개글을 그렇게 썼겠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던 홈즈와는 달리 최근의 탐정들은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도 그렇고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삼색털 고양이' 시리즈도 그렇고 '벚꽃피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와 같은 작품도 그렇다. 저기 어디 하늘 위에서 내려온 완벽한 탐정이 아닌 우리 옆집에 사는 아저씨나 아는 형, 누나와 같이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감성의 소유자들이 범죄자를 쫓는 경우가 많아진 것 같다. 이 작품의 보덴슈타인은 이혼한 아내가 자신 몰래 바람을 피웠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다 새로운 사랑을 찾고, 피아는 이혼한 전남편과 일 때문에 계속 만나며 스트레스를 받고 현재의 남자친구와도 일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 때문에 힘들어한다. 이렇게 감정에 영향을 받는 등장인물들은 독자에게 자기 자신들을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 특별하면서도 보통의 사람처럼 특별하지 않도록 느끼는 것을 도와주어 독자들이 쉽게 이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작품에 몰입하는 것을 도와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서 무엇이든 겉으로 보는 것과 실체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평범하고 행복할만한 가정이나 연인들도 속으로는 곪아있는 갈등이 있으며, 공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시민단체에서도 개인의 이익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모두가 가슴 속에 남들이 모르는 무언가 - 그것이 슬픔이나 분노같은 감정이건 비밀이건 - 를 감추며 살아가고 있었다. 심지어 주인공인 경찰들까지도. 

개인적으로는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너무도 큰 사건에 연관된다는 것을 알고 왠지 모를 불편함이 들었었다. 왜 굳이 추리소설에서 한두명의 영웅이 지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을 만든걸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나중에 작가의 후기를 보며 그것에 관련된 사건이 이 작품의 시작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러려니..하게 되었다. 어차피 소설이기도 하고.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을만한 추리 소설이었다. 이 책을 친히 빌려주신 그여자 Gene에게 무한한 감사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원한다면 누구에게나 추천. 

 


by 청춘한삼 2013. 3. 10. 20:30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 이은 또 하나의 '십자군 이야기'. 내가 읽은 순서 때문에 이렇게 적긴 했지만 실제로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먼저 출간되었었다. 하지만 '로마인 이야기'로 널리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가 상업적으로는 더 많이 판매되었을 것이다.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까지 총 4권으로 이루어진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는 각종 인터넷 서점에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뽑혔었다. 하지만 난 이제야 봤을 뿐이고. 

십자군이야기.1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문학동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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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인간이 여러 난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할 때 떠올리는 아이디어다. 

의미심장한 문장으로 '십자군 이야기'시리즈는 시작된다. 비단 중세 유럽만이 아니라 1000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말이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말에 고무되어 홀연히 일어선 십자군의 종교적 신념과 용기, 인내심에 찬사를 보내는 대신 위의 문장으로 책을 시작한 것에는 십자군 전쟁의 부당함과 현재 벌어지고 있는(그리고 벌어졌던)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을 비판하는 의미가 담겨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와 병행해서 읽었기 때문에 같은 소재를 다룬 둘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오노 나나미와 김태권은 모두 십자군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그 둘은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김태권은 이전 포스팅에서 적었던 바와 같이 주로 패러디를 이용하지만 이에 더해 직접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시오노 나나미는 앞의 문단에서 언급한 책의 첫문장처럼 에둘러 비판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보니 직접적으로 비판의 날을 세우는 김태권에 비해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이 둘의 성향 차이일수도 있고 만화와 글이라는 전달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다. 

김태권이 만화스러운 면을 최대한 이용하며 상세한 설명보다는 간결하게 팩트와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면 시오노 나나미는 글을 통해 역사책이 아닌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생생한 묘사와 서술을 통해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선사한다. 

시오노 나나미가 책에서 밝혔다시피,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제삼자에 의한 기록이 없고 당사자들 중에서도 정확성을 기하는 민족에 의해 기록된 것이 없기 때문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모두 객관적으로 100% 신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한계를 딛고 두 저자 모두 많은 자료를 조사하여 서술했겠지만 좀 더 신뢰할만한 자료, 혹은 이야기의 전개에서 꼭 들어가야 할 - 그리고 빠져도 될만한 - 내용을 고르는데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두 책에서는 팩트가 조금씩 다른 부분이나 어느 한쪽에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거나 아예 빠져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어찌보면 전체 사건을 보는데는 상호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군중십자군(민중십자군)이 독일에서 행한 학살에 대한 내용은 무지에 의한 폭력에 대한 비판을 위해 책을 썼던 김태권에게는 꼭 들어가야 할 사건이지만 1차 십자군 전체를 1권에서 다루어야 하는 시오노 나나미에게는 꼭 들어갈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안티오키아에서 발견된 '성스러운 창(롱기누스의 창)'을 발견하고 이후에 이 창의 성스러움을 증명하기 위해 불의 심판을 받은 사람을 김태권은 은자 피에르로, 시오노 나나미는 바르톨로메오라는 순례자의 시종으로 묘사하고 있다. (김태권에 따르면 피에르의 전체 이름이 피에르 바르톨로메오이기는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 생각에 바르톨로메오가 은자 피에르와 동일 인물이었다면 당연히 은자 피에르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료가 부정확하기 때문일 것인데 저자들의 선택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기록의 차이가 있다고. 

그 외에도 같은 인물, 인물이 한 행동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리기도 하는데 탄크레디를 비롯한 여러 인물의 평이 조금씩은 엇갈리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다르기도 한데 이건 둘 다 이름이 어떻게 선택되었는지를 언급해두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되지 않을거라 본다. 다만 김태권과 다르게 시오노 나나미는 본인이 참고한 자료들을 책에서 정리하거나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그 점이 이 책에서 빠진 더 많은 내용을 바라는 독자에게는 아쉬울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1차 십자군의 시작에서부터 십자군의 1세대의 주요 인물들이 무대에서 모두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험난한 원정 끝에 4개의 십자군 국가가 세워지고 이들이 안정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다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종교의 이름으로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하는 종교에서. 자신들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어도 되는 것인가. 무능한 지도자들 아래에서 고통받는 것은 결국 민초들일 수 밖에 없는가. 폭력을 통해 얻은 행복이 지속 가능한 것인가. 협력이 필요할 때 협력을 이끄는 실질적인 동기는 어떤 것이 있는가..이런 것들이 내가 1차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게 되면서 느낀 것이다. 나머지는 '반전'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을텐데 마지막의 협력에 대한 생각은 다음과 같은 시오노 나나미의 평가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 부분을 옮기고 이만 마무리를. 

황제도 왕도 참전하지 않은 제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유럽 각지에 영지를 가진 제후들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 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다. 
이 점이 이기적이고 분열을 반복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였던 이슬람측 영주들과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제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십자군 전쟁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이 궁금하다면, 혹은 이미 알고 있다면 강추. 

덧.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는 나머지 '십자군 이야기' 1~3권의 내용을 그림으로 볼 수 있다. 책을 펼쳤을 때 오른쪽 페이지에는 귀스타프 도레의 판화 그림이 있고, 왼쪽 페이지 상단에는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역이 지도로 표시되어 있으며, 왼쪽 페이지 하단에는 책에서 발췌한 간단한 설명이 나와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도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책을 읽다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잘 몰라서 답답하고 이해도 잘 안될 때가 많은데 지도를 통해 훨씬 더 쉽게 이해하며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 물론 '십자군 이야기' 각권에도 지도와 삽화가 있긴 하지만 앞으로 페이지를 계속 넘겨가며 보기 귀찮을 때가 많으니. '그림으로 보는 십자군 이야기'만 보는 것보다는 '십자군 이야기' 1~3권을 보면서 참고하거나 1~3권을 통해 내용을 어느 정도 숙지한 후에 정리하는 겸 보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십자군 이야기

저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1-07-07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십자군 전쟁을 생동감 있게 보여준다!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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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춘한삼 2013. 3. 9. 08:30
유럽이나 역사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도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는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전쟁의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십자군 전쟁은 기사도를 지닌 기사들이 종교적 신념에 의해 성지인 예루살렘을 이교도의 손에서 구해내고, 성지를 이교도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200년간 수행된 전쟁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런 숭고한 종교적 이유 외에도 경제적, 사회적 이유가 있었다는 내용도 역사책들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 정도가 내가 어릴 때 세계역사책에서 읽어서 알고 있던 십자군 전쟁에 대한 내용의 대부분이다. 거기에 소년 십자군의 비극이나 사자왕, 살라딘의 존재 정도가 추가되는 것이 내 지식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이유만으로 200년이나 전쟁을 - 탄압이나 싸움 수준이 아니라 무려 전쟁을 - 치루는 것이 비종교인인 나로서는 그다지 이해가 되지 않고, 십자군이 항상 이교도만을 상대로 전쟁을 한 것은 아니었던 기억이라 종교적 이유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와 십자군 전쟁 자체에 대해서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더해 나는 전쟁이라는건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광기를 가지지 않으면 수행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200년의 세월 동안 전쟁을 지속시킨, 십자군과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광기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은 생각이 제일 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1 : 군중십자군과 은자피에르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김태권 (비아북,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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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에 대한 책을 살펴보다가 알게 된 책 중 하나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만화책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에 의해 흔히 생각되는 - 웃고 즐기기 위한 - 만화보다는 학습만화에 더 가깝다. 이전에 큰 인기를 얻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를 떠올리면 되려나.

이 책은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부시를 비롯해 현재 사회를 패러디하고 가끔은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말장난을 하기도 한다. 그런 패러디나 말장난들로 자칫 책이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책을 가볍게 보지 못하게 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책의 메시지이다. 작가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통해 작품을 쓰게(?) 되었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가는 '반전'과 '평화'의 정신을 책을 통해 알리려 한다. 또한 다른 것에 대한 '포용'과 '공존'도 포함한다.
다음으로는 작가의 철저한 고증이다. 뭔가 대충 그린 듯한 그림들 속에는 철저한 고증을 통한 중세 유럽과 십자군의 모습이 살아있다. 그림만이 아니라 내용 또한 마찬가지다. 패러디로 인해 사건의 내용이 바뀌거나 할수도 있지만 최대한 팩트에 가까운 내용을 밝히기 위해 많은 자료들을 직접 인용하고 있다. (물론 번역본으로) 물론 수많은 대비되는 기록들 중에 작가에 의해 선택된 자료들이긴 하지만 최종 판단은 독자의 몫이기도 하고, 작가가 참고한 자료들이 책 뒤에 나와있기 때문에 원한다면 직접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십자군 전쟁이 대부분 유럽의 기록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상대편이거나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던 이슬람과 비잔틴 제국의 기록에 의한 자료들을 통해 십자군 전쟁을 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는 십자군 전쟁을 다루는 책이긴 하지만 시리즈의 1권은 로마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왜 로마가 전쟁을 계속하며 호전적인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쌓아갈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로마의 뒤를 이어 십자군이 등장한 중세도 등장한다. 어떤 사회에서 발생한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그 사회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기 어려운 것처럼 십자군이 등장한 중세의 유럽 사회상이 잘 설명된다. 책에 나타난 중세 유럽의 사회상을 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모든 것을 현재의 기준과 상식으로 생각하고 동일시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재판의 방식이라든가 전 유럽인이 가지고 있던 신앙에 대한 믿음과 같은 것은 오늘날의 - 혹은 현재 나의 - 기준으로는 비이성적, 비상식적이었다. 

1권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십자군은 1차 십자군에 포함되는 '군중 십자군'이다. 제대로 훈련된 기사들로 이루어진 군대가 아니라 빈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군대와 이를 이끄는 은자 피에르의 험난한 원정이 펼쳐진다. 이를 통해 당시 시대를 지배한 광기는 '무지'와 '편견', 그리고 '부조리한 사회'에 의해 탄생하고 증폭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보면서 현재의 교육이 -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포함해서 - 사람들을 무지와 편견으로부터 구출해주는데 얼마나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또한 수만명의 빈자들을 원정에 참여하게 만든 당시의 희망없는 사회가 다시 출현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라는 의문도 들었다. 사실 끝난지 50년이 조금 넘은 히틀러의 독일에 의한 전쟁은 - 본인들도 십자군을 칭하긴 했지만 - 희망없는 사회와 무지, 편견을 통해 진행된 전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런 광기가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해졌다. 과연 작가가 말하는 반전과 평화, 포용과 공존의 시대가 올 수 있을까. 그런 사회에 비교적 가까워보이던 북유럽도 최근에는 그렇지 못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 불안하다. 

책의 마지막에 있는 '고전 읽기'도 놓치기는 아깝다. 1권에서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포함해 '루시퍼 이펙트'에서 나왔던 스탠포드의 감옥 실험, 밀그램의 권위에 대한 실험 등을 통해 '폭력의 일상성'에 대해 논의한다. 이미 유명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들어본 적 없다면, 더더욱 필독이 요구된다. 

십자군 전쟁의 본모습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전쟁의 본질에 대해 알고 싶다면 강추.
중세 유럽과 이슬람 사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3. 1. 22:47
얼마전부터 십자군 전쟁에 대한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보다보니 당시 사회인 중세 유럽과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생겨나고 있다. 기사도라는 단어만으로도 친숙하다고 느낄 수 있는 중세 유럽과는 달리 이슬람 세계는 너무 배경지식이 없다보니 쉬운 난이도의 책부터 읽어보려 하고 있다. 그 이야기는 그 책들 소개와 함께 나중에 차차 하도록 하고, 이번에 소개할 책은 '중세의 뒷골목 풍경'이라는 책이다. 내용을 충분히 짐작 가능하게 하는 제목이다.  

중세의 뒷골목 풍경 // 유랑악사에서 사형집행인까지 중세 유럽 비주류 인생의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양태자 (이랑,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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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중세 비주류들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다. 책 표지에 나와있듯이 유랑 악사라든가 거지, 사형집행인, 유대인과 같이 듣기만 해도 힘들게 살았음직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당시 유럽인들의 생활상을 재미있게 풀어쓴다. 하지만 '뒷골목'에 살고 돌아다녔을 비주류 인생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중세 사회의 '뒷'이야기도 여럿 소개된다. 사실 내용, 분량면에서는 '뒷골목' 이야기보다 '뒷이야기' 부분이 더 많아서, 왜 굳이 제목을 '뒷골목 풍경'으로 지었을까 의문스럽긴 하다. '뒷골목'을 '뒷이야기'의 의미로 쓴 것이라면 제대로 지은 것이겠지만 내가 책을 읽기 전에 생각했던 '뒷골목'은 '하층민'의 의미였기 때문이다. 나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당시 비주류일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귀족이건, 평민이건 자신의 삶을 살아가려 힘쓰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의 많은 여성들도 저렇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와 조선, 모두 신분제 사회다보니 아마 중세의 귀족 집안 여성과 조선의 양반 집안 여성은 비슷한 사고와 고민을, 중세의 하층민 여성과 조선의 평민, 노비 여성은 마찬가지로 비슷한 생각과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중세보다는 조선이 그나마 더 이성적인 면이 있어 억울한 사람의 수는 더 적지 않았을까 싶고. 적어도 조선시대에는 마녀 사냥을 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재판을 받을 수도 있었으니. 

개인적으로는 귀족들의 생활, 종교계, 정치 면에서의 뒷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특히 여자 교황의 존재와 그녀가 여자라는 것이 밝혀지는 극적인 상황은 깜짝 놀랄 정도랄까. 

역사를 좋아한다면 추천. 
역사 중에서도 정사보다는 민초의 삶이나 야사에 관심이 많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2. 23. 20:01
스포츠를 소재로 하는 책은 크게 네 가지 정도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자체를 설명하거나, 정반대로 몇몇 소설에서 스포츠는 맥거핀으로만 이용되기도 한다. 가장 흔한 것은 스포츠에 관련된 사람에 대한 성공/실패담 혹은 본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일 것이고, 반대로  가장 흔하지 않은 것이 스포츠를 통해 다른 분야들, 이를테면 사회/경제/경영/역사 등,을 설명하는 것이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이하 축구는..)'라는 긴 제목의 책은 이 중 마지막 갈래에 속한다. 이 책은 축구를 무려 세계화와 연관시킨다. 책의 원제는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이다. 한글로 된 제목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 책을 읽고보니 원제가 더 적절하다.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설명하나'와 같이 직역을 했다가는 너무 딱딱해 보여서 책이 안팔릴 것이라고 생각한 출판사에서 좀 더 도발적면서도 덜 어려워보이는 제목을 붙인 것이 아닌가 생각되긴 하지만 2005년 출판된 책이 벌써 절판된걸 보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축구는어떻게세계를지배했는가
카테고리 취미/스포츠 > 레포츠
지은이 플랭클린 포어 (말글빛냄,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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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우리나라에서는 '세계로 나아가자'는 구호는 진보적이고 진취적으로 여겨져 왔고, 세계의 구성원으로 편입되고자하는 욕구는 외국-특히 서구 선진국-들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만들어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우리나라는 '세계화'되어 왔다. 

앞에서 '세계화'라는 말을 써왔지만 '세계화'라는 말의 의미는 분야에 따라서나 개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확산,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확산, 문화적으로는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의 확산과 다양한 고유 문화들의 공존, 사회적으로는 국적, 민족, 인종, 종교를 포함한 다양한 차이를 인정하고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이런 것들이 내가 생각하는 세계화이다. 

축구는 전세계인의 스포츠이다. UN에 가입한 국가보다 FIFA에 가입한 국가의 수가 더 많고, 유럽선수권(유로), 월드컵과 같은 축구 대회에는 (거의) 전세계가 열광한다. 가장 폐쇄적인 국가 중의 하나인 북한도 월드컵에 참여하며 TV로 방송까지 해줄 정도이다. 또한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와 같은 나라의 축구 클럽에는 수많은 국적의 선수들이 축구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함께 뛰고 있고, 우리는 TV,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경기를 보거나 결과를 확인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축구는 당연히 세계화의 수혜를 받아왔고, 동시에 세계화를 이끌었다. 이런 점을 알리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고 다음과 같이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내가 소파에 누워 축구경기를 관전하며 깨달은 바로는, 축구야말로 그 어느 경제기구보다 앞서서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었다. 또한 나는 사람들이 축구의 세계화가 가져다줄 더 큰 이익을 깨닫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을 주제로 누군가 책을 써야 할 필요가 있으며, 책을 쓰기 위해서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축구경기를 관전하고, 훈련을 지켜보고, 축구 영웅들을 인터뷰하는 임무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니던 <뉴 퍼블릭> 잡지사를 8개월 동안 휴직하고 그토록 간절히 가 보고 싶어하던 축구 경기장들을 찾아다녔다. 

2001년 스포츠로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를 정도로 세계 평화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을 정도로 긍정적인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 축구이지만 정반대로 아직 세계화와 평화 면에서 도움이 되지 못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경기장 내에서 보여지는 '인종차별'일 것이다. 세계화를 통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축구장에서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만나면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다른 점'을 '틀린 점'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FIFA에서는 몇 년 전부터 'Kick the racism'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경기장 내의 인종차별을 근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큰 문제거리로 나타나고 있다. 

인종만이 아니라 종교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여전히 존재하며 줄어들기는 커녕 이를 이용한 마케팅이 존재하는 등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식의 움직임이 있기도 한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축구장에서 인종이나 종교, 민족에 의한 차별과 갈등은 축구장 밖에서보다 더 적게 나타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인 선수 중 백인을 흑인에 비해 선호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등의 행위는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없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갈등은 주로 성남과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그것도 지역사회에서의 문제였지 적어도 경기장 내에서 갈등이 나타나지는 않아왔다. 물론 고양이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한다면 성남에게 시비를 걸지도 모른다만.. 어쨌건 저자는 축구장 내에서의 이런 문제를 '포르노그라피'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구단들은 인종차별에 불을 지피거나, 아니면 어쩌다 한번 이를 막으려는 시도만 흉내 내는 정도다. 인종차별이 사업상으로는 오히려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서조차 그들은 인종적 정체성을 요구하는 사람들로 응원단을 조직한다. 종족의 편에서 실재 싸움에 가담케 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 외에도 축구는 세계화에 정반대되는 민족주의에도 이용되어 세르비아에서는 서포터즈가 준군사부대로 이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흔히 '훌리건'으로 알려진 폭력적인 인간들을 양산하기도 한다. 

이런 차별과 폭력 외에도 아직 제대로 자본주의화 되지 못하고 부패한 클럽과 축구협회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축구 클럽을 통해 장기 독재를 이루었던(그리고 다시 이에 도전하는) 붕가 베총리, 축구장을 통해 분출되는 사회 변화의 욕구와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책에서 소개되고 있다. 

세계화를 축구를 통해 바라보는 관점 외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이야기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인터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세르비아의 준군사조직이자 폭력집단이었던 서포터즈의 회장과 고문, 전 지도자의 미망인을 비롯해 수많은 축구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라는 것이 모든 진실을 드러내기에는 부족한 수단일지 모르지만 인터뷰만으로 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기에 책의 내용을 더 생생하게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책이 좀 더 쉽게 읽힐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한가지 단점을 꼽자면 번역 과정에서 축구 클럽이나 사람 이름이 지금 통용되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이 2005년 번역되서 나왔고, 그 때는 아직 유럽, 남미 축구가 우리나라에서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었기에 어쩔 수 없는건 아니지만 이해는 할만한 단점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이 글의 앞부분만 보면 골치아프고 어려운 내용일거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책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총 열 개 챕터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많은 인터뷰들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와서 쉽게 읽힌다. 각 챕터의 소재들 또한 축구 경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올만한 내용들이다. 

책의 추천 유무는 아담 고프닉(Paris to the Moon의 저자라는데 난 누군지 모르겠다)의 평가로 대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의미심장하게 재미있는 책이며,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재미있게 의미심장한 책이다. 
by 청춘한삼 2013. 2. 16. 22:56
내가 어릴 때 최고의 탐정은 언제나 셜록 홈즈였다. 최초의 탐정인 뒤팽, 회색 뇌세포를 가진 포와로, 앨러리퀸, 미스 마플, 브라운 신부와 같은 여러 탐정들이 존재했지만 가장 유명하고 대단한 탐정은 셜록 홈즈였다. 아마 나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을거라 생각한다. 최근에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주드 로가 출현한 영화도 개봉하고 드라마도 방영하면서 추리소설과 친하지 않던 사람들도 홈즈를 알게 되고 매력을 느끼고 있다. 
 
셜록홈즈:실크하우스의비밀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지은이 앤터니 호로비츠 (황금가지,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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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계곡에서 죽은줄만 알았던 홈즈가 돌아왔다 다시 죽은지 한참이 됐던 홈즈의 소설이 또다시 출판됐다. 하지만 작가가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은 아니다. 코난 도일 재단에 의해 공식 셜록 홈즈 작가로 임명된 앤서니 호로비츠가 홈즈를 다시 부활시켰다. 몇년 전에는 피터팬으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통해 운영되는 아동병원의 재정상황이 안좋아지면서 공식 작가에 의해 피터팬이 돌아오기도 했었는데(돌아온 피터팬) 홈즈의 경우도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원작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의 가장 큰 적은 원작일 때가 많다는 점에서 이 소설도 오히려 원작 팬들에 의해 사생아 취급을 받을 수도 있을텐데 그런 평가가 내려졌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일단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공식 작가에 의해 단발성으로 나오는 후속편이다보니 당연히 장편이고, 스케일 또한 크다. 소설에서 등장했던 거물급 인물들은 모두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찌보면 로버트 다우니 Jr.이 나왔던 영화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건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켜 마치 하나의 사건처럼 진행시키는 스토리의 미끈함과 영화에서보다는 원작 소설에 좀 더 가까운 등장인물들은 좀 더 영화보다는 이 책에 한표를 던지게 한다. 

셜록 홈즈 신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라 수많은 리뷰들이 있을 것이고 아마 대부분은 이 책의 장점에 대해 적었을 것으로 생각되니 나까지 굳이 한 글자를 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신 아쉬운 점만 좀 적어보자면, 우선 제목에서도 나와있는 '실크 하우스'의 존재를 홈즈가 확신하는데 이용되었던 증거가 너무 빈약해 보였다. 내가 홈즈만큼의 추리력을 가지지 못해서겠지만 나로선 그 증거들만 가지고 의심해볼 순 있겠지만 그정도까지 확신하기는 힘들지 않나 생각한다. 더욱이 '실크 하우스' 이름의 비밀은 이후에나 알게 되었으니. 다음으로는 위기 상황을 탈출할 수 있게 해주는 우연과 행운이 셜록 홈즈보다는 아르센 뤼팽이나 영화에서 더 어울릴 것 같은 정도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점들은 셜록 홈즈의 장편을 본지 너무 오래된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므로 셜로키언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평가일 수도 있다. 

작가가 다르긴 하지만 원작에서 나왔던 내용들이나 배경들이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녹아 들어있고, 베이커가 221B의 탐정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으로도 충분히 읽어볼만한 소설이라 생각한다. 또한 다시 원작들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하기도 한다. 

셜로키언이라면 이미 다들 읽어보았을테니 굳이 추천할 필요는 없음.  
근대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읽어보고 싶다면 추천.
전설보단 레전드 명탐정의 새로운 추리와 모험의 세계를 엿보고 싶다면 추천.
사회파의, 혹은 아주 가볍게 진행되는 추리소설 대신 고전적인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을 보고 싶다면 추천.

by 청춘한삼 2013. 2. 11. 23:11
고등학생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어머니께서 아침을 준비하시며 켜놓은 라디오에서는 항상 '손석희의 시선집중(이하 시선집중)'이 나오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프로를 들으시며 아침을 준비하신다. '시선집중'에 고정출연하던 시사평론가로는 김종배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정치적 외압을 받았다는 스캔들로 본인의 이름이 뉴스에 나오곤 하더니 '시선집중'에서 하차했다..고 한다. 평소 챙겨듣진 않았기에 완전히 물러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씩 토론에서 패널로 나오거나 하기는 하는데 뉴스브리핑은 다른 기자나 평론가들이 하는듯 하다. 지금 그는 '오마이뉴스'에서 '이털남'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대선 때는 나름 후보들간의 공약 검토도 하곤 했었지만 지금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매일 하나의 이슈를 '털고' 있다. 새누리당이나 흔히 보수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잘 출현하지 않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그들이 나오면 정말 털릴만한 이슈를 자주 다루기 때문에 그들로서도 출연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 그가 작년 책을 냈다. 두권을 냈었는데 하나는 유권자들을 분석한 책인 것 같았는데 내 관심을 끌진 않았고, 둘 중 먼저 나온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는 내 관심을 끌었다. 아마도 이털남 김종배가 쓴 언론 사용설명서다보니 어느 정도 믿음이 갔고, 제목이 섹시하게 뽑혔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거다. 

누가거짓말을하고있는가
카테고리 정치/사회 > 정치/외교
지은이 김종배 (쌤앤파커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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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생각해보면 '언론, 미디어'에 의해 받아들여진 생각들이 많을 것이다. 이 때문에 '촘스키럼 생각하는 법(이하 '생각하는 법')'을 소개하기도 했었는데 우리나라 대중들은 너무나 쉽게 언론, 미디어의 주장에 동조하거나 따라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일이 있기는 했었는데 저자도 책의 서문에서 우리나라에서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전망을 소개하며 대중들의 쏠림 현상과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다른 건 몰라도 대한민국에서 쏠림 현상이 심심치 않게 나타난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특정 사건에 대한 국민 여론이 한쪽으로 급속히 쏠리고, 나아가 주류 여론에 반하는 입장을 가진 사람에게 떼로 몰려들어 매타작을 가하는 현상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 것만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나타나는 쏠림 현상,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경제협력개발기구의 지표가 있다. 우리나라 국민 중 생활정보가 담긴 각종 문서에 매우 취약한 사람들의 비율이 전체의 38%로 OECD 회원국 평균 22%보다 훨씬 높았고, 고도의 문서 해독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에 불과해 20% 대의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캐나다 등에 훨씬 못 미친다는 지표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들의 문서 독해 능력을 비교하는 점수 역시 조사 대상인 22개국 중 꼴찌였다는 지표도 있다. 
문맹률은 최저 수준이지만 실질문맹률은 최고 수준이라는 얘기다. 위대한 발명품인 한글 덕분에 '글자'를 읽는 능력은 최고를 자랑하지만 '글'을 읽는 능력은 꼴찌라는 것이다. 쏠림 현상이 극심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 이유는 이성적, 비판적 사고의 부족이다. 

아무래도 이성적,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언론,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정보들을 제대로 취합하거나 비판적으로 검증, 검토하지 못하고 일단 덮어놓고 모든 것을 믿다보니 개별 사건에 따라 여론이 이리저리 쏠려다니게 되는 것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진영 논리까지 더해져 서로 상대편이라 생각하는 언론, 미디어의 기사, 보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고 눈과 귀를 막곤 한다.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진영논리에 부합하는 정보만을 취하게 되어 점점 더 이성적 비판은 찾아보기 힘들게 된다. 이러한 현실을 극복하는데 조금이라도 손을 보태기 위해 김종배가 책을 냈겠지만 이 책도 역시 진영논리에 의해 그를 반대편, 혹은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읽히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우선 뉴스 내부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방법, 뉴스 외부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논리적인 글쓰는 방법이다. 

첫번째인 뉴스 제대로 읽기에서는 이전 포스팅인 '생각하는 법'에서 다룬 여러 오류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가치 중립적이지 않은 언어 사용을 포함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기사에 숨어있는 오류들을 찾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 책은 '생각하는 법'보다 발생할 수 있는 오류들을 다양하게 다루고 숫자, 통계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 우리가 접했던 기사들(을 조금 변형시킨)의 예시들을 통해 설명하는 바가 훨씬 더 생생하고 쉽게 와닿는 장점이 있다. 

두번째 단락인 뉴스를 비판적으로 보기 위해 기사 내부에 포함된 오류가 아니라 사건 자체와 이를 보도하는 뉴스 간의 간의 간격, 즉 텍스트 외부의 요인을 살펴볼 것을 지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별 뉴스를 단발적으로 살피는 것이 아니라 관련되는 여러 뉴스를 시간에 따라 추적하며 취합하여 사건의 기승전결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언론사, 미디어에서 각 뉴스에 가진 정치적 입장도 고려대상이 된다. 하지만 이 방법은 말처럼 쉽지 않다. 모든 뉴스가 각 사건의 기승전결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지는 않으므로 각각의 뉴스들에서 fact를 제대로 발라내고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기 위해 꾸준히 뉴스들을 모으고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성적, 비판적 사고 유무 이전에 생활인들이 모든 사건을 그렇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 쉽지는 않고, 그런 생활인들을 위해 언론, 미디어가 그 역할을 대신 해주어야 하는데 그들 또한 그들 나름의 노림수를 가지고 뉴스 소비자인 생활인들을 속이려 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생활인들을 힘들게 만든다는 사실이 '알고보니', '충격', '경악' 할만하다. 그래서 그 많은 뉴스들이 알고보니 충격이고 경악했나보다. 

마지막 단락인 글쓰기 방법은 두고두고 읽으며 참고하고 새겨들을만 하다. 저자가 시행한 글쓰기 강좌의 참가자들이 썼던 글들을 토대로 해당 글의 문제점들을 설명하기 때문에 예시들이 전문가들의 글만큼 세련되거나 탄성을 자아내지는 않고 좀 더 인간적(?)인 면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논리적인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표를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말하고자, 혹은 주장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정한다면 글의 전제나 결론이 자연스럽게 도출되고 남은 것은 전제와 결론 사이를 적절한 소주장과 그에 맞는 문장들로 채우는 것이다. 물론 적절한 소주제와 문장을 알맞게 배치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기는 하다만. 

전체적으로 이 책은 언론, 미디어 사용설명서이자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논리적 글쓰기 교본이다. 저자의 표현으로는 민주 시민들의 '주권 사용법'이자 정부와 언론의 '월권 방지법'이다. '생각하는 법' 또한 언론, 미디어 사용설명서이긴 하지만 이 책은 문제 인식에서부터 내용 중 예문뿐만 아니라 언론, 미디어에 대한 관점, 비판에 대해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록 저자에 대해 한쪽 진영에서 비교적 배타적 입장을, 다른 진영에서는 우호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책에서 언론, 미디어에 대해 진영 논리에 따른 무조건적인 감싸기나 때리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런 면에서는 진영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어보아야 할 책이 아닐까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숨어있는 보석같은 책이랄까. 

추천 여부는 지난번 포스팅인 '생각하는 법'과 거의 같다. 
귀가 얇은 사람에게 추천. 
(어떤 언론이건)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에게 추천. 
비판적 시각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 
논리적으로 글을 쓰는데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비슷한 카테고리에 들어갈만한 책으로는 아래와 같은 책도 있으니 관심 있으면 참고하시라. 
신문읽기의 혁명(개정판)
카테고리 정치/사회 > 언론/신문/방송
지은이 손석춘 (개마고원,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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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건 구판이었는데 개정판이 있었다.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3. 2. 2. 22:52
촘스키가 지은 제목이라면 아무리 촘스키라고 하더라도 건방져보일 수 있는 제목의 이 책은 다행히도(?) 촘스키의 저서는 아니다. 그러면 붕어빵에 붕어는 전혀 들어가지 않고 국화빵에 국화가 전혀 들어가지 않듯이 이 책에도 촘스키가 전혀 등장하지 않을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촘스키가 잠시 언급되기는 한다. 책 뒷면의 추천사 중 하나를 촘스키가 쓰기도 했고. 하지만 촘스키와 제목이 별 관련이 없는 것이, 책의 원제는 'A Short Course in Intellectual Self-Defense'이다. 어떻게 봐도 딱딱하고 안팔릴만한 제목이다보니 국내에 번역될 때 제목에 촘스키를 넣어 좀 더 섹시한 느낌을 더한 것 같다. 굳이 원제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부제인 '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을 보면 책의 성격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 / 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노르망 바야르종 (갈라파고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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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다루는 소재는 크게 언어, 숫자, 경험, 과학, 미디어, 이렇게 총 다섯가지이다. 언어와 숫자를 이용한 미디어에 속지 않는 법과 경험에 의한 착시, 과학을 빙자한 비과학에 속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말과 글을 포함한 언어를 이용해 남을 속이고 반대로 남에게 속는 방법은 다양하다.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다거나 완곡한 표현을 통해 진실을 가리고 다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또한 단정적인 표현을 피하면서 빤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는데 본문에 나온 예를 보자. 
 
기자 : 장관님, 몬트리올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실 생각입니까?
장관 : 그 중대한 문제에 가장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의해서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계획을 시행할 생각입니다.
기자 : 하지만 아직?
장관 : 문제의 모든 면을 빠짐없이 고려하고, 계량적인 면뿐 아니라 인간적인 면도 소홀히 하지 않는 전반적인 계획이 필요할 겁니다. 혁신적이기도 해야 하고요.

장관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내용이 없는 말을 통해 상황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빤한 표현들은 비단 책에서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이든 운동선수들이 많이 하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겠습니다'와 같은 다짐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숫자를 통한 거짓말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책 소개를 통해 다룬 적이 있는데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다룬다. 일반적으로 통계를 다룰 때 오류가 발생하거나 혹은 발생시키게 되는데 역시나 가장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오류는 평균에 대한 오류이다. 평균을 구할 때 경우에 따라서 모든 값을 고려하는 평균값을 이용할지, 극단적인 값을 베재할 수 있는 중앙값을 이용할지, 같은 값이 가장 많은 최빈값을 이용할지를 적절히 선택해야 하는데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거나 어떻게 평균을 구했는지 언급하지 않음으로서 통계를 보는 사람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쉽다. 또한 그래프에서 구간 크기를 임의로 조절해서 변화폭을 과장, 혹은 축소시킨다거나 연속적이지 않은 값을 연속적인 것처럼 보이게, 혹은 반대의 경우를 통해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신문기사 등에서 흔히 나타나는 숫자와 관련된 삽화들의 크기도 해당 숫자들의 크기에 대해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숫자 중에서도 특히 통계의 거짓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아래 책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새빨간거짓말통계 상세보기

저자가 경험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기억은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객관적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혈액형이나 별자리, 점에서 말하는 누구에게나 맞는 일반적인 이야기를 나만의 이야기라고 믿고 신뢰를 보인다. 일부 종교단체들에서 세기말에 나타났던 인지부조화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인간의 비이성적 측면을 나타낸다. 권위에 대한 복종에 대한 밀그램의 실험, 순응에서 비롯되는 잘못을 밝힌 애시의 실험 또한 비이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 중 애시의 실험은 명확한 정답이 있는 문제에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오답을 말하면 실험당사자들도 오답을 말하게 되는 실험이다. 애시의 실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순응은 위험하다.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라!" 이 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행동경제학에 대한 책을 참조하는 것도 좋을거라 생각된다. 난 아직 읽진 않았지만 이 책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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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이유들로 개인의 경험은 의심할만한 요소가 너무나 많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경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과학적 사고이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의 절반 정도는 자연계에서 과학을 배웠을 것이기 때문에 다들 자신에게 과학적 사고가 이미 몸에 배어있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혈액형에 따른 성격 분류 같은 것이 여전히 성행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책에서는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비판적 관점에서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기본 자세와 사이비과학에 속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 도구를 제시한다. 
우선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가르는 기준을 살펴보기 위해 어떤 것이 '과학적'인 것인지를 살펴보자. 과학적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어떤 가정과 주장, 이론이 명확하고 정확하며, 상호주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을 때, 또 그런 검증을 통해 그것들이 참으로 증명되거나 적어도 부분적으로 참으로 여겨져야만 한다. 사이비과학, 혹은 비과학적인 것들은 일반적으로 주장이나 이론이 모호하거나 검증할 수 없거나 검증을 하더라도 참으로 밝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얼마전 떠들썩했던 마야 달력이라든가 혈액형, 별자리를 통한 성격 분류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책에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데 도움을 주는 모델로 SEARCH 모델을 소개하고 있다. 시어도어 시크와 루이스 본이 고안하고 개발한 모델이라고 하는데 누가 만든지 보다는 내용을 기억해야 하겠다. 모델은 다음 네 단계로 구성된다. 각 단계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SEARCH 모델
1) 어떤 주장인지 명확히 정리하라 (State the claim)
2) 그 주장의 증거를 조사하라 (examine the Evidence for the claim)
3) 다른 가정들을 생각해보라 (consider Althernative hypotheses)
4) 타당성의 기준에 맞추어, 각 가정을 평가하라 (Rate, according to the Criteria of adequacy, each Hypothesis)

아직 안읽어보긴 했지만 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제공하는 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책도 있다. 
마지막으로 다루는 것은 미디어이다. 앞에서 다루었던 여러 요인들을 이용하는,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가공, 왜곡하는 미디어에 속지 않기 위해 미디어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미디어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키워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미디어에 대한 불만이 점점 높아지는 실정이다. 특히, 시청률 경쟁에 몰두해 선동성과 선정성이란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한다는 비난이 거세다. 게다가 수년 전부터는 매체의 집중화 현상도 불안 요인으로 더해졌다. 그러나 미디어의 행태와 그들이 민주적인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근심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제도적 기관들이 민주주의를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띤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기관들은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보다 국민을 소외시키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국민을 정치적인 삶의 주체가 아니라 방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도 우리는 미디어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하루바삐 키워야 한다. 

서구의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나라의 국격이 서구 선진국들만큼이나 높아져서인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미디어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미디어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해야 그 정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대화와 토론을 통한 민주주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서구의 미디어도, 우리 주변의 미디어도 그 역할을 충실히, 제대로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미디어의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키울 필요가 있는 것이다. 책에는 미디어에 비판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31가지 전략이 실려있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우선 '단어를 바꾸어 보라'가 있다. 예를 들면 '교육'을 '세뇌'로, '부수적 피해'를 '민간인 사망'으로 바꾸어 생각해보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균형잡힌 속임수를 경계하라'가 있다. 균형잡히고 중립적인 입장에서 보도하는 듯하지만 실상은 기계적 중립에 다름아닌 경우를 주의해야 한다. 그 외에도 '묵인하고 보상하는 기사를 찾아내라', '출처를 확인하라', '의문을 제기하라', '(앞에서 다룬) 언어, 숫자를 활용하라', '선입견을 버려라', '누구에게나 고유한 가치관과 선입견이 있다는걸 기억하라' 등이 있다. 미디어, 언론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요구하는 책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다음과 같은 책들이 괜찮지 않나 생각된다. 
신문읽기의혁명(개정판) 상세보기
누가거짓말을하고있는가 상세보기

앞에서 원제를 밝혔는데 제목에 나와있듯이 이 책은 'Short course'이다. 여러 분야를 한권으로 압축해서 담다보니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전체적인 시각을 가지기에는 충분히 좋은 개론서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면 내가 아는 한에서는 분야마다 다른 책을 추천하려고 했고. 한 주제에 대해 너무 깊게 보기 전에 비판적 시각을 가지기 위한 개괄적인 내용의 책을 원한다면 아마 누구에게나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귀가 얇은 사람에게 추천.
어떤 언론이건,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사람에게 추천.
언론, 미디어의 신뢰도에 대한 반감은 있지만 어떤 것이 문제인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
비판적시각을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추천.

<본 리뷰는 그여자 Gene으로부터 선물받은 책을 이용해 작성되었습니다>

by 청춘한삼 2013. 1. 24.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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